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엄마집에 내려갔다가 한 일주일쯤 푹 쉬다 올라왔죠.
울 둘째언니가 자기도 없는 살림에 저 신학원 졸업했다고 졸업선물로
아주 비싼 화장품, 그러니까 프랑스제 콤팩트랑 루즈,
그리고 각양각색의 화장품샘플을 제게 선물로 안겨줬어요.
샘플이 얼마나 많은지 이건 뭐고 저건 뭐고 언니가 설명해줘도 당체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 말이죠.
안되겠다, 적어야겠다 싶어 유성펜을 찾았지만 유성펜은 하나도 안 보이고
할 수 없이 디지털 시계처럼 간헐적으로 나오는 불량 볼펜으로 샘플 겉면에다
언니가 불러줬던 화장품이름들을 상기하며 열심히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이건 피지팩! 십분 후 세안. 모공팩은 십오 분 후 세안.
저건 리프트크림... 나이트크림, 스킨, 로션, 젤, 클린징, 리무버, 마사지크림, 선크림, 아이크림, 핸드케어, 향수, 자음수...’
제가 쓰는 화장품도 마침 똑 떨어졌고,
하야 울 언니가 주는 대로 있는 대로 화장품을 긁어오긴 했지만
웬 샘플의 종류가 그리도 많은지.. 생전 처음 보는 것도 있었어요.
신기하기까지 하더군요.
그래서 서울로 오자마자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까칠하다 못해 푸석해진 제 얼굴에 팩부터 하는 거였죠.
‘가만 있어보자. 팩이... 팩이 어느 거였더라?’
샘플가방을 막 뒤져서 팩을 찾는데 뭔가 눈에 확 띄는 게 있더군요.
‘어라? 이건 꼭 젤같이 생겼는데. 근데... 팩?’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사용설명서를 찾아보니.... 불어더군요.
대략 난감했지만 팩 옆에 얌전히 놓여있는 초미니 스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스펀지.. 스펀지라. 이걸로 찍어 바르라는 거 아닐까? 그래, 맞아. 맞을 거야.
그냥 바르면 되는 거지, 뭐. 그냥, 발라.’
용감하게 포장을 뜯어 얼굴에 슥! 슥!
그 벌건 액체를 다 바르고 뉴스를 보고 있자니
좀 있다 얼굴이 조여 오는 것이 다 됐다는 신호가 오더군요.
얼굴을 살살 만져보니 뭔가 얇은 풀같이 제 손에 잡히는 게 있었습니다.
그걸로 그건 씻는 팩이 아니고 떼 내는 팩이란 걸 알고 얼굴에서 팩을 벗겨냈지요.
꼼꼼하게 팩 제거 후, 거울로 제 얼굴을 보는데...
세상에~
제 얼굴에서 찬란한 광채가 나는 게 아니겠어요?
‘홈마야~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도 아니고... 얼굴에서 광채가 나네. 광채가 나.
반질반질, 매끈매끈... 히야~~~~~~’
어쩐지 간만에 보는 울 언니의 얼굴이 이상하게 젊어 보인다 싶었습니다.
그 비결이 뭘까 궁금했는데 드디어 그 비밀을 알게 된 거지요. ^________^
당장 몇 가지 시험에 들어갔습니다.
수분을 바르고 영양크림...을 바르려는데?
또 다른 신기한 뭔가가 제 시선을 확 끌더군요.
‘황금색 빛이 도는 액첸데, 금이 섞인 젤...인가? 이건 언니 집에서도 못 본 거 같은데....
하필이면 이름도 안 적혔고. 이게 뭐지? ... 이게 뭔고?‘
야심한 밤에 언니집에 전화 걸어 자는 사람 깨우기도 그렇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용기에 적힌 설명서를 들여다보자니...
또 불어였습니다.
‘pur...라. 영어의 pure...인가?... pure....겠지. 그려, pure일 거야.
순한 거라면 젤이나 크림?... 아냐, 암만 봐도 크림은 아니고 젤 종륜 거 같은데.’
용기에서 적당량을 짜내 손등에 발라봤더니, 순식간에 스며드는 그 감촉이라니!
‘맞아. 그러고 보니 언니가 나 이거 얼굴에 발라 준 기억이 나는 거 같아.’
그, 미를 창조해줄 거 같은 황금색화장품을 얼굴에 듬뿍 바르고
행복한 마음에 꿈나라로 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세안을 하고 얼굴을 살펴봤는데 뭔가 다른 날보다 뽀송뽀송한 느낌.
