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자매 여러분, 불굴의 의지를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제가 인사말에서 불굴의 의지를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평생을 가슴에 불덩어리를 지니고 사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불덩어리와 인간을 사랑하는 불덩어리입니다. 저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인간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저를 구원하시는 주님인 동시에, 제가 본받으며 살아가야 할 인간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고 예수님의 소망을 헛되게 만든 영적인 눈멂으로 고생하였습니다. 이미 심판이 내려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레미아 예언자에게 하셨던 말씀이 마음을 두드립니다. “너는 나를 우습게 여겼다..... 너는 등을 돌리고 나를 떠나갔다가 내 손에 맞아 죽게 되었다. 너를 불쌍히 보아 주는 것도 나는 이제 싫증이 났다.”(예레 15,6)
예수님은 곧장 성전으로 들어가셨는데, 성전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목적지였습니다. 예루살렘이 누리는 특권의 모든 것은 시온산 위에 있는 성전 덕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가 상인들을 쫓아내십니다. 요한복음은 구체적으로 상황을 설명합니다.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쫒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 엎으셨다. 그리고 비둘기 장수들에게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하고 꾸짖으셨다.”(요한 2,15-17)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거래상들과 이 거래를 허용하고 그럼으로써 이익을 챙기는 유대 당국자들은 성전을 “도둑의 소굴”(예레 7,11)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써뿐 아니라 특히 행위로써 예언자들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그 날이 오면 다시는 만군의 야훼의 전에 장사꾼이 있지 못하리라.”(즈가 14,21)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 그 올바른 자리로 되돌려지고 재물을 섬기는 일이 배제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로 인해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직 하느님 섬기는 일에 모든 것을 거셨습니다. 우리 신앙 선조 중에서도 예수님과 같은 길을 가신 분이 있습니다. 윤지충(바오로)입니다.
윤지충(바오로)은 당시 전라도 진산군(현재 : 충남 금산군 진산면) 출신의 유학자로서 조선후기의 유명한 실학자였던 다산 정약용과는 외사촌 사이였습니다. 그가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되면서 그의 운명은 커다란 전환기를 맞게 됩니다. 조상의 제사를 거부하였다는 죄로 그의 먼 일가인 권상연(야고보)과 함께 사형을 받게 되면서 당시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켰고 조선후기의 역사에, 그리고 한국천주교회의 초기 역사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조상의 제사를 금한다는 것은 초기의 천주교 신자들에게 엄청난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던 모든 유교적인 윤리와 관행을 끊는다는 것은 효도를 가장 기본적인 윤리로 강조하던 당시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가 없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초기의 대부분 신자들은 제사를 포기하기보다는 신앙을 버렸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그대로 윤지충(바오로)에게도 선택을 강요하였습니다. 그에게 신앙을 권유하였던 외사촌 형제인 정약전과 정약용도 이미 교회를 떠났으며, 이승훈과 그 외의 중심인물들도 그러했습니다. 윤지충(바오로)으로서도 천주교 신앙을 지킬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심각한 것이었으며, 그에 따라 그도 커다란 갈등에 빠졌었겠지만 그래도 윤지충(바오로)은 신앙을 택하였습니다.
그는 북경의 구베아 주교의 명령대로 부모님의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폐하는 결단을 내립니다. 이처럼 그가 제사를 폐하고 신앙을 선택한 행위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패륜의 행위였으며, 부모에의 효성을 나라에 대한 충성과 동일시하였던 당시에는 반역의 행위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윤지충(바오로)는 1791년 음력 10월경에 체포됩니다.
유림에서는 그를 사형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이처럼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의 파격적 행위가 국가적으로 큰 물의를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그들은 사형에 처해질 운명에 있었지만, 정작 윤지충은 조금도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윤지충(바오로)는 전라 감사 정민시의 문초에 응하여 자신의 주장을 피력합니다. “천주를 큰 부모로 여기는 이상 천주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천주를 공경하고 높이는 태도가 아닙니다. 사대부 집안의 나무로 만든 신주는 천주교에서 금하는 것이니, 차라리 죽을죄를 얻을지라도 천주에게 죄를 얻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집 안에 땅을 파고 신주를 묻었습니다. 사대부가 아닌 서민들이 신주를 세우지 않는 것은 나라에서도 엄히 금하는 일이 없으며, 가난한 선비가 제사를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것도 엄하게 막는 예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신주도 세우지 않고 제물도 차리지 않았던 것인데, 이는 단지 천주의 가르침을 위한 것일 뿐이며 나라의 금법도 어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윤지충(바오로)이 전통적인 방식대로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로서도 무척 힘든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결정으로 그가 사형을 당하기 이전에 이미 가족과 친지들과 이웃들로부터 철저하게 배척당하였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말하자면 이 결정 하나로 그는 모든 것을 다 잃게 되었습니다. 그도 이런 결과가 오리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신앙의 길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윤지충(바오로)은 한국천주교회의 역사상 세상의 법과 천주의 법이 정면에서 상충될 때 천주의 법을 따르겠다고 선언한 최초의 증거자였으며, 그 대가로 그는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제사문제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주의 가르침 가운데 그 어떤 요인들이 윤지충으로 하여금 그런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을까? 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땅에서 만큼은 아무런 위험을 느끼지 않고 쉽게 세례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을 갖기 위해서 윤지충(바오로)처럼 극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기로 결단을 내렸으면서도, 이전의 나와 달라진 것이 없다면 그런 신앙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제사문제가 일단락되었지만, 그 대신 지금 우리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이 모든 것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서도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세상과의 결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예로 돈, 명예, 자존심, 이기심, 안락함,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무시하는 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부정한 짓도 서슴지 않는 태도 등을 청산하라고 신앙이 요구한다면 그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 부산교구 이세형 신부
세상과의 결별
2005. 11. 18. 오후 12: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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