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득솔. 한번 읽어보시고 주일미사를 ^^

2006. 6. 9. 오후 3:30:23

글자

(나해) 삼위일체 대축일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 로마 8,15

 

‘아버지.’ 분명 내게 생명을 주시고 나를 정말 사랑하고 계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웬지 모르게 부르기 힘들고 어려워집니다. 포근한 어머니의 품과는 다른 근엄한 표정 뒤로 보일 듯한 그 깊은 정을 느끼면, 마치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서 있는 편안함과 신뢰를 주시는 분, 그분을 우리는 아빠, 아버지라 부릅니다.

 

 

둥 치

 

복 음 (마태 28,16-20)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ㅇ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ㅇ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ㅇ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ㅇ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제 1 독서 (신명 4,32-34. 39-40)

 

이제, 하느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에게 물어보아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어보아라. 과연 이처럼 큰일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 이와 같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ㅇ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ㅇ 아니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하신 것처럼, 온갖 시험과 표징과 기적, 전쟁과 강한 손과 뻗은 팔과 큰 공포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에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ㅇ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ㅇ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제 2 독서 (로마 8,14-17)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ㅇ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ㅇ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ㅇ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길라잡이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은 하느님은 한 분이시나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되어있다는 삼위일체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세 위격들이 본질은 동일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이러한 관계는 우리의 이성으로써는 쉽게 파악되어지지 않는 신앙의 대상입니다. 유다교 최대의 진리는 유일신론 즉, 다만 하나이신 하느님의 존재였습니다. 이것은 주변 국가들이 알지 못했던, 유다교만의 독특한 특징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와 연관하여 그리스도교 최고의 진리는 삼위일체론입니다. 물론 삼위일체론은 유일신론을 부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유일신론의 기본적인 내용에다 신의 본성에 대한 깊은 지식을 첨가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가 동등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신의 본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 길동이 두 사람을 죽이고 건상(乾象)을 살펴보니, 은하수는 서으로 기울어지고 달빛은 희미하여 슬픈 심회를 돕는지라. 분기를 참지 못하여, 초란까지 죽일까 하다가, 상공이 사랑하심을 깨닫고 칼을 던지며 망명도생(亡命圖生)을 생각하고, 바로 상공 침소에 나아가 하직을 고하고자 하는데, 이 때 공이 창 밖에 인적이 있음을 괴이히 여겨 창을 열고 보니 이 길동이라, 곧 불러서 묻는다.
“밤이 깊었거늘 네 어찌 자지 아니하고 이리 방황하느냐?”
길동이 땅에 엎드려,
“소인이 일찌기 부생모육지은(父生母育之恩)을 만분지 일이나 갚을까 하였으나, 집안에 의롭지 못한 사람이 있어 상공께 참소(讒訴)하고 소인을 죽이려 하매 겨우 목숨은 보전하였사오나, 상공을 모실 길이 없기로 오늘 상공께 하직을 고하나이다.”
하거늘, 공이 크게 놀라 말한다.
“네 무슨 변괴 있기에 어린 아이 집을 바리고 어디로 가려 하느냐?”
“날이 밝으면 자연 아시려니와, 소인의 신세는 뜬 구름과 같사오니, 상공의 버린 자식이 어찌 갈 곳을 두리까.”
길동이 대답하고 두 줄기 눈물이 흘러 말을 이루지 못하거늘, 공이 그 형상을 보고 측은히 여겨 타이른다.
“내 너의 품은 한을 짐작하나니, 오늘부터 호부호형(呼父呼兄)함을 허(許)하노라.”
길동이,
“소자의 일편지한(一片至恨)을 아버님이 풀어 주옵시니 죽어도 한이 없소이다. 바라옵건대, 아버님은 만수무강하옵소서.”
하고 재배 하직하니, 공이 붙들지 못하고 다만 무사하기를 당부하더라.
- <洪吉童傳> 中에서 -

