2011년 6월 9일 부활 제7주간 목요일-요한 17,20-26

2011. 6. 9. 오전 7: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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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9일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22,30; 23,6-11

그 무렵 30 천인대장은 유다인들이 왜 바오로를 고발하는지 확실히 알아보려고, 바오로를 풀어 주고 나서 명령을 내려 수석 사제들과 온 최고 의회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바오로를 데리고 내려가 그들 앞에 세웠다.
23,6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사두가이들이고 일부는 바리사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바오로는 최고 의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형제 여러분, 나는 바리사이이며 바리사이의 아들입니다.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7 바오로가 이런 말을 하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회중이 둘로 갈라졌다. 8 사실 사두가이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주장하고, 바리사이들은 그것을 다 인정하였다.
9 그래서 큰 소란이 벌어졌는데, 바리사이파에서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 강력히 항의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면 어떻게 할 셈입니까?”
10 논쟁이 격렬해지자 천인대장은 바오로가 그들에게 찢겨 죽지 않을까 염려하여, 내려가 그들 가운데에서 바오로를 빼내어 진지 안으로 데려가라고 부대에 명령하였다.
11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오로 앞에 서시어 그에게 이르셨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복음 요한 17,20-26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20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22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4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6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언젠가 어느 드라마에서 본 내용입니다.

주인공 소녀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선배를 짝사랑하게 됩니다. 잘생기고 능력 많고 인기도 많은 선배였지요. 이에 반해 주인공인 소녀는 그 선배와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예쁘지도 또 능력이 많은 것도 또 가문이 좋은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이렇게 어울리지 않다는 사실이 소녀를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선배를 만난 이후 소녀의 꿈은 확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선배에게 이렇게 선언하지요.

“죽을 만큼 노력해서라도 선배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만큼 그 선배를 좋아했기에, 그만큼 그 선배와 함께하고 싶었기에 소녀는 노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소녀를 보면서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내가 쉽게 포기하고 싫증을 냈던 이유는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럴 것 같습니다. 하느님에 비해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합니까?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내 안에 간절한 마음이 없어 하느님께 어울리는 삶을 위해 더욱 더 노력하기 보다는 쉽게 포기하고 싫증을 내면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 되기를 간절히 바라셨던 주님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하느님과 하나 되고 싶다고 이야기는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간절했으며, 얼마나 노력했을까요? 기도하기 귀찮고 힘들다고 말하고, 주님 뜻에 맞게 살기 힘들다고 불평하는 이유 역시 내 안에 간절함이 없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어제 복음과 마찬가지로 오늘 복음에서 다시 한 번 하나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십니다. 이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믿는 이들이 서로 하나 되어 주님 안에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며, 이제 예수님을 사랑하고 모든 믿는 이들을 사랑하는 하느님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초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 독서의 사도 바오로가 예수님과 하나 되어 예루살렘 뿐 아니라 로마에서도 주님을 증언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과 하나 되어 방방곡곡에 주님의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각자 스스로를 뒤돌아보았으면 합니다.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주님 말씀에 얼마나 부합된 생활을 했었는지……. 만약 내 안에 그러한 간절함이 없다면 지금 당장 주님께 청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사랑 안에 언제나 머물러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예측하지 말라. 결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에 마음을 괴롭히지 말라. 마음 속에는 언제나 태양을 품어라.(벤자민 프랭클린)



새벽 묵상 글

2001년부터 써 온 10권의 새벽 묵상 글.

이제 며칠 뒷면 새벽 묵상 글을 쓴 지 만 10년이 됩니다. 10년 동안 쓴 글을 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이를 토대로 책도 6권이나 출판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나에게 재능이 뛰어나다는 말씀들을 하시곤 합니다. 그러나 내 자신을 아무리 꼼꼼히 살펴봐도 예술적 재능 같은 것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10년 동안 글 쓰는 것을 얼마나 많이 망설였는지 모릅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글을 뿌려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것 역시 또 하나의 공해가 아닌지……. 그래서 ‘이제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새벽 묵상 글을 그만 두려고 했을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된 지금 그러한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내 글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거나, 내 재능이 있다 없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앞으로 글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 라는 고민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나처럼 재능 없는 사람도 글을 씀으로 인해 기쁨을 얻을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새벽 묵상 글을 씁니다. 바로 나를 위해…….

댓글 1

  • 2011년 6월 9일 오후 1:31

    Much appreciated, Fr.. It gives us hope & inspiration leading to Him, eventu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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