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뭘까요...
사탄인가?
그럼, 사탄의 정체는 뭘까요...
원수...금방 사전을 찾아보니
“자기 또는 자기 집이나 나라에 해를 끼쳐 원한이 맺힌 사람.”
이렇게 나와 있네요.
제게도 원수는 있습니다.
드디어 오늘...
원수라고 생각해오던 그 사람에게 그동안 쌓여있던 울분을 터뜨려
메일 한 장을 날려보냈습니다.
3월 달부터 시작됐던 악연...
이 인연으로 인해 고해소에 들락거릴 정도였지만,
신부님의 덤덤한 한 마디 말씀만 생각납니다.
“사람치고 버릴 사람.. 이 세상엔 아무도 없습니다.”
그 후로도 매일 두꺼비탕을 끓여 먹었습니다.
육식도 못하는 제가 두꺼비탕만은 즐겨하지요.
이 사람과 얽힌 일만 생각하면 편두통이 도지는데다...
한 숨이 두 숨 되고, 두 숨이 세 숨 되고...
도무지 하느님 딸이 아닌 사탄의 딸인 제 자신에 직면하게 되니,
뭔가 몸보신이 필요했습니다.
‘내가 이 정도 인간밖에 안되나... 신자 맞나... 대체 왜 사나...’
우울증에 빠져 세상을 비관하기도하고,
미움이랑 아무 인과 관계도 없는데 죽음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나이에 사람 미운 일로 주변 사람에게 자문 구하는 거...
비참하고 미치겠더군요.
그래도 누군가에게 물었습니다.
“좀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넌, 왜 사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
이런 생각은 날 때부터 진지파인 나만 생각하는 문제겠지,
성인이 되면 안하겠지 싶었더니,
그 사람이 그러대요.
“왜요.. 저도 인간인데 생각하죠.”
마침 이날.. 공교롭게도 달님반 게시판에 존재에 대한 글 두 개가 올라와있더군요.
두꺼비탕에 관련된 댓글이 반가웠습니다.
그 날만 해도 시커멓게 타들어가던 속이 기도 끝에 그런대로 정화되는가 싶었는데
어떤 일로 어제 오늘 그냥 폭발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메일을 날렸더니... 속은 시원합니다.
후회도 없습니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각났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마음속에 지워버리고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옛날 일들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몇 년 전 대구에서 있었던 일이지요.
개신교 신자 때부터 성가대는 기본으로 달고 살았던 터라
세례를 받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성가대에 드는 일이었습니다.
나이가 있어 청년부가 아닌 장년부 성가대에 들고 지휘자를 소개받았는데....
웬걸요...
지휘자가 저보다 십년이나 나이어린 자매님이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장유유서를 따지며 나 잘났다고 교만에 빠져 살던 때라
어린 지휘자가 인정이 안됐습니다.
겉으론 노래하나 더 부르려고 시키는 대로 하긴 했지만,
속으론 늘 꼬인 상태에 있었지요.
저만 그랬을까요???^^
그 지휘자가 성가대에서 제일 나이 어렸기에 나이 많고 사회경험 많은 형제자매님들은
툭하면 눈에 안 보이게 그 지휘자를 애 먹였지요.
하느님 믿는 신자에다 성스러운 성가를 부르는 곳에서도
암투, 시기, 질투....가 이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전 그 지휘자랑 나이가 가까워 친했기에
미사가 끝나고 나면 언니, 동생하면서 같이 놀러도 많이 다녔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지휘자의 영성은 세상 지식으로도 영성으로도
저보다 몇 수 위였습니다.
제가 늘 딸렸지요.^^
속으로 하느님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나이도 어린 것이 대따 무섭게 아는 것도 많네. 하느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면....’
그러던 어느날...
음악 이론 하나로 제가 그 지휘자한테 태클을 걸며 서로 공방전이 벌어졌지요.
별 것도 아닌 거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도 될 문제를
그 기회를 빌미삼아 제 안의 사탄이 절 충동질 했고...
결국 서로가 상처를 입고 파탄이 나고서야 제 정신이 든 나는 지휘자한테 사과를 하게 됐지만,
그 자매의 벌어져서 피가 나는 곳이
딸랑, 미안하단 말 한 마디로 금방 아물지는 않더군요.
‘나도 지휘자가 되면 너만큼은 해.’
진작부터 나의 이런 자만심과 질투를 알아챘던 지휘자였건만,
단지 한 단체를 이끌어가는 지휘자라는 입장 때문에 예수님 사랑을 위해서...
다니엘라라는 인간한테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못하고
몇 달 동안이나 빙빙 은유적으로 말을 돌려 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 난
정말이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성당을 나오게 됐습니다.
그 길로 냉담자가 됐지요.
그치만 하느님이 절 가만히 냅두겠습니까...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씀처럼 1년 반 뒤에 절 부르시더군요.
냉담이란 걸 어떻게 푸는 건지 몰라 전전긍긍... 끙끙 앓다가
먼 왜관 베네딕뜨 수도원까지 가서 면담 겸 고해성사를 신청하고 냉담을 풀게 됐습니다.
지금은 냉담이란 말 안 쓰지요.
그 때 신부님께서 주신 보속이 죽을 때까지 1주일에 3번 묵주기도 드리는 거랑
지휘자를 찾아가서 꼭 화해하란 거였는데...
