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10월14일)

2014. 10. 14. 오전 6:26:39

글자

♡10월 14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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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우덴시오(Gaudentius)
 
축일  10월 14일 

아시아 출신의 성 가우덴티우스(또는 가우덴시오)는
332년 로마(Rome)에서 성직에 들어선 후
346년에 이탈리아 중부 리미니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357년의 공의회를 지배한 아리우스파
(Arianism)에 의해 많은 고통을 당하였고,
결국 그들에 의해 순교의 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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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갈리스토 1세(Callistus I)
 
축일  10월 14일 

성 칼리스투스(또는 갈리스토)는 로마(Rome)의
트라스테베레 태생인 로마인이었으나
카르포포루스의 노예로서 회계 일을 맡고
있었는데, 그가 돈을 잃어버리자 도망하였다가
포르토에서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중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여기서 석방된 후에 그는 또
시나고가에서 싸우다가 다시 체포되어,
이번에는 사르데냐(Sardegna) 섬의 광산에서
일하는 중노동형을 받았다. 그는
황제 콤모두스의 아내 마르치아의 요청으로
다른 죄수들과 함께 또 석방되었고,
노예에서도 석방되었다.

199년경에 그는 부제가 되었으며, 아피아 가도
(Via Appia)의 묘지들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고,
이때 그는 교황 제피리누스(Zephyrinus)의
친구이자 고문관이 되었다. 그는 217년에
제피리누스를 승계하여 교황이 되었으나,
교황직에 가장 유력시되던 히폴리투스의
심한 반발을 받았다. 그들은 교리적으로
또 규율적인 입장에서 교황을 공격하여
쉽사리 사그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몇 년 후 그가 운명함으로써
이 싸움이 끝났다. 4세기경부터 그는
순교자로 공경을 받았는데, 그 당시에는
박해가 없었지만 아마도 폭도들에 의하여
살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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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칼리토 1세 교황 순교자(222년 순교)

이 성인에 대해 가장 믿을 만한 보고는
그의 적인 최초의 대립 교황이며 나중에는
교회를 위해 순교한 히폴리토 성인에 의한 것이다.
부정 원리가 여기에 이용된다. 만일에 어떤
나쁜 일이 있었다면 히폴리토가 그것을 분명히
언급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칼리스토는 본래 로마 황제 집안의 노예였다.
그는 주인이 은행에 대한 책임을 맡겼는데
예금된 돈을 잃어버려 도망갔다 붙잡혔다.
얼마 동안 유예 기간을 주고 돈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그는 지나친 열성을 보인 탓으로 유대인 회당에서
말다툼을 일으키고 체포되었다. 이번에는
사르데냐의 광산에서 중노동을 하도록 선고받았지만
황제 후궁의 배려로 석방되어 안치오
(제2차 세계 대전 때 유명한 상륙 지점)에서 살았다.
그는 자유를 얻고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지하 공동 묘지(아직도 성칼리스토의 지하
묘지라고 불린다.)의 총지배인이 되었다. 이 묘지는
아마도 교회가 소유한 최초의 땅일 것이다.

교황은 그에게 부제품을 주어 자신의 친구이자
조언자로 삼았다. 그는 로마의 성직자와 평신도들의
절대 다수에 의해 교황에 선출 되었고 그 후
교황 선거에서 떨어진 성히폴리토의 심한 공격을
받았다. 교회역사 중 최초의 대립 교황인
성히폴리토는 스스로 교황이라 지칭하였다.
이러한 분열은 약 18년간 계속되었다.
히폴리토는 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그는
235년의 박해중에 추 방되었으며 교회와 화해하였다.
그는 고통 속에 사르데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교리와 규율이라는 두 가지 면에서 칼리스토를
공격했다. 히폴리토는 아마도 신학적 언어가
아직 다듬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의 구별
-거의 두 하느님을 만들 정도로-을 너무나
과장한 듯하다. 그는 또한 칼리스토가 너무
관대하다고 비난했다. 다음과 같은 면에서 우리는
칼리스토의 놀라운 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살인과 간음, 간통에 대해 이미
공적 참회를 한 사람에게 는 영성체를 허용한다.

둘째, 자유로운 여인과 노예 사이의 혼인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로마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셋째, 두 번이나 세 번 결혼한 사람들에게도
신품을 허락한다.

