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마태오 6,19-23

2011. 6. 17. 오전 6:57:46

글자
 
 
2011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제1독서 2코린토 11,18.21ㄷ-30

형제 여러분, 18 많은 사람이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니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 21 어리석음에 빠진 자로서 말하는 것입니다만,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
22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는 말입니다만,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 24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25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26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27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
28 그 밖의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날마다 나를 짓누릅니다. 29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다른 사람 때문에 죄를 지으면 나도 분개하지 않겠습니까? 30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복음 마태오 6,19-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20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 빠다킹 조명연 신부 -

어제 오후 잠깐의 시간이 있어 텔레비전을 켜게 되었습니다. 마침 전에 한참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가 재방송되고 있었지요. 잘 보지 않는 드라마이지만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이 드라마를 좋아했을까 싶어 잠시 그대로 보았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 애틋한 사랑이 나오더군요. 아마도 이 드라마의 내용에 동화되면서 그러한 사랑을 그리고 그러한 행복을 자신 역시 누리고 싶다는 바램 때문에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빠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드라마 속의 사랑이 내 사랑보다 결코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내 사랑이 더 크고 더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사랑은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취급합니다. 또한 자신의 행복은 아주 작은 행복인 것처럼 오해하기도 합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라는 속담처럼 우리들은 내가 아닌 다른 이들 안에서의 사랑과 행복을 더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로 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만 큰 사랑이 그리고 아름다운 행복이 존재한다는 오해와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지를 오늘 복음을 통해 말씀해 주십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

내가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내 마음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내 보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내 마음 역시도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 안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내 진정한 보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내 마음 역시도 주님 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과 행복도 마찬가지이지요. 내가 아닌 다른 곳에만 사랑과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면, 내 마음 안에 사랑과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 사랑과 행복이 있다고 확신하면, 언제나 내 마음 안에 사랑과 행복이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보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 안에서 보물을 찾다보면 내 안에 사랑과 행복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 안에서 만족이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은 하나를 얻게 되면 또 다른 하나를 얻고 싶은 욕심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기에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보물을 찾다보면 주님의 사랑을 익히게 되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큰 행복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보물이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바로 주님 안에서 그 보물을 발견하도록 하십시오. 진정한 행복을 위해…….


준 것은 기억하지 않고 받은 것은 잊지 않는 사람이 복되다(엘리자베스 비베스코).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고통에 대한 의미부여 작업>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어린 시절, 형과 함께 강가로 놀러갔을 때의 일입니다. 좀 더 좋은 낚시 포인트를 찾아 물을 건너다가 그만 급류에 휩쓸려버리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한 손에는 이것저것 들고 있었는데, 무의식중에 그것들이 떠내려가지 않게 꼭 쥐고 있으니, 몸은 더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꼴까닥 꼴까닥 물을 몇 번 먹고 나니 하늘이 노랗게 보이기 시작하며 이게 죽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겨우 겨우 물속에서 자라난 나뭇가지 하나를 붙들게 되었는데, 마음을 진정시키고, 손에 든 것 다 버리고 가까스로 물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만 생각하면 정신이 다 아찔해집니다. 하느님께서 평생 3번 정도는 기회를 주신다는 데, 그때 한번 새로운 기회를 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한 번은 모험심 강한 형제들과 어설픈 뗏목 하나를 만들어 타고 바다로 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마침 썰물 때라 바다를 향해 잘도 나갔습니다. 먼 바다로 나오니 가슴이 탁 트이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나와도 너무 멀리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빨리 돌아가자며 노 비슷한 것을 저었지만, 워낙 썰물의 흐름이 심해 전혀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바다 위에 떠서 죽을 고생을 하다 겨우 지나가던 어선의 도움으로 살아난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 모험 같은 것은 절대로 안해야겠다, 남들이 안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결심 을 했습니다.

