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6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마태오 . 6,7-15

2011. 6. 16. 오전 8: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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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6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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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독서 코린토  2서  11,1-11

형제 여러분, 1 아무쪼록 여러분은 내가 좀 어리석더라도 참아 주기를 바랍니다. 부디 참아 주십시오. 2 나는 하느님의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자에게, 곧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그분과 약혼시켰습니다. 3 그러나 하와가 뱀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생각이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4 사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선포한 예수님과 다른 예수님을 선포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은 적이 없는 다른 영을 받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아들인 적이 없는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잘도 참아 주니 말입니다.
5 나는 결코 그 특출하다는 사도들보다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6 내가 비록 말은 서툴러도 지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든 일에서 갖가지 방식으로 여러분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7 여러분을 높이려고 나 자신을 낮추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대가 없이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다고 해서,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는 말입니까?
8 나는 여러분에게 봉사하려고 여러 교회에서 보수를 받는 바람에 그들을 약탈한 꼴이 되었습니다. 9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형제들이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었습니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자제하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10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걸고 말하는데, 아카이아 지방에서는 나의 이러한 자랑을 아무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11 내가 왜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아서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복음 마태오 . 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이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용서 통한 용서>

 

    신앙인으로서 가끔씩 화두로 붙들고 고민해야 할 사유의 주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내 삶에 활기와 기쁨과 동력을 제공해주는 ‘샘’, ‘저수지’, ‘발전소’는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가끔씩 자가발전, 자가충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너지 공급원이 오직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의 능력에만 의존합니다. 결과는 잦는 방전으로 인한 상습 피로, 긴장, 공격성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에너지원을 ‘그 누군가’ 다시 말해서 ‘인간’으로 설정합니다. 그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아무리 대단해보이고, 아무리 큰 산 같은 존재처럼 여겨질지라도 그 역시 나약한 한 인간입니다. 그도 가끔씩 탈진합니다. 그도 또 다른 누군가 기댈 언덕이 필요한 한계를 지닌 인간입니다. 당연히 영원하고 바람직한, 내 영혼의 갈증을 지속적으로 채워줄 고갈되지 않는 샘이 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마르지 않는 샘이 있습니다. 언제나 맑고 신선한 생명의 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주는 에너지원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이십니다.  

    영성적 삶, 영적인 생활, 영성생활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바로 성령 안에 삶입니다. 성령의 뜻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내 존재 전체, 내 인생 전부를 맡기는 삶입니다.

     영성생활이란 사랑과 자비로 흘러넘치는 성령의 샘에 우리 존재의 뿌리를 내리는 생활입니다, 성령의 샘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방법은 오직 한 가지, 기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 중의 기도,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만드신 기도입니다. 기도할 줄 모르는 제자들을 염두에 두고 아주 간단하게,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핵심, 엑기스, 골자만을 골라 심사숙고해서 만드신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루에 셀 수도 없이 자주 바치는 이 주님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을 빛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나라를 이 땅에 도래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효과적이고 중요한 기도인 ‘주님의 기도’가 보다 유효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요소가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용서입니다. 이웃에 대한 무조건적인 용서를 통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기쁘게 용서하십니다. 용서가 있는 곳에 하느님 사랑의 기적이 시작됩니다. 용서가 이루어지는 그 곳에서 새로운 차원의 영적 삶이 재개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죄한 사람이 아니라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용서와 자비, 관용 속에서 살아왔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조건적 용서입니다. 밥 먹듯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앞뒤 재지 않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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