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3일 가해 연중 30주일(전교 주일) 마태오 28, 16-20- 그리스도인의 사명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사명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바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 곧 “그러므로 너희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네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는 이 계명을 받았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전하고 또 가르치는 전교 사명을 수행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전교는 분명, 말로만 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과거에 비해, 과학문명의 발달과 가치관이 많이 달라진 이 시대에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는 말과 삶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움직이게 할 때, 참되게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전에는 예수님을 전함에 있어 ‘복음화’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며 증거하는 것이 바로 전교요, 복음화이기에 이를 중점으로 행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을 모르는 나라까지 복음이 전해졌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신앙으로 고백하였지만, 실제 모습은... 삶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주일 미사에 참여만 하면 모든 것을 다한 것인 양 생각하였습니다.
바로, 신앙 따로, 삶 따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복음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예수님을 모르는 곳뿐만 아니라, 이미 복음이 전해진 곳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복음화’가 시급해졌습니다.
새로운 복음화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복음화라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되었기에 이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화의 참된 의미와 정신을 사람들에게 쉽고 자세하게 알려주고 다시금 강조하여 복음이 삶으로 드러나도록 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곧, 복음의 눈으로 보고, 듣고 말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복음화가 뿌리 내리게 될 때, 사람들은 머리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고, 말로써가 아니라, 삶으로 예수님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과 무관한 하느님이 아니라, 늘 함께 살아가는 ‘네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느끼게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복음화의 정신으로 예수님을 전하신 분이 누구일까? 고민하다가 ‘몰로카이 섬의 성자’ 다미안 신부님이 떠올랐습니다.
다미안 신부님께서 나환자들에게 주님을 전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처음 죽음의 땅이라 불리는 몰로카이 섬에 갔을 때, 나환자들은 신부님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대했습니다.
단순히 자신들을 동정하는 사람으로만... 성직자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며 신부님을 거부하고, 의도적으로 신부님의 말과 여러 계획에 반대했습니다.
신부님은 ‘왜 그럴까?’ 고민하다가 이곳에서 유독, 자신만 정신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예수님, 저도 저들과 같은 병에 걸리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진정 그들과 함께 살아가게 하소서. 저들에게 나병이 죄악의 결과가 아님을... 저주받을 병이 아님을 깨우쳐 주게 하소서.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더 강하게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어느 날, 난로위에 올려진 주전자의 물을 컵에 따르다가 실수로 자신의 발에 뜨거운 물을 흘리게 됩니다.
100도가 되는 물이에도... 심한 화상을 입었음에도.. 그 어떤 통증이 느껴지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때, 다미안 신부님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합니다.
‘하느님, 이제야 제가 진정 저들과 함께... 저들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저들에게 참되게 당신을 전하게 되고,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신부님의 진심을 알게 된 후에, 많은 사람들이 신부님을 찾아옵니다.
그토록 신부님을 미워하며 반대하던 사람들도 신부님을 찾아와 눈물을 흐리며 참회를 하고 신부님의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신부님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체험하여 욕심, 저주, 비난, 싸움이 끊이지 않아 마치 지옥처럼 느껴지던 몰로카이 섬이 다미안 신부님으로 인해 웃음과 사랑과 용서가 넘치는 공동체로 변하게 됩니다.
진정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 용서의 말씀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무 의미가 없고, 소용없던 곳이, 어느 덧 예수님의 말씀이 실현되고, 그 말씀으로... 복음으로 살아가는 곳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이 전혀 희망이 없고 시기, 질투, 비난, 저주, 싸움이 끊임없던 곳이 사랑, 용서, 자비, 봉사의 공동체로 변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진정 이루어야할 새로운 복음화입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다미안 신부님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목숨까지 희생하며 예수님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 지향하고, 신부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할 수는 있어도, 실제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다미안 신부님처럼 될 수는 없다하더라도, 신부님의 마음과 정신은 본받을 수는 있습니다.
복음을 말과 머리로만 믿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며 느끼는 기쁨과 행복과 변화된 모습을... 지금 느끼는 그 감동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게 된다면, 그러한 모습이 바로 참되게 예수님을 전하고 증거하는 모습이요, 우리가 이루어야할 참된 새로운 복음화일 것입니다.
다음 예화를 함께 나누며 강론을 마칠까 합니다.
내가 완벽하게 언어를 구사하고 현지인처럼 말을 한다 해도
그분의 사랑이 나에게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리,
내가 화려한 졸업장이나 학위를 가지고 있고
모든 현대의 선교방법들을 알고 있다 해도,
그 분의 사랑으로 감동되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리,
내가 그 사람들의 모든 종교들 성공적으로 논박할 수 있고
그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 수 있다 해도
그분의 애절한 사랑의 편지가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리
내가 온전한 믿음과 큰 이상과 장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분의 사랑에 젖은 땀과 눈물과 기도와 간구가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리
내가 그들을 위해 옷을 벗어 주고 돈을 나누어 준다 해도
그들을 위한 그분의 사랑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리
내가 모든 야망을 내려놓고 집과 친구들을 떠나고
나의 선교 경력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다 해도
매일의 삶에서 크고 작은 귀찮은 일들 때문에
싫증을 내고 이기적이 되어 버린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리
내가 질병을 고칠 수 있다 해도 그분의 사랑이 부족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에 아픔을 주고 다른 이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리
내가 갈채를 받을 만한 글을 쓰고 비록 책을 낸다 해도
십자가의 말씀을 사랑의 언어로 옮기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리
다움 까페 가톨릭 교리반 에서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