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10월16일)

2014. 10. 17. 오전 6:56:08

글자

♡10월 16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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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갈 (GALL)  

축일 : 10월 16일

아일랜드 태생인 그는 뱅골에서
성 꼼갈과 골룸반의 문하생으로 공부하여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성 골룸반을 수행하여
골 지방 선교에 나섰던 12명 가운데 한 사람이며,
스승과 더불어 안느그레와 뤽세이유에도 갔었다.
그후 그들은 쮜리해 지방을 돌며 복음을
선포하였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스승은 이탈리아로 갔다. 이 때 그는 건강이
나빴으므로 수행하지 못하고, 슈타이나크에서
은수자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많은 제자들이
모여 들었다. 성 갈의 수도원은 중세까지
문학과 미술 그리고 음악의 중심지로 크게
명성을 떨렸다. 그는 스위스 아르본의 사도로
공경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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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성 네레오(Nereus)

축일  10월 16일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와
성 네레우스(Nereus)를 포함한 365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리우스파(Arianism) 왕인
젠세릭의 박해 중에 아프리카에서 순교하였다.
그런데 이들 순교자들은 같은 날 기념하는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와
성 사투리아누스(Saturianus)를 중심으로 한
아프리카의 순교자들과 동일인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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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룰로(Lull)
 
축일  10월 16일 

웨식스(Wessex) 왕국의 잉글랜드(England)
사람인 성 룰루스(Lullus, 또는 룰로)는 자신이
공부했고 또 서품을 받은 말머스베리 수도원에
교육기관을 세웠으나, 선교 사명을 새로이
자각하게 되자 독일로 건너가 성 보니파티우스
(Bonifatius)의 영접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위대한 성인과 함께 사도직을 수행하였지만
그를 반대하는 박해도 많았다. 그 후 751년에
성인의 심부름으로 로마(Rome)로 갔다가
프리슬란트(Friesland)를 거쳐 마인츠로 갔다.
성좌는 룰루스의 선교지를 풀다 교구에서
면속시킴으로써 마인츠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매우 정열적인 사목자였으며, 거의
30여 년 동안이나 교구를 다스려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또 그의 학덕은 프랑스와
로마까지 널리 알려졌고, 기도와 단식 그리고
미사에 관한 세부지침 등을 마련하여 지키게 했으며,
교황의 서거일에는 합당한 미사를 봉헌하고,
또 동료들의 사망 때에도 미사를 의무적으로
봉헌케 하는 등 놀라운 배려를 했던 최초의
주교이다. 만년에 그는 헤르스펠트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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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Margaret Mary Alacoque)
 
축일  10월 16일 

클로드 알라코크와 필리베르트 라멩의 딸인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Margarita Maria Alacoque)는 1647년 6월 22일
프랑스 샤롤레 지방 베로브르의 로트쿠르에서
태어났고, 그녀가 8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죽자
샤롤레의 성녀 클라라(Clara) 수녀회의
기숙학교에 보내졌다. 그러나 15세가 될 때까지
5년 동안은 류머티즘 열로 인하여 자리에
누워서 지냈는데, 어릴 때부터 성체께 대한 신심은
남달리 뛰어났다. 그녀는 결혼을 거절하고
1671년 6월 20일 파레이르모니알(Paray-le-Monial)의
성모 방문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그 이듬해 11월 6일
‘마르가리타 마리아’라는 수도명으로 수도서약을
하였다. 그녀는 모범적인 수녀였으나 유머 없는
수녀로 통했던 것 같다.

