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소화(小花)데레사 - '장미꽃 비' (2)

2006. 7. 9. 오후 3:42:12

글자

성녀 소화(小花)데레사 - '장미꽃 비' (2)

 

 

참된 영광

 

저는 참된 영광이란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남이 몰라주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기를 원하며"(준주 성범 1편 2, 3)

 "자기 자신을 업신여기기를 좋아하는 것"(준주 성범 3편 59, 7)만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이 세상 것이 아닌 왕국을 가지신 이가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아! 예수님의 얼굴과 같이 "내 얼굴도 모든 사람의 눈에 가려지고, 이세상 사람은 아무도 나를 몰라보는" (이사 53, 3) 것이 제 원이었습니다.

저는 괴로움을 당하고 잊혀지기가 간절한 원이었습니다.

주께서 항상 저를 인도하신 길은 얼마나 인자한 길이었는지요.

제게 어떤 원을 품게 해주시면, 언제나 꼭 그 것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쓰디쓴 잔도 제게는 달게 생각되었습니다.



 

사랑

 

이 길이란, 아버지의 품에서 아무 겁 없이 잠 드는 어린 아기의 '탁 믿는' 마음 그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무슨 위대한 행동을 구하시는 것이 아니고,

다만 탁 믿는 마음과 감사의 정을 요구하실 뿐이며 우리의 행동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사랑'이 소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저 이것 뿐입니다.

그분에게는 우리의 행동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사랑'이 소용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시장하단 말씀을 우리에게 하실 필요가 도무지 없다."고 단언하신 바로 그 하느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 한모금을 서슴지 않고 청하셨습니다.

목이 마르시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 물을 달라"(요한 4,7)고 말씀하실 때 천지의 창조자가 가련한 피조물에게 청하신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 분은 사랑이 목마르던 것입니다.

아! 예수께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목말라하심을 저는 압니다.

세상의 제자들 중에서 그분은 배은하는 자들과 무관심한 자들밖에는 얻어 만나지 못하시고, 당신 제자들 가운데서도 자기를 그분에게 남김없이 바치며,

그분의 무한한 사랑이 얼마나 정답다는 것을 알아듣는 마음을 별로 만나지 못하십니다.



 

사랑의 간청

 

오 예수님!

저는 모든 작은 영혼에게 당신의 이를 수 없는 자애를 말해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마는, 가령 당신이 저보다 더 약하고 작은 영혼을 만나신다고 하고, 그 영혼이 당신의 무한한 인자를 굳게 믿어 그 자신을 온통 내맡긴다고 한다면 당신은 이보다 더 큰 은혜를 즐겨 넘쳐흐르도록 내려 주실 것같이 생각됩니다.

그러나, 오 예수님, 어째서 당신 사랑의 비밀을 남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까?

당신만이 그것을 제게 가르쳐 주셨으니,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당신이 가르쳐 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을 알고 또 당신께 그렇게 하시라고 간청합니다.

당신 거룩한 눈길을 들어 수많은 '작은' 영혼들을 굽어보시기를 애원합니다.

당신 '사랑'에 맞먹는 '작은' 희생의 군대를 가리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하느님의 권리

 

저는 영혼을 살찌게 하고 하느님께 결합시키는 깊은 생각을 업신여기지는 않지만,

그것을 너무 중히 여기거나, 좋은 생각을 많이 받는 데 완덕이 있다고 생각지는 말아야 할 것임을 깨달은 지가 오랩니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이라도 행실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긴 다른 영혼들이 하느님께서 즐겨 특은을 내려 주신 어떤 영혼의 잔치에 참여하게 허락해 주시는 것을 겸손되이 생각하고 감사하면, 그들은 거기서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특은입은 영혼이 자기의 '아름다운 생각'에 만족하여 바리사이와 같은 기도를 한다면, 그는 자기가 청한 손님들은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으며 어쩌면 이렇게도 많은 재산을 가졌나하고 부러운 눈으로 가끔 쳐다보는데 정작 주인은 잘 차려놓은 상 앞에서 허기가 져서 죽는 사람과같이 되는 것입니다.

아! 참으로 사람의 마음속을 아는 이는 하느님 밖에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쩌면 그리 생각이 짧을까요.

어떤 사람이 자기네들보다 많은 은혜를 받으며, 그들은 바로 예수께서 그 사람보다 자기들을 덜 사랑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자기들은 그와 같은 완덕에 불릴 수 없다고 작정하여 버립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는 영혼들에게 그들의 필요한 양식을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어떤 사람을 쓰시는 '권리'를 언제부터 잃으신 것입니까?

파라오 시대에도 주께서는 아직 '이 권리'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성서에, 주께서 이 임금에게 "까닭이 있어 너를 남겨 두리라.

그것은 너에게 나의 힘을 나타내어 이 땅 위에서 나의 이름을 두루 떨치려는 것이다."(출애 9,16)하신 말씀이 있으니까요.

'지극히 높으신 이'가 이 말씀을 하신 뒤로 한없이 오랜 세월이 흘렀지마는,

그분의 행동은 변함이 없어, 언제나 여러 사람들을 당신 연장으로 가리시어 영혼들 안에서 당신 사업을 이루십니다.

 



작은 붓

 

만약에 화가가 그린 화포가 생각을 하고 말을 할 줄 안다고 해도,

붓이 자꾸만 저를 건드린다고 불평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며,

제가 아름다워지는 것이 붓 때문이 아니라, 그 것을 놀리는 화가의 덕택인 것을 알기 때문에 붓의 처지를 부러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붓은 또 붓대로 저를 써서 그린 걸작을 자랑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화가는 어떤 때 아주 여리고 불완전한 연장을 골라잡는 것을 난처해 하지도 않고 재미있어하며, 어려움을 우습게 여기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원장님,

저는 당신이 제게 맡겨 주신 영혼 안에 예수께서 당신 모상을 그리기 위하여 고르신 작은 붓입니다.

화가는 붓을 하나만 가지지 않고, 적어도 둘은 필요로 합니다.

하나는 그중 유용한 것이어서, 화포 전체에 밑바탕 빛깔을 삽시간에 칠하는 데 쓰는 것이고, 또 하나 작은 것은 잔손질을 하는 데 쓰입니다.

원장님, 당신은 예수께서 당신 자녀들의 영혼 안에서 '큰 일'을 하시고자 할 때에 예수님의 손이 사랑스럽게 잡는 귀중한 붓이고,

저는 잔손질을 하실 적에 쓰이는 '아주 작은 붓'입니다.

 

 

 

댓글 2

  • 2006년 7월 9일 오후 11:06

    실비아가 입회한 갈멜수도회에 갔다가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쁘고 잘 살았던 실비아가 수도회에서도 이쁘게 앉아있는 모습은 분명 예수님과 결혼한 신부였습니다.. 저는 실비아에게서 눈물의 꽃을 받았습니다....

  • 2006년 7월 11일 오후 11:04

    소화데레사 성녀는 어린 나이에 갈멜 수도원에 들어가서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 분은 전교의 수호성인이라고 하니...기도의 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