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행복한 사람(3/5)

2005. 3. 5. 오후 2:39:41

글자
이번 주의 독서와 복음은 계속해서 올바른 하느님 따르기에 대해서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말씀대로 올바른 믿음에는 올바른 행위가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는 우리의 삶의 변화를 통해 그리고 우리의 행동을 통해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잡아 찢으시지만 아물게 해 주시고, 우리를 치시지만 싸매 주시는 분이라고 호세아는 전합니다. 마치도 수술을 통해서 썩은 부위를 도려내듯이 우리 영혼의 썩은 부분을 잘라내시고 새로운 삶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 하느님의 도움으로 인해 그저 겉으로만 하느님을 따르는 척, 회개한 척 하면서 종교가 정해주는 최소한의 규정만을 지키고 살아갈 것이 아니라 먼저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것,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집나간 아들을 언제나 기다리고 계셨던 아버지처럼 하느님의 사랑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하느님을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사랑을 주시지 않으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직 자신이 하느님께로 마음을 열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 세상에 더 욕심이 있기 때문이고, 하느님을 세상의 욕심을 채워줄 도구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제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어떠한 기도가 제대로 된 기도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도는 흔히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시는지 알아듣고 그 말씀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을 가르치고 우리의 생각을 하느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기도를 바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리사이와 세관원이었습니다.

바리사이가 바치는 기도의 자세를 보면 먼저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보라는 듯이 서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벌써 바리사이는 마음은 하느님께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과시하기 위한 전시용 기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 말 성서를 보면 바리사이의 자세에 대해서 ‘자신을 향하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드려야 하는 것인데 바리사이는 자신에게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자신을 우상화하고 자신의 욕심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또 바리사이는 자신을 절대화시켜서 이웃을 경멸하기만 하고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이 전해주시는 하느님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물욕을 채워주시고 자신을 높여주는 하느님만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입니다. 자신에게 고통과 희생을 주고 십자가를 지우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합니다.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하느님은 사랑과 용서의 하느님이었습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렀더라도 회개해서 돌아오면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자비의 하느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많은 율법 규정을 잘 지킨 바리사이보다 많은 허물이 있었지만 회개의 눈물을 흘린 세관원이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전례의 반복과 입으로 의미 없이 흘러나오는 기도가 아니라 나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고 우리 삶의 철저한 회개를 통해 삶의 모습을 변화시켜서 하느님께 제대로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받아주시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 때문이지 우리가 잘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을 높이려 하지 말고 어린아이와 같이 언제나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길 줄 아는 자녀들이 됩시다. * 천주교 부산교구 동대신성당 보좌 손지호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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