넷째, 대죄를 지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주교를
파면하는 데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다섯째, 박해중에 일시적이고 배교한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푼다.

칼리스토는 로마의 트라스테베레에서 지역적
반란이 일어났을 때 순교했으며
베드로를 제외하고는, 교회의 가장 오래된
순교록에서 순교자로 기념되는 첫 교황이다.
우리가 칼리스토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을지라도 그가 가장 위대한 교황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의견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설명 : 이 성인의 생애는 교회 역사의 과정은
진정한 사랑의 과정처럼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 준다.
교회는 적어도 오류를 분명히 막아 줄 만한
언어로 신앙의 신비를 선언하는 데 있어서
괴로운 투쟁을 해야 했으며 아직도 해야 한다.
규율 면에서 볼 때 교회는 완전한 회개와 자제라는
복음적 이상을 견지하면서도 엄격주의에 맞서는
그리스도의 자비를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참으로 그리스도교의 모든 교황들은
'합리적인'관용과 '합리적인'엄격주의 사이에 있는
어려운 오솔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인용 :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 수 있으라?
마치 장터에서 아이들이 편갈라 앉아 서로
소리지르며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다.'하며 노는 것과 같구나.
요한이 나타나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저 사람은 미쳤다.'고 하더니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까 '보아라,
저 사람은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와 죄인하고만
어울리는구나.'하고 말한다." (마태 11,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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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나시아노(Donatian)
 
축일  10월 14일 

로마(Rome) 태생의 성 도나티아누스
(Donatianus, 또는 도나시아노)는
프랑스 랭스의 제7대 주교로 축성되어
30년 동안 교구를 돌보았다. 그의 유해는
처음에는 아미앵(Amiens) 근교에 모셔졌다가
9세기에 벨기에의 브뤼헤(Bruges)로 옮겨졌고,
그곳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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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미니코 로리카토(Dominic Loricatus)
 
축일  10월 14일 

성 도미니코(Dominicus)의 부모는 아들이
성직자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주교에게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하여 아들이 사제직에
나아가도록 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젊은 신부가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크게 느끼고 앞으로는 결코
미사나 성무를 집행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아펜닌 산 중에는 몬테펠트로의
요한이라는 성자가 일단의 은수자 무리를
지도하고 있었다. 수많은 제자들이 18개에
달하는 움막 속에서 엄격한 은수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도미니코는 원장을 찾아가서
자기도 이 고행의 대열에 끼워달라고
간청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이곳의 선배
은수자들도 놀랄 정도로 열심히 보속생활을
하였다.

이렇게 몇 년을 살다가 그는 폰테 아벨라나로
갔는데, 이곳은 성 베드로 다미아누스가
지도하는 은수소였다. 이곳의 원장도
오랜 동안 영웅적인 보속생활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양과 생활 태도를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염소 가죽으로 행낭을 만들어 입었고
(이 때문에 행낭이란 뜻의 로리카토라는
별명을 얻었다), 편태는 물론 손발에는
쇠사슬을 묶었고, 음식은 극히 소량을
섭취하고, 맨땅에서 잠을 잤다.
이런 고행을 그는 죽을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는 나중에 산 세베리노 근방의 어느
은둔소의 원장이 되었다. 죽는 날의 마지막
밤에도 그는 밤기도를 형제들과 함께 바치고,
1시경을 바치면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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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스티코(Rusticus)
 
축일  10월 14일 

독일 남서부 트리어의 주교였던
성 루스티쿠스(또는 루스티코)는
성 고아르(Goar, 7월 6일)에 의해 성적인
부당한 행위로 고발되어 주교좌에서 사임한 후
성 고아르의 지도하에 은수자로서 지냈다.
그는 자신의 남은 생애를 깊은 참회와
침잠 속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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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성 루포(Lupus)
 
축일  10월 14일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와
성 루푸스(또는 루포)는 소아시아
카파도키아(Cappadocia) 지방 카이사레아
(Caesarea)에서 순교했다는 것 외에
순교 연대나 기타 상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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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나르도(Bernard)
 
축일  10월 14일 

프랑스 또는 영국 출신으로 알려진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또는 베르나르도)는
예루살렘(Jerusalem) 성지와 로마(Rome)
순례를 마친 다음 이탈리아 캄파니아(Campania)
지방의 아르피노(Arpino)에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그의 유해는 로카 다르체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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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부르카르도(Burchard)
 
