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소화(小花)데레사 - 장미꽃 비 (3)

2006. 7. 10. 오후 11:4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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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소화(小花)데레사 - 장미꽃 비 (3)

 

 

변명

 

원장님, 그래서 모든 죄책은 제게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반항했던 자매는 즉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는데, 그 줄거리는 이러하였답니다.

 "소릴 낸 건 아기 예수 데레사 자매랍니다.

참말 불쾌해요." 전연 다르게 생각하고 있던 저는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마는, 다행히 훌륭한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변명을 하기 시작하면 분명히 제 마음의 평화를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다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비난을 들을 만큼 제 덕이 굳세지를 못하니까, 구원의 마지막 널 쪽은 오직 도망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된 애덕

 

참된 애덕은 남의 결점을 모두 참아 견디며, 그들의 약함을 이상히 여기지 않고, 그들이 행하는 극히 조그만 덕행까지도 본보기로 삼는 데에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랑은 마음속 깊이 가두어 둘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등불을 켜서 됫박을 덮어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등경 위에 얹어 둡니다. 그래야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마태 5,15)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지요.

이 등불은 극히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추고 즐겁게 해야 하는 애덕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신비

 

하느님께서는 왜 어떤 영혼을 더 사랑하시며, 또 어째서 모든 영혼에게 똑같이 은총을 주시지 않는가를 저를 오랫동안 이상히 생각하였고 예컨데 성 바오로나 성 아우구스티노같이 당신을 거역했던 성인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후히 베푸시고, 말하자면 당신 은혜를 받도록 강요하신 것을 보고 저는 적이 놀랐습니다.

또한 저는 성인전을 읽다가 예수께서 이 영혼들을 날 때부터 마지막 숨질 때까지 귀여워하시어, 당신에게 오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이란 모두 치워 주시고 성세 때 받은 옷의 찬란한 광채가 흐려지지 않도록 무한한 은총으로 인도하셨는데, 그 반면에 가령 불쌍한 야만인들 중에는 하느님의 이름조차 들어 보지도 못한 채 죽는 이가 왜 그렇게도 많은가 이상히 생각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신비를 제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분은 제 눈앞에 자연이란 책을 펴주시고, 저는 그분이 조성하신 모든 꽃이 아름답다는 것과 장미의 화려함이며 백합화의 결백함으로 인해서 작은 오랑캐꽃의 향기나 들국화의 순박한 매력이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만일 작은 꽃들이 모두 장미가 되려 한다면, 자연은 그 봄단장을 잃어버리고 그들은 이미 갖가지의 작은 꽃으로 꾸며지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정원같이 영혼의 세계도 이런 것입니다.

그분은 백합화나 장미꽃에 견줄 수 있는 큰 성인들을 창조하고자하신 한편, 작은 성인들도 창조하셨으니 그들은 들국화나 오랑캐꽃처럼 하느님께서 발밑을 내려다보실 적에 그분의 눈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완덕이란 하느님의 성의를 행하는 데, 즉 그분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대로 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저는 또한 주의 사랑이란 가장 숭고한 영혼에나 마찬가지로 당신 은총을 도무지 물리치지 않는 극히 순박한 영혼에도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과연 사랑의 특징이란 자기를 낮추는 것이므로 만일 모든 영혼이 명료한 교리로 성교회를 비춘 성학자들의 영혼 같다면, 하느님께서 그들의 영혼에까지 오신다 하여도 그렇게 밑으로 내려오신 것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무것도 모르고 가냘픈 울음소리밖에 내지 못하는 어린애도 창조하셨고, 오직 자연법대로밖에는 행동하지 못하는 가련한 미개인을 창조하시고 저들의 마음에까지 내려오시니, 이것이야말로 그 순박함으로써 주의 마음을 끄는 들꽃들입니다.

이렇게 밑으로 내려오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히 크심을 보여주십니다.

해가 삼송이나 작은 꽃을 이것이 지상에 유일한 것 양 한결같이 비추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영혼 하나하나를 특별히 여겨 일일이 마음써 주시며, 자연계에서 사철이 돌고 돌아 가장 미천한 들국화까지도 때가 이르면 꽃이 피게 마련된 것처럼 모든 것이 각 영혼에 알맞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앎

 

저는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속에 있다는 것"(루가 17, 21)을 깨닫고 또 경험으로 압니다.

예수께서는 영혼을 가르치는데 책이나 학자가 소용되지 않으십니다. 학자 중의 '학자'이신 그분은 말소리 내지 않고 가르치십니다(준주 성범 3편 43, 3).

저는 그분의 말을 들은 적이 없지마는, 그분이 제 안에 계신 것을 느낍니다.

시시각각으로 예수께서는 저를 인도하시고, 제가 할 말, 할 행동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그것이 소용될 바로 그때에, 그때까지 보지 못하던 빛을 보게 됩니다.

이런 빛을 보는 것은 흔히 기도를 드릴 때가 아니고, 오히려 그날그날의 일을 해나가는 중에서입니다.



예수님의 벗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을 어떻게 사랑하셨으며, 또한 어째서 그들을 사랑하셨을까요?

아! 그분의 마음을 끌 수 있는 것은 저들의 타고난 장점이 아니었으니, 예수님과 저들 사이에는 무한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지식 즉 '영원한 지혜'요, 제자들은 무식하고 세속적 생각에 잠겨있는 변변찮은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저들을 "벗이요, 형제"(요한 15, 15)라고 부르십니다.

예수께서는 당신 아버지의 나라에서 저들이 당신과 함께 있기를 원하시고, 저들에게 그 나라의 문을 열어 주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고자 하십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 13) 하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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