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미친 남자, (펌글)

2007. 1. 24. 오후 5:22:15

글자
축구에 미친 남자, 발로 차주기
[리뷰] 영화 <내 남자 길들이기>
 
같이 사는 남편 혹은 애인이 축구에 미친 남자라면? 결혼식은 축구장에서 올리고, 결혼 예복이랍시고 축구복을 입고 나타나며, 틈만 나면 축구장에 달려가 자신이 속한 아마추어 축구팀과 공을 차는 남자라면?

축구 연습이 끝나면 축구팀 선수들과 맥주를 마시고, 집에 오면 축구 경기 보느라 TV 앞에 진 치고 앉아 리모콘을 놓지 않으며, 아내가 애 낳는 날도 축구장에서 공이나 차고 있는 남자라면? 이 정도 중증은 아니더라도, 아무튼 축구에 미친 남자와 같이 사는 여자라면?

<내 남자 길들이기>는 그런(여자에겐 끔찍하고 남자에겐 그럴 수도 있는) 상황을 유쾌하게 그린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다. 한 마디로, 축구에 환장한 내 남자, 축구로 골려주기다.

이봐 남자들? 그걸 축구라고 해?

베를린에서 잘 나가는 건축기사로 일하던 안나(노라 치르너)와 알콩달콩 잘 살던 남친 폴(크리스티안 울멘)은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네가 필요해. 고향으로 돌아와 줘." 이유? 하나다. 고향 친구들이 뭉쳐 뛰는 축구팀 '에마95'팀에 선수 한 명이 병원에 실려 가서다.

공격수 한 명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여자친구 따라 베를린으로 가버린 폴이다. 폴은 그 사실은 감쪽같이 숨기고 안나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거짓말해 안나를 끌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안나가 축구라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싫어하는 걸 알아서다.

안나는 폴이 고향이 그리워 돌아가자는 줄 알았더니 웬 걸? 폴의 고향 친구 스테픈의 결혼식장에 갔다가 안나는 경악한다. 결혼식장은 축구장이고, 신랑도 축구복 차림이요, 친구들도 몽땅 축구복 차림인데다, 알고 보니 이 친구들은 모두 축구에 죽고 못 사는 이들 아닌가?

결혼식에도 무덤덤하던 신랑은 친구들이 준 월드컵 결승전 티켓 선물에 감격해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날" 어쩌구 외치고, 보아하니 중병도 이런 중병이 따로 없다. 거의 축구에 미친 중환자 클럽이다.

게다가 믿었던 폴도 뒤지지 않으며, 고향에 돌아온 게 축구를 하기 위해서다. 축구에 미친 아버지로 인해 축구라면 진절머리를 치는 안나는 눈이 뒤집힐 지경인데, 축구에 미친 남편 혹은 남친을 둔 '에마95'팀 여자들은 말한다. 축구로부터 남친 혹은 남편을 떼놓는 것? "불가능해." 화도 내고 섹스도 거부해보고 별 짓 다 해봤지만 소용없었다나?

급기야 열 받은 안나는 폴에게 한 가지를 제안한다. 니네 그걸 축구라고 하냐? 그런 축구라면, 우리도 할 수 있다. 여자들이 만든 팀과 한 판 붙자. 여자팀이 이기면? 남자들은 찍소리 말고 여자들이 원하는 소원 하나씩 들어주기.

물론 폴은 당장 축구를 때려치우고, 안나랑 같이 베를린으로 돌아갈 것. 남자팀이 이기면? 여자들은 남자들이 아무리 축구에 미쳐 날뛰어도 찍 소리 안 하고, 불평 한 마디 안 하겠음.

남자들은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니네가 축구를 알아?), 계약서까지 만들어 사인한다. 여자축구팀은 '에마95'팀 남자와 1년 이내 섹스를 한 여자(혹은 남자)라면 누구나 입단 가능. 드디어 전쟁이고, 드디어 훈련 시작이다. 너 죽기 아니면 나 살기다.

여자들은 축구팀 이름까지 'FC VENUS' (이 영화 원제다)라고 짓고 의기양양 축구연습에 돌입했으나? 작전은 좋았는데 문제가 있었다. 축구에 미친 남자를 남편으로 두면 뭐하나? 운동과 담 쌓고 살던 여자들은 '오프사이드'가 뭔지도 모르고, 조금만 뛰면 헉헉댄다.

하지만 니네가 모르는 게 있다. 안나가 누군가?(스포일러라서 비밀이다) 여자라고 얕보지 말라 이거다. 드디어 각자 인생을 건 한판, 결전의 날이 다가온다.

축구엔 축구! 여자들 축구공을 빼들다

제목이 유치해서 그렇지, <내 남자 길들이기>는 스포츠에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닌 남친을 둔 여자라면 한 번 꿈꾸어봤음직한 이야기다. '발로 차주고 싶은 내 남자'에게 발로 차주는 것보다 더 고소하게 복수하기다(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고소할까?). 바로 네가 제일 잘 한다고 여기는 걸로 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기. 하지만 그뿐이냐?

여자들이 축구에 미치자, 남자들도 당황한다. 집에 오면 따뜻한 식사가 아니라 썰렁한 거실이 기다리고, 축구에 미친 여편네 혹은 여자친구를 지켜보자니 황당하다. 백날 말해봤자 소용없다. 똑같이 당해봐야 알지.

원래 핀란드에서 쓴 각본을 독일에서 사들여 만든 이 영화엔 탄생 일화가 있다. 핀란드 감독이 술자리에서 한 축구광 이야기를 들었는데, 축구에 미친 남편을 보다 못한 아내가 남자에게 말했단다. "나야? 축구야? 하나 선택해." 남자는 축구를 선택했고 결국 이혼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감독은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해 그걸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축구에 죽고 못 사는 이들이 우글우글한 유럽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우리로 치면, "술이야? 나야? 하나 선택해" 이런 남자들이 더 많겠지만.

독일 영화라고 해서 '예술' 하는 바람에 머리 쥐나게 하거나, 알 수 없는 독일식 유머감각으로 황당하게 하지도 않는다. 우테 빌란드 감독은 이 영화가 영국 영화 <풀 몬티>의 뒤를 이을 코미디라고 밝혔다는데, 그만큼 찡하진 않지만 영화가 주는 유니크함이 있는 건 맞다. 달콤 쌉쌀한 로맨틱 코미디다.

영화 곳곳에서 때맞춰 흘러나와주는 음악도 예술이다. 시원하게 쭉쭉 뻗어져나가는 Queen의 'We are the champions'부터 Steam의 'Na Na Hey Hey kiss him goodbye'까지 우리 귀에 익은 올드 팝이 우글우글하다. 대충 영화 분위기 맞춰 흐르는 게 아니라, 영화 내용에 딱 딱 맞춰 흐르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따라 부르다보며 웃게 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Gerry&The pacemakers의 'You'll never walk alone'은 우리에겐 그다지 익숙하지 않지만, 유럽에선 유명한 노래다. 영국 프로축구팀 리버풀의 대표적인 응원가랄까. 리버풀 팬들은 리버풀 경기가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슴에 희망을 품고 걷고 또 걸으란 가사를 지닌 이 노래를 부르며 리버풀 팀을 응원한다나?

깔깔대고 웃다 보면 98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다. 축구에 미친 남자도, '오프사이드'도 모르는 축구맹 여자도 재밌게 볼 수 있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와 다른 위트가 한결 신선하고 눈에 짝짝 달라붙는다.

댓글 1

  • 2007년 1월 24일 오후 5:26

    토요일(1/27) 축구 영화'비상' 볼 분 연락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