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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시복 미사를 봉헌한 이후
오늘 첫 번째로 이 복자들의 기념일을 지냅니다.
지난해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올린 시복 미사의
감동이 아직도 우리의 마음과 기억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교 복자를 조상으로 모신 이들이 참으로 자랑스러워 보였고,
그들이 부럽기까지 하였습니다.
오늘 묵상한 지혜서의 단락을 보면 세상을 떠난 의인들의 영혼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루카 복음의 예수님 말씀을 묵상하면,
신앙을 고백하며 목숨을 바친 이들도 참으로 영광스럽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로 순교하고 싶으십니까?
누구도 선뜻 대답할 수는 없겠지요! 시복 조사를 할 때,
순교자들은 순교라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기 때문에
제1차 기적 심사에서 관면을 받습니다.
그만큼 순교는 특별한 은총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순교자들을 복자로 공경하는 것은 그분들의
신앙의 모범을 본받기 위해서입니다.
복자가 되든 성인이 되든, 이미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계신 분들에게는 우리가 그분들을
공경하는 신심 행위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시복 시성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순교자들의 모범을 본받을 마음이 없다면
그 시복 시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순교하려는 열망이 더없이 컸습니다.
목숨을 바치는 것이 하느님에 대한
최고의 사랑의 행위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지요(요한 15,13 참조).
박해가 그친 다음에도 순교하려는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리는 삶,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는 삶을 갈망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그러한 갈망이 있는지요.
적어도 복음에 따라 살기 위하여,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포기할 기회는 많이 주어지겠지요.
오늘 복음에서는 “날마다”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함께 생각하고 싶은 내용은, 예수님 말씀대로 나는
나 자신을 버리고 기꺼이 십자가를 지는지 여부가 아니라,
내가 의무로서 계명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지는지,
아니면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크고
작은 일에서 나를 버리려는 의지가 내 안에 있는지,
그것입니다. 참으로 장한 순교자들의 모범을 뒤따르고 싶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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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The Way Of The Cross, The Life Of Marty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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