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아시시에서 귀족인 오프레두치오와 오르톨라나디 피우미의 딸로 태어난 성녀 클라라(Clara)는
용모도 뛰어나서 12세 때 혼인을 서두르는 부모들의 강권을 물리쳤으며, 1212년 사순절 때 성 프란치스코의 설
교에 크게 감명을 받고 수도생활을 결심하였다. 그녀는 성지 주일에 부모 몰래 집을 빠져나와서 포르지웅콜라
에서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수도복을 받았다.
프란치스코는 아직 여자 수도원을 세우지 않았으므로, 바스티아 근방 성 바오로(Paulus)라는 베네딕토 수도
원에 그녀가 머물게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들이 그녀를 강제로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므로 끝까지 항거하
다가, 산 안젤로 디판초로 옮겼는데 그 얼마 후에 15세 된 동생 아녜스까지 언니에게 와서 함께 수도생활을 시
작하였다. 그녀의 부친은 12명의 장정을 무장시켜 아녜스나마 데려오려고 하였지만, 클라라의 간절한 기도의
힘에 의해 끝내 아무도 데려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들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산다미아노(San Damiano) 성당을 모원으로 확정
하였으며, 이들을 위한 생활양식을 써줌으로써 가난한 부인회가 탄생된 것이다. 이 회가 잉글랜드(England)에
서는 작은 수녀회(Minoresses)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클라라회이다. 클라라는 1215년 인노켄티우스 3
세(Innocentius III)로부터 ‘가난의 특권’을 얻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애긍에 의존해도 좋다는 허락이다. 그 후
클라라는 이 특권을 유지하는데 늘 고심하였고, 교황이나 다른 성직자들이 수녀들의 규칙이 너무 엄격하다고
반대해서 많은 곤경을 겪었다. 클라라회의 수녀들은 당시 어느 수도회보다도 엄격하고 가난하였다. 그러나 클
라라를 비롯한 동료들은 높은 수준의 관상가들이었으며, ‘복음적 완덕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녀는 약 40년 동안 공동체를 지도하였지만 늘 건강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성 프란치스코의 뜻이 담긴 클라
라회의 회칙은 그녀가 운명하기 이틀 전에야 겨우 승인을 받을 정도로 그 엄격성 때문에 논란이 많았던 것이다.
클라라회는 급속도로 이탈리아 전역과 프랑스, 독일로 보급되었고 교황과 추기경 및 주교들의 자문 역할로써
떨친 그녀의 영향도 지대하였다. 그녀는 수많은 기적으로 더욱 영광스럽게 되었는데, 1241년 그녀의 기도로 프
레데릭 2세의 난폭한 군인들로부터 아시시를 구출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1253년 8월 11일에 아시시에서 운명하
였는데, 2년 후에 곧바로 시성되었다. 클라라는 텔레비전의 수호성인이고 문장은 성체 현시대이다.
가톨릭 성인에서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