오늘같이 거룩한 삼위일체 대축일에 “웬 길동?”인가 하며 이상하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홍길동전에서 보듯이 우리의 조선시대에는 자기를 낳은 아버지도 어머니가 신분이 천하면 그 신분 차이로 인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조그만 신분 차이에도 이러하나, 오늘 제 2독서에서는 우리가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과 우리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서 건널 수 없는 무한한 신분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많은 피조물 중에서 사람을 택하시어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영적인 분이시라 우리의 육적인 눈으로는 그분을 아버지로써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어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게 도와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곧 성령이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기도할 때, 마음으로부터 하느님 아버지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길동이보다 더 큰 감사와 감동으로 하느님 아버지를 불러봅시다.

 

 

아버지!

 

1)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느님 아버지를 소리내어 반복해서 불러봅시다.
가장 좋은 기도가 될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2) 삼위일체 신앙에 대해 자신이 설명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나누어 보십시오.

 

 

거멀못

 

"세상 끝 날까지" (마태 28,20)

 

갑자기 이사가게 되어서 혹은 서로 너무 바빠서, 어찌어찌 하다 보니까…, 예전엔 그야말로 단짝 친구였는데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모를 친구들이 한두 명 정도는 있을 거예요. 엄마에게도 언니에게도 안 가르쳐주는 비밀을 지키기로 손가락 걸며 약속도 했었고, 그 애가 주번이라도 걸리는 날엔 해가 뉘엇뉘엇 질 때까지 책상 위에 올라가서 수다떨다가 선생님께 걸려서 야단맞기도하고, 집에 갈 땐 꼭 떡볶이랑 쫄면을 먹어야만 직성이 풀렸던 우리였는데…. 지금은 아무리 상상의 날개를 펼쳐봐도 그 애의 어른이 된 얼굴을 상상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군요. 가끔 TV에서 옛 친구를 찾아주는 프로를 볼 때면 ‘혹시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정말 그때는 우리가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함께 할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의 한계 운운하며 슬퍼하기보다는 그대로 인정하고 현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자고요. 최선을 다하기가 어렵다면 성심껏이라도요. 그것도 어렵다면 간혹 가다 사는 얘기라도요. 이것도 힘들다면, 하느님께 맡기는 수밖에…. †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 8,17)

 

그 친구가 진정한 친구인지는 기쁘고 즐거울 때가 아닌,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알게 된다고 합니다. 좋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은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힘든 시간을 기꺼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을 그만큼 사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생활에서 그러한 모습들을 많이 봅니다. 넉넉하고 풍요한 시절 나에게 다정하고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사람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그들의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고 상냥한 모습들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상황이 어렵고 난처한 시기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빠지고 냉랭해지는 사람들. 그런 어려운 시기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이 아닌 늘 말없이 같은 모습으로 나를 보아주고 안타까워하며 싫은 소리도 가끔 던져준 그런 친구였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러한 껍데기를 모두 벗어 던지고 알맹이를 보기 위한 것은 아닐는지…. 그런 의미에서 가끔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주변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고난의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는 어떠한 고난의 시간이 다가와도 절대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것이 하느님, 혹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건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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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하고 부족하디 부족한 저를 그래도 주님의 자녀로 택하여 주시고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시니 주님의 이와같은 사랑과 자비에 너무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과 자비를 마음에 새기며 언제나 성령께 민감하게 귀 기울이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래서 제 뜻이 아닌 주님 뜻대로 제가 잘 나아갈 수 있도록 주님 이끌어 주소서. 주님안에서 힘과 용기를 받고 조금씩 저를 단련시켜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과 함께하는 고난은 참된 부활의 길이니 그 길 또한 이끌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또한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깊은 사랑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그리고 주님의 집에서 결혼을 하고, 결혼생활 안에서도 주님과 충분히 함께 하는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주님께 더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죄와 죽음과 악으로부터 저와 저의 가족을 구원해 주신 사랑과 자비의 아버지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사랑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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