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체칠리아 (11월 22일)

2004. 12. 21. 오후 1:09:35

글자

   귀족 가문 태생으로 체칠리라고도 알려진 성녀 체칠리아는 로마(Rome)에서 태어났으며 그리스도인으로 교

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 발레리아누스(Valerianus)와 결혼하였으나, 남

편으로 하여금 자신의 동정을 존중해 주도록 확신시켰고 마침내는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켰다. 또한 남편의 형

제인 성 티부르티우스(Tibrutius)를 개종시키는 놀라운 열성을 보였다.

   발레리아누스와 티부르티우스는 그때부터 늘 자선 활동에 전념하다가 순교하였다. 그들이 행정관인 알마키

우스(Almachius) 앞으로 끌려가 이교도 신전에 희생 제물을 바치라는 강요를 거절하자, 심한 매질을 당하고

로마 근교 파구스 트리피오에서 성 막시무스(Maximus)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막시무스는 발레리

아누스와 티부르티우스가 보여준 그리스도께 대한 굳은 신앙을 보고 감화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가 순교

한 것이다.

   체칠리아(Caecilia)는 이 세 명의 순교자들(축일 4월 14일)을 장례지낸 다음 체포되었다. 그녀는 용감하게 알

마키우스와 논쟁하였으며, 행정관은 도저히 체칠리아의 신앙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사형을 언도하였다.

질식사시키려던 그녀의 사형 집행이 기적적으로 중단되었을 때, 한 군인이 그녀의 목을 베도록 선발되었다. 그

가 맡은 일을 서투르게 처리해서 그녀는 3일 동안이나 누워 있다가 9월 16일에 운명하였다.

   성녀 체칠리아에 대한 공경은 수세기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보편화되었고, 그녀의 행적들이 수많은 전설이

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순교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티부르티우스를 비롯한 다른 성인들은 세

베루스 알렉산데르(Severus Alexander, 225-235년 재위)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고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

어 있으므로 어느 정도 추정할 수는 있다. 체칠리아는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이다. 그 이유는 그녀의 결혼

식 때 그녀는 결혼 음악과 환호하는 소리들을 듣지 못하였고, 오히려 그녀의 내심으로만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

래를 불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녀의 문장은 오르간이다.

 

 

 

가톨릭 성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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