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사랑!

2005. 4. 6. 오전 10:12:01

글자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주님의 사랑을 느끼는 오늘!

잠시 기도 하며 보내지요?

 

2005년 4월 6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5,17-26
그 무렵 대사제와 그의 일당인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모두 사도들을 시기하여 들고일어나 사도들을 잡아다가 자기네 감옥에 처넣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중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어서 가시오. 그리고 성전에서 이 생명의 말씀을 남김없이 사람들에게 전하시오.” 하고 일러 주었다. 이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가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한편 대사제와 그의 일당이 모여 의회와 유다인의 원로들을 소집하고 사람을 감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경비원들이 감옥에 가 보니 사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므로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하였다. “감옥 문은 아주 단단히 잠겨 있었고 문마다 간수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문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성전 경비대장과 대사제들이 이 보고를 듣고 도대체 사도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에 한 사람이 달려와서 “당신들이 감옥에 가두어 둔 사람들이 지금 성전 뜰에 서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고 일러 주었다. 그래서 경비대장이 경비원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려왔다. 그러나 백성들이 자기들을 돌로 칠까 두려워 폭력은 쓰지 않았다.

 

 

사도들이 다시 감옥에 들어갔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징표를 주셨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사도들을 감옥 밖으로 이끌어 낸 것입니다.
주님의 천사는 사도들에게 그들의 직무를 일러 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체포당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사도들은 실전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복음 요한 3,16-21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받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과연 악한 일을 일삼는 자는 누구나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 봐 빛을 미워하고 멀리한다.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그가 한 일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한 일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어둠 속의 행위들이 더 이상 어둠 속으로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빛이 세상 안으로 들어왔고, 어둠은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들의 행위는 하느님 안에서 빛을 받게 됩니다. 참된 것은 행하는 이들과 말씀을 믿는 이들은 빛을 향하여 나아오며 빛을 받아 백일하에 알려지게 됩니다. 진리를 행하는 이들은 빛으로 나아갑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자주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말없이 들고 있거나, 글귀를 설명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짧은 네 단어의 나열이지만 굉장한 의미가 담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하느님께서 종말에 무시무시한 심판을 하시리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유다교의 묵시문학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 합니다. 사랑이시고 자비 지극하시다는 하느님께서 나약한 인간을 어찌 그리 모질게 다루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심판을 자초한다고 보는 게 옳겠지요.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불신의 결단으로, 구원 또는 멸망을 자초하기 때문입니다. 종말 심판에 앞서 각자 지금 여기서 신앙과 불신의 결단을 내리는 순간에 이미 심판이 내려진다는 것이 요한복음을 쓴 사람의 생각입니다.
심판하시는 하느님보다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이 더욱 하느님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저는 적어도 그리 생각하고 싶고 거기에 희망을 두고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신 분이십니다. 그것도 외아들의 몸을 희생제물로 삼아 인간을 죄의 사슬에서 구해주신 하느님이십니다.
죽음에 대한 많은 연구와 책으로 유명한 퀴블러로스라는 스위스계 미국 여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느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이승에서의 삶을 되돌아보는 동안 당신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하느님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무시해 버린 당신 자신을 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최악의 적이 바로 당신 자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민수 신부(서울대교구 중견사제연수)


노동 교화를 받던 범죄자가 도로 확장 공사에 동원되었습니다. 그는 공사를 하다가 큰돈을 주었습니다. 그는 감독관에게 그 돈을 건네주었지요. 그러나 감독관은 그를 오히려 모욕하면서 말합니다.

“왜 이러나. 돈으로 나를 매수해서 형을 줄이고 싶은 거지? 하여간 너희 도둑놈들은 그런 생각밖에 못한다니까.”

죄수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자신을 믿어 줄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 그는 탈옥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집 저 집을 돌며 돈을 훔쳤습니다. 그 돈으로 외국으로 도망갈 생각이었지요.

충분한 돈을 마련한 그는 국경으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객차 안은 너무 붐벼 자리가 없었지요. 할 수 없이 화장실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쁜 아가씨가 그의 곁을 지나쳐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안에서 문을 닫다가 문고리가 고장이 나서 잠기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밖으로 나와서 그 탈주범에게 부탁합니다.

“선생님, 문이 안 잠기네요. 실례지만 밖에서 문 앞을 막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는 멍해져서 아가씨에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가씨는 화장실로 들어갔고, 그는 충실한 경호원이 되어 문 앞을 단단히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는 갑자기 생각을 고쳐먹었답니다.

