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마태오 10,7-13

2011. 6. 11. 오전 8: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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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제1독서 사도행전 11,21ㄴ-26; 13,1-3

그 무렵 21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3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복음 마태오 10,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사람들이 차를 바꾸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설문 조사와 결과를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요.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3위는 아이들이 커서, 2위는 돈을 많이 벌어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1위는 무엇일까요? 대망의 1위는 옆집이 사서 차를 바꾼다고 하네요.

남들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을 놓치면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부족함을 자주 체험하게 됩니다.

요즘 기름 값이 많이 인상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름 값에 유난히 관심을 갖습니다. 기왕이면 기름 값이 싼 주유소를 찾아다닙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있는 답동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주유를 하고 온 적도 있었지요. 그런데 문득 그 차이가 얼마나 날까 싶었습니다. 주요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많이 차이 나봐야 리터 당 3~40원입니다. 그렇다면 제 차로 따지면 기껏 해봐야 1~2,000원 차이 나는 것인데, 이것 때문에 시간과 힘을 쏟고 있더라는 것이지요.

또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저는 책을 많이 사서 봅니다. 요즘 책값이 보통 만원 넘습니다. 비싸서 주저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만원이면 요즘 한 끼 식사 값 정도 되지요(잘 먹을 경우). 한 끼 식사 값과 이 책을 쓰기까지 노력한 작가의 정성을 비교한다면, 만원이면 무척 싸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중요한 것을 향해 나아가는 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을 보기 때문에, 특히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중요한 것을 쫓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에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할 것을 명하십니다. 그러면서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고,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낼 수 있도록 해주시지요. 제자들을 통해서 이러한 은총을 받은 사람들은 어떠할까 싶습니다. 아마 너무나도 기쁘고 고마워서, 어떠한 대가라도 치루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받아서는 안 됨을,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시지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제자들도 나름 노력을 했으니, 당연한 대가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대가를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받았음을 이야기하시지요. 숨을 쉬고 있으며, 세상 안에서 기쁨을 체험하는 것, 그 밖의 모든 것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거저 받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거저 받은 은총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행한 사랑의 실천에 대해 대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처럼 거저 줄 수 있을 때, 우리들은 주님으로부터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거저 받게 될 것입니다.


조그마한 친절과 한마디 사랑의 말이 저 위의 하늘나라처럼 이 땅을 즐거운 곳으로 만든다.(J.F.카네이)



재미있는 유머 하나

50주년 감사미사 끝났다고 선물받았습니다. 쓰기 편한 메모장. 감사~~~

한 남자가 두통약을 사기 위해 시골의 한 약방에 갔습니다.

“할아버지 두통약 주세요.”

남자가 두통약을 사서 나가려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말하는 것입니다.

“어이 젊은이 내가 잘못 줬소. 쥐약을 두통약인 줄 알고 줬네 그려.”

그 남자가 “큰 일 날 뻔했네.”라고 대답했지요. 그러자 할아버지도 “나도 큰 일 날 뻔 했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남자는 “맞아요. 제가 죽으면 할아버지도 큰 일 나겠죠.”

그런데 할아버지는 아주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그게 아니고, 쥐약이 2천원 더 비싸.”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는 우리들. 눈앞의 세속적인 것만 바라보면 계속해서 엉뚱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진리를 대답할 수 있는 참된 신앙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댓글 2

  • 2011년 6월 11일 오후 4:18

    거저 주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 2011년 6월 11일 오후 10:09

    진리를 대답하는 참된 신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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