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기도(8/1)

2005. 8. 1. 오전 8:42:06

글자
2005년 8월 1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민수기 11,4ㄴ-15
그 무렵 이스라엘 백성이 우는 소리를 했다. “아, 고기 좀 먹어 봤으면. 이집트에서는 공짜로 먹던 생선,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이 눈앞에 선한데, 지금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 죽는구나.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이 만나밖에 없다니.” 만나는 고수풀씨처럼 생겼고 빛깔은 브델리움 같았다. 백성들은 돌아다니며 그것을 모아다가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빻아 냄비에다 구워서 빵을 만들었다. 그 맛은 기름에 튀겨 낸 과자 맛이었다. 밤에 이슬이 내리면서 그들이 진을 친 곳에 만나도 함께 내리곤 하였다.
백성들이 저희들 천막 문 어귀에 끼리끼리 모여서 우는 소리가 모세의 귀에 들렸다. 주님께서 크게 화가 나셨다. 모세는 몹시 걱정되어 주님께 울부짖었다.
“어찌하여 이 종에게 이런 꼴을 보이십니까? 제가 얼마나 당신의 눈 밖에 났으면 이 백성을 모두 저에게 지워 주시는 겁니까? 이 백성이 모두 제 배 속에서 생겼습니까? 제가 낳기라도 했습니까? 어찌하여 저더러 이 백성을 품고 선조들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까? 유모가 젖먹이를 품듯이 품고 가라고 하십니까? 어디에서 이 백성이 다 먹을 만큼 고기를 얻어 주란 말씀입니까? 저에게 먹을 고기를 내라고 아우성입니다. 이 많은 백성을 저 혼자서는 도저히 책임질 수 없습니다. 너무나 무거운 짐입니다. 진정 이렇게 하셔야겠다면, 차라리 저를 죽여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과히 밉지 않으시거든 이런 꼴을 더 이상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복음 마태오 14,22-36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후에,] 예수께서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군중을 보내신 뒤에 조용히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날이 이미 저물었는데도 거기에 혼자 계셨다. 그 동안에 배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역풍을 만나 풍랑에 시달리고 있었다.
새벽 네시쯤 되어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본 제자들은 겁에 질려 엉겁결에 “유령이다!” 하며 소리를 질렀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예수께 “주님이십니까? 그러시다면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하고 소리쳤다.
예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밟고 그에게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거센 바람을 보자 그만 무서운 생각이 들어 물에 빠져 들게 되었다. 그는 “주님, 살려 주십시오!” 하고 비명을 질렀다.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왜 의심을 품었느냐?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함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주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바다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을 때에 그 곳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보고 그 부근 지방에 두루 사람을 보내어 온갖 병자들을 다 데려왔다. 그리고 그들은 병자들이 예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만진 사람은 모두 깨끗이 나았다.





저는 어제 한 통의 E-Mail을 받은 뒤, 하루 종일 우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E-Mail은 어떤 자매님으로부터 온 것인데, 그 자매님의 안 좋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지요. 사실 그 자매님께서는 얼마 전 저에게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지금 상황이 안 좋으니 많은 기도를 부탁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저는 그 기도 부탁에 대해서 “네, 기도할께요.”라고 응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응답을 하고서도 저는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화살기도 몇 차례, 그리고 그분을 위한 지향을 갖고 묵주기도 몇 꾸러미 바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전에는 누군가 기도를 부탁하면 ‘기도수첩’이라는 것도 만들어서 기도를 필요로 하는 분들을 위해서 나름대로 기도해드렸는데, 요즘은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수첩’을 작성하지도 않는 것은 물론, 부탁을 받을 때만 잠시 기도하고 말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 자매님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뒤, 제 마음은 너무나 좋지 않았습니다. 마치 제가 기도를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처럼, 죄책감까지 생기더군요. 물론 하느님의 뜻을 우리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하느님의 뜻을 움직일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로써 노력해야 하는데, 저는 그 기도를 충실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바쁘다는 이유로, 이정도면 된다면 안일한 마음으로 기도의 의무를 소홀히 했던 것입니다.

사실 기도만큼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로 주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주님, 제가 저의 전 재산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따라서 저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라고 말한다고 주님께서 혹 하실까요? 아니면, “주님 저의 소원만 들어주시면, 이렇게 높은 지위를 당신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주님께서 감동을 받으셔서 우리들의 소원을 재빨리 들어주실까요?

아니지요.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으신 분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분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행하는 기도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렇게 중요한 기도를 얼마나 소홀히 했었는지요?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청합니다.

“저더러 물을 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뜻대로 되었습니다. 즉, 정말로 물 위를 걷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센 바람을 보자, 무서운 마음이 들었고 곧바로 물속에 빠지게 되지요. 그가 물속에 빠지게 된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주님께 의지하면서 기도하고 있는지요? 혹시 베드로처럼 기적을 체험하는 순간에도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요? 또한 저처럼 그 앞에서는 열심히 기도하겠다고 하면서도, 바쁘다고 그 기도를 소홀히 했었던 것은 아닌가요?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한다면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물위를 걷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뿐입니다.


나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시다.



오늘이라는 말은

"오늘"이란 말은 싱그러운 꽃처럼 풋풋하고 생동감을 안겨줍니다.
마치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마시는 한 모금의 시원한 샘물 같은 신선함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고.
오늘 할 일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하루를 설계하는 사람의 모습은 한 송이 꽃보다 더 아름답고 싱그럽습니다.
그 사람의 가슴엔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오늘 또한 어제와 같고 내일 또한 오늘과 같은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에 대한 미련이나 바램은 어디로 가고 매일 매일에 변화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 "오늘"은 결코 살아 있는 시간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처럼 쓸쓸한 여운만이 그림자 처럼 붙박여 있을 뿐입니다.
오늘은 ‘오늘’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미래로 가는 길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아무리 고달프고 괴로운 일들로 발목을 잡는다 해도.
그 사슬에 매여 결코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지혜와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요.

오늘이 나를 외면하고 자꾸만 멀리 멀리 달아나려 해도 그 "오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밝은 내일이란 그림의 떡과 같고.
또 그런 사람에게 오늘이란 시간은 희망의 눈길을 보내지 않습니다.

사무엘 존슨은 “짧은 인생은 시간의 낭비에 의해서 더욱 짧아진다" 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시간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을 늘 새로운 모습으로 바라보고 살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늘 공평하게 찾아오는 삶의 원칙이 바로.. "오늘" 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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