     이런 들추고 싶지 않은 기억을 말씀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 소개되고 있는 바오로 사도의 ‘고난의 여행길’을 눈여겨보시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세계여행을 몇 차례나 하게 됩니다. 당시 교통수단이라는 것이 변변치 않았습니다. 주로 도보여행이었습니다. 재수가 좋으면 마차를 얻어 탔을 것입니다. 너무 먼 거리는 배로 여행을 했는데, 안정성이 별로 보장되지 않는 작은 규모의 목선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바오로 사도의 회상처럼 바다를 건너다가 파선되는 경험을 3번이나 했습니다. 겨우 나무 조각 하나를 붙잡고 하루 온종일 바다 위에 떠있기도 했습니다. 구조를 기다리는 그 순간의 두려움과 고통은 정말이지 끔찍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투옥됩니다. 투옥된다는 것,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 자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제약을 받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갇혀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찾아와주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매도 엄청 맞았습니다. 유다인들에게 39대씩 다섯 차례나 맞았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사용한 매가 회초리, 눈금자는 아니었겠지요. 한 대 맞으면 신음이 자동으로 새어나올 정도의 모진 매였습니다. 그 매 몇 대 맞으면 보통 사람들 평생 후유증에 시달릴 것입니다. 그런 매를 바오로 사도는 195대난 맞은 것입니다. 몇 대 맞았냐 하는 것보다 누군가로부터 이유도 없이 폭력을 당한다는 것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으로 인한 바오로 사도의 생애, 외적, 인간적인 눈으로 보니 참으로 혹독하고도 험난했습니다. 바오로 사도 스스로 나열하고 있는 ‘고난의 여정’을 하나하나 챙겨 나가보니, 정말 눈물이 다 날 정도로 힘든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오로 사도는 그 모든 고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고생이었으므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오히려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너무나 끔찍해서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사건들이었지만 스승 예수님으로 인한 사건들이었기에 바오로 사도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여정도 돌아보면 결코 순탄치만은 않겠지요. 다들 소설로 쓰면 몇 권은 될 스토리들을 갖고 계시겠지요. 때로 도무지 수용하기 힘든 사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사건,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연들도 겪으셨겠지요. 그래서 때로 하느님을 원망도 하셨겠지요. 그리고 지금도 힘겨워하고 계시겠지요. 

    이런 우리 모두에게 바오로 사도의 태도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는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고통을 겪을수록 더 강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고통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고통에 대한 의미부여 작업’, ‘십자가에 대한 가치부여 작업’이 바오로 사도의 생애 안에 이미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고통이 다가올 때 그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연결시키려는 노력, 감당하기 힘든 십자가가 다가올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노력이야말로 우리가 참 사도로 거듭나는 노력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 신 앙 ┐묵상글

목록 전체보기 →
2011년 6월 19일 삼위일체 대축일-요한 3,16-1811.06.19조회 392011년 6월 18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마태오 6,24-34[1]11.06.18조회 382011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마태오 6,19-2311.06.17조회 402011년 6월 16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마태오 . 6,7-1511.06.16조회 352011년 6월 15일 연중 제11주간 수요일-마태오 6,1-6.16-1811.06.15조회 352011년 6월 14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마태오 5,43-4811.06.14조회 332011년 6월 13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마태오 5,38-42[1]11.06.13조회 362011년 6월 12일 성령 강림 대축일-요한 20,19-23[1]11.06.12조회 362011년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마태오 10,7-13[2]11.06.11조회 372011년 6월 10일 부활 제7주간 금요일-요한 21,15-1911.06.10조회 342011년 6월 9일 부활 제7주간 목요일-요한 17,20-26[1]11.06.09조회 332011년 6월 8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요한 17,11ㄷ-1911.06.08조회 362011년 6월 7일 부활 제7주간 화요일-요한 17,1-11ㄴ[2]11.06.07조회 382011년 6월 6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요한 16,29-33[2]11.06.06조회 362011년 6월 5일 주님 승천 대축일-마태오 28,16-20[2]11.06.05조회 35[묵상]소금과 호수11.06.04조회 37[묵상]지금에야 알았습니다11.06.04조회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