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곶성지에서 차를 타고서 한 10분 정도 가면 성지 소유의 예쁜 집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새벽 묵상 글에서도 썼었던 사제관으로 사용했던 집이지요. 그리고 바로 그 옆집도 얼마 전 성지에서 구입을 했습니다. 앞으로 순례객들의 숙소 및 피정 장소로 사용할 예정이거든요. 그런데 전에 사제관으로 사용했었던 그 집은 일 년 중에서 단 며칠만 사람들이 묵었고 대부분 비워 있었답니다. 반면에 이번에 매입한 옆집은 일 년 내내 어떤 가정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집이 더 낡았을까요?
분명히 사람이 계속 살고 있었으니까 더 낡을 것 같지요? 하지만 우리들의 상식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더군요. 글쎄 사람이 살지 않았던 집이 더 낡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았던 집의 마당에는 풀도 무성하게 자라고, 화단도 무너지고, 건물의 외부도 많이 손상되어 있는 반면에, 그동안 쭉 사람이 살았던 그 집은 모든 것이 다 새 집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과연 왜 그럴까요? 똑같은 사람이 이 두 집을 함께 지었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다를까요? 딱 한가지의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하나는 사람이 살았고, 또 하나는 사람이 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똑같은 집 두 채 중에서 하나는 사람이 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로 그렇지요. 사람이 살아야 집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개가 살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요. 개집입니다. 그럼 닭이 살면? 닭장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살아야 할 때, 개집이나 닭장이 아닌 진정한 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면서, 그리고 제발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하면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상인을 내쫓아 버립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행동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성전이 이들 때문에 진정한 효과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장소,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거룩한 장소가 바로 성전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의 장사 덕분(?)에 불의가 넘치는 곳이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람이 살아야지만 집이 망가지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계시는 교회에도 사람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냐 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그 사람은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사랑이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 교회 내에 가득해질수록 이 교회는 망가지지 않고,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이 아닌 강도가 들어올 때, 교회 역시 강도의 소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이 교회를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요? 진정한 교회를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내 자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성전은 기도하는 집
2005. 11. 18. 오후 12:46:28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