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사람은 누구?

2005. 3. 5. 오후 2: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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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사람은 누구?

한 주간 복음의 내용이 하느님이 정말 원하시는 사람의 삶은 어떤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진 듯 지켜야 할 계명과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에 대한 말씀들이 우리의 귀에 울려 퍼집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여전히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사랑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속에서 예수님은 기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비교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하느님 앞에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은 세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 되겠구나 생각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생활로 들어서면 으레 그렇듯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이 두 사람을 비교한다면 우리 생활에서 올바른 사람은 여전히 바리사이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외형적인 잣대로 생각해 봅시다.

바리사이파 사람의 기도가 하느님 앞에서 진실된 자신의 모습이라면 그는 하느님께 감사드릴 줄도 알고, 그는 욕심도 없고, 부정직하지도, 음탕하지도 않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세리와 같지도 않답니다. 게다가 그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느님께 바친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남 앞에서 자랑할 만하지 않습니까? 우리 중 이런 사람이 있었다면 그의 기도는 제쳐놓고라도 우리가 대단하다고 본받아야 한다고 말할 만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이런 신자들을 최고로 꼽고 있지 않습니까?

그에 반해 세리는 하느님 앞에서 최대한 비굴한 자세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 뭐 하나 드릴 것이 없어 한다는 기도가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입니다. 남들이 보아도,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생각해보아도 뭐하나 자랑할 것이 없는 세리입니다. 그런 그의 이런 모습은 그래야 마땅하다고 우리에게 판단 받는 모습입니다.

자랑할 만한 사람의 기도와 자비를 구걸해야 할 사람의 기도. 그런데 복음의 결론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생각해서 우리 역시 세리처럼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아니면 바리사이파 사람처럼 살면 안 되는 것입니까?

무엇이 하느님께 올바른 것입니까?

바리사이파와 세리. 이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을 두고 예수님께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은 삶의 모습이 아니라 삶의 자세였을 것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의 삶의 모습은 너무나 나무랄데 없이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삶을 사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자랑할 거리였다면 그것은 그런 삶의 이유가 자신이 거절한 모든 것을 담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신앙생활은 우리에게 모범이라 할 만 하지만 그것을 그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위한 자랑으로 드러냈으니 그는 하느님 앞에 감사드린 것이 아니라 자랑한 것이며, 그것은 이미 자신 안에 하느님에 대한 욕심이 가득 차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자랑스러운 기도가 바로 자신을 하느님 앞에 부정직하게, 또 음탕하게 만드는 시도가 되고 있음을 자신은 모릅니다. 더군다나 이런 자신의 모습 속에서 사랑해야 할 세리와 같은 죄인들을 하느님 앞에서 짓밟고 있기에 그는 사랑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임이 드러납니다.

반면 세리는 우리가 뭐 말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부족함을 압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런 죄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다가가셔서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고 그런 삶에서 구해내셨습니다. ‘나를 따르라’하시며 말입니다. 그런 세리였기에 그가 한 일들이 잘한 일이 아니라 그는 언제든 그 삶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었기에 하느님은 그를 사랑하셔서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삶의 모습이나 질을 바탕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리고 남을 판단하려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서 만드신 같은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치는 하느님 앞에서 같다는 사랑의 평등함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하느님 앞에 정성을 다하는 모든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지켜내고 나누기 위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그래서 바리사이파가 세리의 손을 잡는 마음에서 하느님께 봉헌되어야 하는 것이지 자신의 일을 하느님 앞에 드러낼 양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자랑하기 전에 하느님이 그 사실을 모르실리 없잖습니까?

바리사이파 사람과 세리.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욕심과 독선으로 남 위에 서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감사한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 잘난 사람이 세리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기에 하느님께서 세리의 손을 잡아주신 것입니다. 올바른 사람이 되려하지 말고 사랑하며 산다면 그것이 곧 올바른 삶입니다. / 부산교구 정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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