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속으로

2004. 11. 12. 오후 1:15:19

글자

어제는 비가 내렸습니다.

은행잎이 비 속으로 내렸다고 해야 좋을 듯할.

얼마 전

가을 우체국 앞의 노란 은행잎에 마음을 모았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이 가을을 얼마나 풍성하게 했는지

노래라는 공감대로 우리를 얼마나  윤기나게 했는지.

보도블럭을  노랗게  물들여 눈 온 날 처럼 설레었습니다. 

 

 

날이 곧 어두어져

영랑호 한 바퀴를 도는 동안에도 

꼭 자동차 불빛이 아니더라도

붉으면 붉은 대로, 노랑은 노란대로 환했습니다.

가다가 서고 가다가 서고 하는 동안 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끊길 듯 이어지는 바이올린의 선율도

익은 잎들도 함께 말입니다.

 

 

사람이 만들지 않은 모든 것은 왜 아름다움인지

마른 나뭇가지나 흙 묻은 나뭇잎,쭉정이만 남은 풀 대궁이까지.

그들에게는 이기심이나 지나친 애착, 뭐 그런 것들이 없어서일까

그들은 정말 생에 대한 애착이 없을까

없을까

 

 

숲길을 돌아나오는데

우리에겐 희노애락보다 

애오욕으로 인한 고통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에

좀 가벼워져 왔습니다.

 

 

그래도 가을비 내리는

아니 은행잎 쌓인 길을 걷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걸어서 슈퍼에 다녀오면서

두 꼬챙이에 오백원 하는 오뎅을 간장에 꼭꼭 찍어 먹고

뜨거운 국물 한 컵 마시면서

 

 

발 밑, 별이 스러지는 소리에 짙어가는 가을밤 속을

그렇게 바라 보았습니다. 

비 속으로 은행잎이 내리는 길을 걸으며

 

 

댓글 5

  • 2004년 11월 12일 오후 1:32

    아..오늘 아침 큰신부님 강론에 들고 나오신 푸른,단풍든,마른 나뭇잎...우리의 삶도 그러하리라고요.애틋하게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은 우리들 입니다..

  • 2004년 11월 12일 오후 1:38

    길을 걷다 작은선술집에 들러 따끈한 정종한잔 든 기분... 첼로의 G현 처럼 깊이깊이 침잠하는 가을입니다

  • 2004년 11월 12일 오후 1:41

    저도 어제 성서공부 끝나고 일부러 노란 은행잎들을 밟고 또 밟았답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

  • 2004년 11월 12일 오후 1:45

    성서공부를 끝내고 나오면서 어둠속에서도 마치 야광처럼 황금색 빛을 띤 수녀원쪽 은행나무와, 그아래 벤치, 그리고 낙엽들을 한동안 서서 바라보았답니다. 영화속 한장면 같던 그곳을

  • 2004년 11월 12일 오후 7:14

    가을풍경이 이렇게까지 성가대원들을 홀릴줄이야! 가을을 즐기는 모습들이 아름다우니 성가 부를때 성가소리도 아름답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