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뒷모습(예수회 후원회 소식지에서 퍼왔습니다.)

2004. 12. 28. 오전 11:00:40

글자

아버지의 뒷모습
[예수회] 박종인(사도 요한) 수사


  아주 특별한 운명으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를 하여야겠습니다. 우리가 거의 공통적으로 겪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내 아버지에 관한 특별한 기억을 더듬어 보려하기 때문입니다.

  길건 짧건 어느 만큼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아버지가 뒷모습을 보이셨던 때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입니다. 수도자 되겠노라 집을 떠나던 날 아침에, 그물을 손보시는 듯 무심히 등을 돌려 앉아서는 떠나가는 아들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셨던 아버지. 병에 시달리는 당신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모로 누워 벽을 향하고 계셨던 아버지. 당신 어머니를 땅에 묻어 드리고는 돌아서지 못한 채 어깨를 들먹이시던 아버지. 못된 아들 녀석에게 회초리를 드시고는 밖에 나가 먼 산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시던 아버지. 어머니가 몇 일간 집을 비운 사이, 찌개를 끓이시려 조리대에 붙어 계시던 아버지. 집을 떠나와 고학하는 자식을 찾아왔다가 헤어져야 할 순간에는 용돈을 호주머니에 밀어 넣어 주시고는 도망치듯 떠나시던 아버지. 기도하시려고 십자고상을 향해 앉아 계시던 아버지. 열린 문틈으로 내비치던 그분의 뒷모습...

  우리 아버지들의 이런 뒷모습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직접 당신들의 표정, 특히 그늘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이요, 자식들이 잘 되기를 원하면서도 사랑을 표현하는 데 너무 수줍어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은 그렇듯이 강한 모습만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살아오셨습니다. 누가 가르쳤다고 할 것도 없이, 아주 오래 동안 지속되어 온 부성의 특성이요 통념이 되어 습득되어 온 유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머니를 자친(慈親)이라는 부르는데 이의를 달지 않듯이, 아버지를 엄친(嚴親)이라 여기는 것은 이 두 분의 역할이나 분위기가 그만큼 다르다는 걸 뜻합니다.

  어쩌면, 사내들은 아버지의 영역에서 벗어나고자 부단히 애쓰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분가를 한다거나 경제적으로 독립을 한다고 해서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계속 그 일을 한다고 하여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의 영역을 넘어선다는 것은, 그로부터 도망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부모가 심어 준 것들을 숙명적으로 간직하고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러니 온전히 떨어 낼 수 없고, 그럴 것이라면 떨어내려 헛수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요. 오히려 나의 부모님과 겪어야 했던 상황들을 통해 내가 어떻게 성장해 왔으며, 하느님께서 날 어찌 살려 주셨는지를 되짚어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겁니다. 나는 이것을 아버지의 뒷모습을 회상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릴 때는 위염을 앓았고, 급기야는 위 수술을 받으셔야만 했던 아버지. 그래서 밝게 웃는 모습에 대해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또한 선생님이셨기에, 그 직업이 주는 이미지에 상당히 충실하셨던 분이라 내겐 아버지의 ‘엄함’이 그것으로 인해 더 강화되어 다가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내게 뒷모습을 보인 채 꾸준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자라 왔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이제는 감사 드려야겠습니다. 아버지의 기도 속에 항상 우리 가족과 이웃이 있었다는 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고, 이 기도는 당신의 삶이 아들을 이렇게 투신하며 살도록 만들었던 게 분명합니다.

  종종 우리는 일상에서 하느님이 우리를 외면하시는 듯한 사건들을 경험하곤 합니다. 아주 오랜 기간동안 겪었던 사람도 있고 여전히 겪고 있는 이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상상하고 기대하는 정도로 선한 분이 아닌 듯 합니다. 이 견해가 그렇다 아니다를 떠나서, 우선 인정할 것은 우리가 여전히 그분을 제대로 알지는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별 말씀 없고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지도 않았던 아버지가 얼마나 묵직하게 당신의 자리를 지켜 주셨는지를 떠올리고 나면, 하느님 아버지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전에 입회를 하던 날, 아버지는 수련장 신부님께 이 녀석 사람 좀 만들어 달라고 농담 어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나 서원을 하게 되었을 때, 수련장 신부님은 사람 만들지 못했다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아버지께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서원을 축하해 주러 오셨던 분들이 재밌다고 웃으셨습니다. 그렇지요. 사람이 어디 쉽게 변하겠습니까? 지금도 여전히 나는 아버지 눈에는 덜 자랐고 부실한 녀석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점은 내가 계속 자라고 있으며, 자라야 함을 설명하여 줍니다. 실제로 실습기를 마쳐가고 있는 지금까지 나는 하느님의 선물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특별히 주변 사람들을 통해 받았습니다. 그리고 변하긴 변하여 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성장한다는 것은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기도하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종종 그리워지는 걸 보면, 아버지의 그늘을 떠나 이제는 나의 삶을 걷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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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빠가 참 그리워지네요~

댓글 2

  • 2004년 12월 28일 오후 3:55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 못지 않은것 같습니다. ^^

  • 2004년 12월 28일 오후 4:41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