축일  10월 14일 

성 부르카르두스(Burchardus, 또는 부르카르도)
신부는 독일 선교를 위하여 웨식스(Wessex)를
떠나 동향 사람인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와
함께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겼다.
성 보니파티우스는 프랑코니아(Franconia)의
뷔르츠부르크 초대주교로서 부르카르두스를
임명했는데, 이 지방은 그의 놀라운 사도적
정열로써 복음화가 이루어졌다.
성 부르카르두스는 성 킬리아누스(Chilianus)의
유해를 성 사비우르 대성당으로 옮겼고,
뷔르츠부르크에는 성 안드레아 수도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753년 기력이 다할 즈음에
스스로 주교직을 사임한 그는 함부르크(Hamburg)로
은퇴하여 여생을 지내다가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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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안가드리스마(Angadrisma)
 
축일  10월 14일 

안가드레시마(Angadresima)로도 불리는
성녀 안가드리스마는 테루안(Therouanne)의
주교이던 성 오메르(Omer)와 리옹(Lyon)의
주교이자 삼촌이던 성 람베르투스(Lambertus)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하여 수녀가 되었다.
이때 그녀는 이미 초오시(Chausey)의 젊은
영주인 성 안스베르투스(Ansbertus)와
결혼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녀는
육체적으로 이상이 생겨 결혼할 수 없도록
해달라고 하느님께 간청하였는데,
이 은혜로 인하여 그녀는 나환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안가드리스마는 성 우엔(Ouen)의 지도로
수녀복을 받았는데 그 즉시 병이 사라졌다.
그 후의 그녀는 그 이전보다 더욱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성녀는 범사에서 모범적이었으며
원장으로까지 선출되었는데, 그녀의 지혜로운
지도와 거룩한 생활은 기적의 선물로 보답을
받았던 것이다. 그녀는 80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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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카르포니우스(Carponius)

성녀 포르투나타(Fortunata)

성 에바리스토(Evaristus)

성 프리스키아누스(Priscianus) 

축일  10월 14일

성 카르포니우스(Carponius)는 그의
여자 형제인 성녀 포르투나타(Fortunata)
그리고 남자 형제인 성 에바리스투스
(또는 에바리스토)와 성 프리스키아누스
(Priscianus)와 함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 중에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신앙 때문에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8세기에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로 옮겨 모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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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스토(Justus)
 
축일  10월 14일 

프랑스 바바레(Vivarais) 출신인
성 유스투스(또는 유스토)는 비에난 성당의
부제로 있다가 350년에 리옹 교구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는 381년의 아퀼레이아
시노드(Synod of Aquileia)에 참석하였고
아리우스파(Arianism) 주교들과 쟁론을 벌였다.
그러나 폭도들의 손에 처참하게 죽은 어느 사람과
자신의 행동이 어느 정도 연관 있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 결과 그는 비밀리에 주교좌를
떠나 이집트의 어느 수도원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그의 은신처가 우연히
발견되었으나 돌아가기를 한사코 거부했으므로
그의 사후에야 리옹으로 유해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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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포르투나토(Fortunatus)
 
축일  10월 14일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
토디의 주교였던 성 포르투나투스
(또는 포르투나토)는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
(Gregorius I, 9월 3일)에 의해 큰 존경을
받았으며, 그가 행한 기적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다.
그는 또한 동고트족(Ostrogoths)의 약탈로부터
토디를 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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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네킬다(Manehildis)

성녀 린투르다,

성녀 아마따,

성녀 푸신나,

성녀 호일다,

성녀 프란쿨라,

성녀 리베르지스
 
축일 : 10월 14일

식마로와 그의 아내 그리고 일곱 딸들인
모두 성인 성녀로 공경받는다.
린투르다, 아마따, 푸신나, 호일다, 프란쿨라,
리베르지스 그리고 마네킬다이다.
이들 일곱 자매는 샬롱의 주교 성 알피노에게
수도 서원을 발하였고, 특히 마네킬다는
영육의 훌륭한 일들을 많이 하였다.
부친의 사망 후에 성녀 마네킬다와 형제들은
집을 떠나 마른느의 비엔빌에 있는 은둔소에서
살았다. 특히 그녀는 죽을 때까지 돌보던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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