제가 화해를 했을까요...
아니요...못했습니다.^^
못하겠더군요.
그런 상태로 세월이 흘렀고, 이게 마음에 걸린 저는 다시 작년에 이 일로 고해성사를 봤는데
신부님 말씀은 하느님 말씀이지요...화해하란 거였지만,
지휘자 있는 성당까지 가서 얼굴까지 봐놓고도 못하고 또다시 서울로 되돌아오게 됐습니다.
그 때 절 보고 상처 입은 지휘자 얼굴....잊지 못합니다.
2년이 흘렀으니 나의 못된 행실을 잊어버리고 있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건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거 같습니다.
지식이 교만과 만나면 사람을 찌르는 칼이 되지요.
지식만 그럴까요...
돈도 명예도 권력도.. 그 모든 것이..
심지어는 글도... 이 모든 것이
사람 안의 사탄과 만나면 사람을 찌르고 베는 칼이 됩니다.
물론 성령님과 조화를 이뤄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되기도 하겠지만요...
그 나이어린 지휘자에겐 장유유서의 문화가 뼈 속 깊이 박혀있는 모든 어르신들???이
웬수 같을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따르는데 삐딱하게 물을 먹여가며 따라주지 않으니 힘들었던 거지요.
오늘 몇 달 동안이나 절 힘들게 만들었던 사람에게 메일을 보내고 나니...
하느님께서 잠자고 있던 제 안의 비밀들을 하나둘씩 끄집어내십니다.
‘저 세리보다는 낫겠지.’ 하는
제 안의 바리새이인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번 방학 때는 그 지휘자를 찾아가
백배사죄해서 화해를 하고 와야겠다는 마음의 다짐도 새롭게 하십니다.
이 번에는 정말 화해하고 오려구요.
두렵지만... 가서 꼭 용서를 청해야겠지요.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이랑 꼭 화해를 해야만 하나...’
주변의 조언자들은 제게 그 사람을 아예 무시해버리라는 처방전을 내렸지만,
이런 내 마음의 저울질처럼 그 지휘자도 같은 값으로 절 저울질하고 있을 거고
어쩌면 다시 찾아갔을 때 화해하지 못하고 쫓겨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전 제 잘못에 대해서 누가 절 비난한다면 대부분 시인을 하고
마음의 매를 맞는 편입니다.
발뺌하거나 상대한테 악랄하게 뒤집어씌우지는 않지만,
유독 딱 한사람....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친했던 학교 선생님 한 분(가톨릭신자)이 동영상 기자개 연구실 키를 잃어버려서
온 학교가 비상이 걸린 적이 있었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이 잡듯이 같이 뒤져봐도 없던 키가
퇴근하겠다고 저 혼자서 옷을 갈아입을 때 제 바지 호주머니 안에서 나오다니 말입니다. ^^;
제가 내 실수라 하고 키를 그 선생님께 갖다 줬을까요?
아닙니다.
너무 창피하고 겁나서 그 선생님 책상 위에 몰래 올려놓고선
그 뒤로 삼십육계 줄행랑쳤고 그 뒤로도 시치미를 뚝 떼버렸지요.^^;
그 선생님만 바보만든 꼴입니다.
친했는데도 진실을 말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그 선생님은 아무 것도 모른 체 멀리 타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이 선생님 연락처를 알게 되면....ㅋㅋ... 진실을 말하고 몰매를 맞아야겠지요?^^;
제가 두 사람한테 벌였던 시기, 질투...발뺌, 시치미...
이제는 역으로 제가 어떤 인물로부터 심심찮게 당하는 일입니다.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이랑 나는 사고관이 너무 달라서 저는 이런 일들이
하느님 심판대에 섰을 때 문책감이라 생각되지만,
그 사람 입장에선 세상 지혜롭게 살아가는 처세술쯤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처세술 그러니까...
제가 부산 모 특수학교에 특수교사로 첫 발령받은 날...
그 학교에서 뺀질이라 별명 붙은 서울출신 남선생님 한분이
십년간 자기 쓰던 절름발이 책상과 내 새 책상을 바꿔치기한 일도 생각나네요.
‘아.. 여기가 이제 하나님(그 땐 개신교 신자였음) 사랑을 일궈낼 내 사명지구나.’
폼 딱 잡고 손등으로 턱을 괴며 앉았자니,
책상이 기우뚱하며 절 사납게 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팔다리에 상처가 났기에 양호실로 가서 치료받고 나오는데
교무새임이 제게 왜 다친 거냐고 이유를 묻습니다.
신참인 저한테 헌 책상이 왔다고 했더니 혀를 끌끌 차시며 교무새임 하시는 말씀...
“또, 또.. 그 뺀질이가... 내가 분명히 새 책상을 주라고 일렀건만.....
쯧, 쯧....
누구한텐 그게 세상 살아가는 지혜라니.... 선생님이 참아.”
당분간은 두꺼비 탕을 안 끓여도 될 것 같습니다.
대신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입니다만...
참 이상하지요?
성서에선 샘물이 단물과 쓴물을 동시에 낼 수 없다 하지만,
샘물에 비유되는 인간은 더러운 것도 내고 아름다운 것도 마음대로 내니 말입니다.
기분이 착잡합니다.
그리고 불안합니다.
누가 저 위해서 기도 좀 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