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파비올라 (12월 27일)

2004. 12. 21. 오후 1:03:19

글자

   성녀 파비올라는 로마의 유명한 귀족 가문인 파비아가(Fabia family)에서 태어났고, 얼마 동안은 성 히에로

니무스(Hieronymus)의 후원자였으나 오래지 않아 그만 두었다. 결혼한 남편의 너무나 방탕한 생활로 말미암

아 이혼하였으나 그녀 자신도 사회생활을 떠나야만 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위로를 찾게 되었고, 교회의 명

을 어겼기 때문에 로마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스캔들이 되었다. 즉 이 스캔들은 그녀가 이혼한 상태에서

재혼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던 것이다. 오래지 않아 두 남자가 모두 죽게 되자 그녀는 공적인 회개를 하고 교회

로 되돌아 와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이때부터 그녀는 화려한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교회를 돕는 일과 자선활동에 헌신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

여 그녀는 395년에 베들레헴을 순례하고 성 히에로니무스를 만났다. 그녀는 그곳에 집을 짓고 정착하기를 원했

으며 성 히에로니무스의 성서 번역 사업을 후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던 조용한 생활을 하지 못하

였는데 그것은 곧 자신의 성격이 부적합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차제에 팔레스티나(Palestina) 신자들을 지도

하는 문제를 두고 성 히에로니무스와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고, 또 훈족들이 이 지역을 위

협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성 히에로니무스와 그의 후원자들과 함께 야파(Jaffa)로 피신하였다가 로마로 돌아왔다.

   로마에서도 그녀는 자선사업을 계속하였는데, 특히 성녀 바울라(Paula)의 사위인 성 팜마키우스

(Pammachius)와 함께 병자와 순례자를 위한 집을 포르토(Porto)에 지었다. 이 집의 개원은 이 분야의 최초 사

업이었으므로 그 이름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이런 활동조차 그녀의 모든 열정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죽을 당시에도 새로운 사업을 계획할 정도로 헌신적이고 정열적이었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그녀

를 위해 두 편의 글을 남겼는데 그것이 우리가 그녀를 알게 된 주요 자료들이다.

 

 

가톨릭 성인에서 옮김.

댓글 1

  • 2004년 12월 22일 오후 11:22

    안젤라 자매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예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