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말이 얼마나
사람을 탈진하게 하고
얼마나 외롭게 하고 텅비게 하는가?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안에
설익은 생각을 담아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히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다 익은 생각이나 느낌 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 두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되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침묵하는 연습
비록 내 안에 슬픔이건 기쁨이건...
더러는 억울하게 오해받는 때에라도
해명도 변명조차도
하지 않고 무시해 버리며
묵묵하고 싶어진다.
그럴 용기도...
배짱도...
지니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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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말이 얼마나
사람을 탈진하게 하고
얼마나 외롭게 하고 텅비게 하는가?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안에
설익은 생각을 담아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히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다 익은 생각이나 느낌 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 두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되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침묵하는 연습
비록 내 안에 슬픔이건 기쁨이건...
더러는 억울하게 오해받는 때에라도
해명도 변명조차도
하지 않고 무시해 버리며
묵묵하고 싶어진다.
그럴 용기도...
배짱도...
지니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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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를 통해 가끔은 침묵의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성가를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런 것 같습니다..
묵상을 통한 기도, 성가 찬양을 통한 기도.
전 성가를 통해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성가 부를때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끼는 신비함이라고나 할까요?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기도의 본질적인 국면은 우리가 무엇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경청하는 것이다. 그것은 침묵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호주에 와서 얼마 안되서, 호주의 자연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 동네의 자전거 도로를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인데, 지금 봐도 넘 아름답습니다.
그때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과 대화(?) 한 적이 가끔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의 여유로움을 통해 개인 성화도 더욱 깊어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에 몇번이나 고개들어 하늘을 쳐다보는지....
잠시의 여유라도 가질수 있는 그런 생활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절주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