마냥 신이 난 저... 룰루랄라하며 이틀 동안 그 젤을 열심히 발랐죠.
삼일 째 되는 날 아침.
기분도 좋게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홈마야~~~~’
전 거의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얼굴 눈 밑 양 볼에 산골처자같이 생긴 붉은 원형자국...
‘홈마야! 이게...’
당장 세수부터 했지요.
세안을 할 때의 그 따끔거림이라니...
‘홈마야~~~~’
스킨을 바를 때의 그 욱신거림은 또 어떻구요.
‘홈마야~~~ㅠ.ㅠ’
기초화장을 다 끝내고 난 뒤에도 제 얼굴은 여전히 온통 붉은색 일색이었습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형사 콜롬보같이 화장품들을 노려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긴 저.
‘유통기한이 초과된 걸까? 화장품이 변질돼서 화장품 바이러스가 생겼나?’
화장품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가 의문의?
유일하게 이름이 안 적혀있는 정체불명의 황금색 젤...
그 젤 통을 들고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뭐라뭐라 난해한 불어 밑에 다소 눈에 익은 영어가 적혀있는 걸 발견하게 됐지요.
‘린스, 워러... ’
친근한 단어들이 몇 개 눈에 띄더군요.
대충 확인해 보니 물로 씻어내는 거라고 해석이 되더라구요.
‘씻어내는 거라고??? 홈마야~~~~~~‘
언니한테 확인작업 들어가려니 서울로 올라오는 날부터 이놈의 핸폰이 먹통인 거예요.
전화를 건 사람도 걸어준 사람도 목소리가 서로 들리지 않는 통화가 불가능한 상황.
‘핸폰 수리를 해두는 건데.’ 하는 후회가 밀려와도 지금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할 수없이 얼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죠.
여차하면 피부과로 뛰어갈 수밖에요.
얼굴 피부가 어떻게 변하나 삼일 째 지켜보는 중인데
첫날은 붉다가
둘째 날은 마른버짐 같은 게 군데군데 피다가
삼일 째인 오늘은 피부의 각질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 중이랍니다.
영화 ‘V' 찍는 것도 아니고...ㅠ.ㅠ
거미인간도 아닌데 얼굴 양볼에 거미줄 같은 주름은 왜 지는 거죠?ㅠ.ㅠ
아무래도 피부과에 가봐야 할 거 같지만,
저는 그냥 일말의 희망?을 안고 버텨보기로 했습니다.
‘엄마집 내려갈 때부터 미사도 빼먹고 성체조배도 안 드리고
성당 가기 싫다, 주님한테 눈도장도 안찍고 개길 때부터 알아봤어, 너.
주님께 미안한 마음이 이 벌?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래.. 이것도 감사한 거야.
감사, 감사, 감사...^__________^;;'
그렇게 감사를 되찾고 보니 핸드폰도 제 주인 따라 정신이 돌아온 게지요.
서비스센터를 찾아갈 필요도 없이 오늘 언니와 통화를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언니로부터 기막힌 말을 듣게 됐어요.
‘뭐라고? 그게 각질 제거제라고....?’
‘십분 후 세안용인 각질제거제’를 전 젤이라 생각하고
이틀 동안 얼굴에 열심히 바르고 다녔으니
그 후유증 한 번 생각해보세요. ㅋㅋ... ㅠ.ㅠ
이 일로 제가 돌아본 게 하나 있답니다.
제가 주님과의 대화보다 한 순간 미에 집착하여 삼천포로 새고 있었다는 거...
그때-에스델자매님이 작년 여름경에 저한테 진주로 된 묵주팔찌를 선물로 주셨을 때-도
성체조배실에서 묵주기도하다가 주님 앞에서 주님은 안 보고 진주알만 들여다보고서는
‘이쁘다, 이쁘다. ’ 하고 있으려니 주님 보시기에 이건 아니다 싶으셨던지
집에 돌아와서 보니까 묵주팔찌가 제 팔목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는 거예요.
분명 성당에서 나올 때 팔에 차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올 때 누구랑 부딪힌 일도 제가 어디 들렀다 온 일도 없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그 일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에요.
잃어버린 진주묵주.
피부 트러블, 블란서제 화장품....
하느님...
주님...
‘축복 주십사, 제게 좋은 거 주십사.’ 주님을 조르고 조를 땐
주님 참 되게 늦게 오시는 거 같더니
주님...
주님보다 돈에 정신 팔려있을 때, 화장품에, 이쁜 진주에 혹해 있을 땐
왜 그리도 전광석화신가요.
허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