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소화(小花)데레사 - 장미꽃 비 (4)

2006. 7. 11. 오후 12: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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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소화(小花)데레사장미꽃 비 (4)

 

좋은 일

 

우리 주께서 영혼들을 인도하시는 길은 얼마나 여러 갈래입니까!

성인들의 행적을 보면 그들이 자기들에 대해서 한 가닥 추억, 한 줄의 글조차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분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 성녀 데레사 원장님처럼,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더 잘 알려지고 더 사랑을 받기 위하여 '임금'의 비밀을 드러내기를(토비 11, 7) 꺼리지 않고, 심오한 도리로 성교회를 가멸케 한 성인들도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성인들 중에 어느 것이 더 하느님의 마음에 들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두 가지가 꼭 같이 하느님의 마음에 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하느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으며, 하느님께서도 "의로운 자에게는 모든 것이 좋다고 말하라."(이사 3, 10)고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뜻만 찾는 때에는 모든 것이 좋은 일입니다.



 

사랑의 애정

 

사람의 애정에 사로잡힌 마음이 어떻게 하느님과 밀접하게 결합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너무 열렬한 애정이라는 독이 타 있는 술잔을 마시지 않고서도, 제가 잘못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많은 영혼들이 이 거짓 빛에 홀려 불쌍한 나비들 모양으로 거기에 달려들어서 날개를 태우고, 그리고 '태우는 법 없이 불붙는' 하느님의 불이신 예수께로 날아 올라갈 수 있도록, 더 빛나고 더 가벼운 새로운 날개를 그들에게 주는 사랑의 진실하고 부드러운 빛으로 날아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저는 느낍니다.

예수께서는 제가 유혹을 당하기에는 너무나 약한 것을 알고 계시던 것입니다.

제 눈앞에서 불붙는 것을 보았다면 저는 아마 이 거짓 빛에 타버렸을 것입니다.

그 빛이 제 눈에는 찬란하지 않았으며, 더 강한 영혼들이 기쁨을 만나고, 충실로써만 헤어나는 거기에서 쓰라림밖에는 저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써만 그것을 면한만큼, 사람의 애정에 빠지지 않은 것이 조금도 제 공이 아닙니다!



 

사랑의 신비

 

이 피정동안에 저는 위로를 받기는 고사하고, 더할 수 없는 무감각, 거의 버림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을 맛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제 작은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아! 저는 영혼들이 예수께서 편안히 자기 안에서 주무시게 버려 두는 일이 퍽 드물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보상을 주시랴, 은혜를 내려 주시랴, 너무나 지치셔서, 제가 그분에게 드리는 휴식을 즐겨 이용하시는 것입니다.

아마 저의 영원한 큰 피정이 있기까지는 깨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괴롭기는 커녕 여간 즐겁지 않았습니다.

정말, 저는 성녀가 되기에는 아직 멀었습니다.

저는 무감각을 기뻐할 게 아니라, 제 열심과 충성이 부족한 데 그 책임을 돌려야 할 것이고, 기도나 '영성체 후 기도'를 하는 동안에 조는 것을 슬프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자기 어린 아이들이 잘 적에나 깨어있을 적에나 똑같이 귀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극기

 

제가 극기라고 한 것은 고행(苦行)을 한 줄로 알게 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고행이란 것은 '하나도 한 적이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가지가지의 고행을 하시던 훌륭한 분들과는 딴판으로 고행에 대해서는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아마 제 용렬한 마음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제 극기라는 것은 그저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생각을 꺽고, 언제나 남을 도와 줄 준비를 하며, 대꾸를 아니하고 남몰래 작은 일을 해주고, 앉을 때 등을 기대지 않는 따위 여러 가지였습니다.



작은 희생의 빛

 

나는 모든 황홀한 환시보다도 숨은 희생의 단조로움을 선택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핀 한 개를 줍는 것이 한 영혼을 회개시킬 수 있습니다.

 

 

댓글 1

  • 2006년 7월 11일 오후 2:16

    다시 새롭게 묵상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