다음 역에 기차가 멈췄을 때, 그는 기차에서 내려 자수를 했습니다.

이 사람이 자수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한 아가씨의 작은 신뢰를 통해서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제 갑곶순교성지의 경당 축복식이 불과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곳의 공사는 한창입니다. 그러다보니 불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혹시 그날까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 때문에 일하시는 분들에게 속도를 더 내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됩니다. 그분들은 제게 걱정하지 말라고, 이제 큰일은 거의 끝났기 때문에 최소한 12일까지는 다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때까지 될 것 같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마냥 불안한 마음에 일하시는 분들에게 싫은 소리도 하게 되네요.

사실 지금의 상황에서 그분들을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믿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저의 불안한 모습을 보는 일하시는 분들도 힘들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도 이렇습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를 믿어주는데 왜 우리들은 그분께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지요? 혹시 다른 것들을 믿지 않다보니 주님까지도 의심하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을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 받지 않으나, 믿지 않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 받았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믿음을 키우는 오늘이 되십시오.

 

 

죄는 예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주님 두려운 줄을 모르기에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살 때 비로소 떳떳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속마음을 보십니다. 우리 죄를 없애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주님을 세상에 널리 알려서 모든 이가 주님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남을 믿어 줍시다.



삶을 아름답게 하는 메세지


*첫번째 메세지*
남자는 여자의 생일을 기억하되 나이는 기억하지 말고,
여자는 남자의 용기는 기억하되 실수는 기억하지 말아야 한다.

*두번째 메세지*
내가 남한테 주는 것은 언젠가 내게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내가 남한테 던지는 것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세번째 메세지*
남편의 사랑이 클수록 아내의 소망은 작아지고,
아내의 사랑이 클수록 남편의 번뇌는 작아진다.

*네번째 메세지*
먹이가 있는 곳엔 틀림없이 적이 있다.
영광이 있는 곳엔 틀림없이 상처가 있다.

*다섯번째 메세지*
달릴 준비를 하는 마라톤 선수가 옷을 벗어던지고
무슨 일을 시작할 때는 잡념을 벗어던져야 한다.

*여섯번째 메세지*
두 도둑이 죽어 저승에 갔다.
한 도둑은 남의 재물을 훔쳐 지옥엘 갔고,
한 도둑은 남의 슬픔을 훔쳐 천당에 갔다.

*일곱번째 메세지*
남을 좋은 쪽으로 이끄는 사람은 사다리와 같다.
자신의 두 발은 땅에 있지만 머리는 벌써 높은 곳에 있다.

*여덟번째 메세지*
행복의 모습은 불행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고,
죽음의 모습은 병든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

*아홉번째 메세지*
웃음 소리가 나는 집엔 행복이 와서 들여다보고,
고함 소리가 나는 집엔 불행이 와서 들여다본다.

*열번째 메세지*
황금의 빛이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고,
애욕의 불이 마음에 검은 그을음을 만든다.

*열한번째 메세지*
어떤 이는 가난과 싸우고 어떤 이는 재물과 싸운다
가난과 싸워 이기는 사람은 많으나
재물과 싸워 이기는 사람은 적다.

*열두번째 메세지*
느낌 없는 책 읽으나 마나, 깨달음 없는 종교 믿으나 마나.
진실 없는 친구 사귀나 마나, 자기 희생 없는 사랑 하나 마나.

*열세번째 메세지*
마음이 원래부터 없는 이는 바보이고,
가진 마음을 버리는 이는 성인이다.
비뚤어진 마음을 바로잡는 이는 똑똑한 사람이고,
비뚤어진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열네번째 메세지*
누구나 다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성인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것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열다섯번째 메세지*
돈으로 결혼하는 사람은 낮이 즐겁고,
육체로 결혼한 사람은 밤이 즐겁다.
그러나 마음으로 결혼한 사람은 밤낮이 즐겁다.

*마지막 메세지*
받는 기쁨은 짧고 주는 기쁨은 길다.
늘 기쁘게 사는 사람은 주는 기쁨을 가진 사람이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댓글 2

  • 2005년 4월 6일 오전 10:35

    14번째 메시지 특별히 가슴에 와닿습니다.^^

  • 2005년 4월 6일 오전 11:02

    받는 기쁨은 짧고 주는 기쁨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