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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복음은 예수님의 일생을 십자가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겠다는 결심은
예수님께서 혼자 결정하신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주저함이 없이 죽음의 장소로
묵묵히 올라가시는 그분의 결단과 고독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옳고 곧은 결정을 내리려고 하니,
고독 속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혼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반면 제베대오의 두 아들은 야심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삯꾼을 고용할 정도의 경제적인 능력이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야고보와 요한은 다른 제자들보다 조금 나은 환경에서 성장한 것 같습니다.
이 작은 우월함이 세속적인 욕망을 초래하여 오늘 예수님께
좋은 자리를 부탁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 이보다 더 명확한 말씀은 없겠지요.
백성 위에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는 세상의 통치자들을
우리가 비난하기는 쉽지만, 우리의 사고방식에도
어느새 이 세상의 논리가 들어와 있음을 발견합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경쟁에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원하건 원치 않건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커 보이려고 안간힘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하철에서 어린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어머니들 가운데 한 분은, 아이를 이런저런 학원도
보내고 닦달을 하고 있는데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매우 많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넋두리합니다.
직장을 퇴직하신 어느 분은, 무한 경쟁에 내몰려 평생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만 애를 쓰다가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되어서 나름대로
복음을 실천하면서 살 수 있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직에 평생 계시다가 오래 전에 은퇴하신 분도,
학교에 있을 때에 공부 잘하고 착한 학생들만 예뻐하며 살았던 것이
죄스럽다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다를 수 없을까요? 또는 다르면 안 되는 것일까요?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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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하나 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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