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티니의 본명은 Simone Martini(1284(?) - 1344)입니다.
고딕 미술의 중요한 대표자이며, 시에나 미술의 영향을 널리 보급하는 데 가장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마르티니는 시에나에서 태어났으며 두초 디 부오닌세냐에게서 3차원적 공간을 표현하는 기술을 익히고
또한 그에게서 조화롭고 순수한 색채에 대한 애착과 초기 인물 유형의 대부분을 물려받았습니다.
피렌체를 비롯한 북부지역이 지오토의 영향으로 고딕 미술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며 발전한 것과는 달리
마르티니가 살았던 시에나는 갑작스럽고 혁명적인 방식으로 초기 비잔틴 미술전통과 단절하는 대신
거기에 새로운 생명감을 불어넣으고 노력했으며 그것은 마르티니에 의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금빛 배경을 바탕과 놀라운 기교로 배치된 인물, 차라리 값비싼 금속을 세공하는 금 세공인의
작품처럼 보이는 모습 등이 마르티니가 버리지 않은 중세미술의 특징일 것입니다.
하지만 중세 미술인들의 또 하나의 특징인 사물의 진정한 모습과 비례를 무시하고 공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성스러운 이야기의 상징들을 배열해나간 것과는 달리 마르티니는 그와 같은
수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물 주위의 소품들, 이를테면 의자나 책 화병과 같은 요소들을
지오토가 해냈듯이 실제의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마르티니는 또한 위대한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의 친구였습니다. 오늘날 페트라르카의 명성은
주로 애인 라우라를 위해 쓴 많은 연애시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시에는 마르티니가 페트라르카의
애인 라우라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이야기가 나와있습니다. 중세에는 우리가 아는 초상화의 개념이
없으며, 단지 남자나 여자에 대한 인습적인 형상을 그려 놓고 나타내고자 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그 그림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구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마르티니는 라우라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냈을까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라우라의 초상화는 남아 있지 않으며 단지 이 시대에 들어서며
실물과 비슷한 초상화가 다른 화가들에게서 보이기 시작했으니 마르티니 또한 그의 다른 여러
작품에 있는 인물묘사처럼 라우라의 그림을 실제와 비슷하게 그렸으리라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 작품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패널화 '수태고지'입니다.
이 작품에서 여러분은 위에 설명된 바와 같이 고딕 미술의 특징인 화려함과 도식성,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미술의 특징인 입체감과 사실성을 마르티니가 어떻게 표현했는 지에 주안점을 두어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패널화란 패널에 그려진 그림을 말하는데, 여기서 패널이란 벽, 천장, 문 따위의 테두리 속에 쑥 들어
가 있거나 밖으로 불쑥 나온 판자를 말합니다. 위의 그림은 제단 뒤의 칸막이로 사용된 것을 뜻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