그녀는 1673년부터 1675년 사이에 그리스도의
환시를4번이나 경험하였다. 이러한 환시에서
그리스도는 그녀에게 당신의 성심께 대한 신심을
널리 전하는 도구로 선택되었음을 알렸고,
특별히 첫 번째 금요일에 영성체할 것과 매주
목요일 밤에 성시간을 갖고 구속사업에 참여하라는
신심을 그녀에게 교육시켰으며, 예수 성심 축일의
제정을 요구하셨다. 그녀는 자신이 환시 중에 받은
교육을 따르려는 노력 중에 장상으로부터 수많은
퇴짜를 받았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노력하여
온갖 장애를 극복하였으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발현 문제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당신의 수녀회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녀는 당시 수녀원의 고해신부였던
성 클로드 드 라 콜롬비에르(Claude de la Colombiere)
신부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콜롬비에르 신부는
파레이르모니알의 예수회 원장이었는데, 그는
마르가리타의 환시가 올바르다고 선언하였다.
1684년 멀랭 수녀가 원장으로 선출되었을 때
수도원 내의 반대도 종식되었으며, 후일 그녀는
수련장이 되었다. 1686년 초에는 수녀원에서
예수 성심 축일을 거행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고,
2년 후에는 예수 성심께 봉헌된 경당이 수녀원
뜰에 세워졌고, 곧이어 예수 성심 축일을 지내는
관습이 전세계의 성모 방문 수녀회로 파급되기
시작하였다. 마르가리타 마리아는
1690년 10월 17일 수녀원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1864년 9월 18일에 시복되었으며,
1920년 5월 13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
(Benedictus XV)에 의해 시성되었다.
마르가리타와 성 요한 에우데스(Joannes Eudes)
그리고 성 클로드 드 라 콜롬비에르는
‘성심의 성인들’로 불린다.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은 1765년에 교황 클레멘스 13세
(Clemens XIII)에 의해 선포되었으니,
그녀의 사후 75년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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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티니아노(Martinian)

성 사투리아노(Saturian)

성녀 막시마(Maxima)
 
축일  10월 16일 

아리우스파(Arianism) 왕인 젠세릭이 아프리카에서
270명의 그리스도인들을 학살했을 때,
어느 반달족의 노예였던 성 마르티니아누스
(Martinianus, 또는 마르티니아노)와
사투리아누스(Saturianus)가 그들의 동료 노예였던
성녀 막시마(Maxima)에 의하여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들은 이방인 주인의 갖은 학대를
무릅쓰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켰으나 결국은
쫓겨나고 말았다. 그 후 그들은 어느 사제의
도움을 받아서 많은 야만인들을 개종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 후 그들은 평화롭게 일생을 마쳤다는
전기가 있는 반면에, 반달족의 박해 기록에 의하면
다소 그 내용이 다르다. 무사였던 마르티니아누스는
주인이 막시마와 결혼하라고 강요하였으나,
막시마가 동정서원을 발한 것을 알고는 결혼하지
않고 오히려 이 두 사람이 어느 수도원으로
도망하였다는 것이다. 그 후 그들은 노예에서
해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 순교록에는
그들이 모두 아프리카 270명의 순교자들 속에
포함된다고 기록하여 순교자로 공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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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뭄몰리노(Mummolinus)
 
축일  10월 16일 

프랑스의 쿠탕스(Coutance) 근교에서 태어난
성 베르티누스(Bertinus, 9월 5일)는
뤽세이유(Luxeuil) 베네딕토 수도원의 수도승이었다.
그의 친구인 테루안(Therouanne)의 주교
성 아우도마루스(Audomarus, 9월 9일)는
성 베르티누스와 같은 지방 출신인 몸몰리누스
(Mommolinus)로도 불리는 성 뭄몰리누스
(또는 뭄몰리노)와 성 베르트란드
(Bertrand, 1월 24일)를 초대하여 자신을 도와
프랑스 북부 파스 드 칼레스(Pas-de-Calais) 지방의
모리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하였다.

성 베르티누스는 동료들과 함께 시티우(Sithiu)에
수도원을 지었고, 성 아우도마루스 주교는
성 콜룸바누스(Columbanus)의 수도 규칙을 따르도록
하며 성 뭄몰리누스를 수도원장으로 지명하였다.
콘스탄츠(Konstanz) 출신으로 뤽세이유에 머물던
성 뭄몰리누스가 661년경에 누아용의 주교로
임명되자 성 베르티누스가 원장이 되었다.
그는 시티우 수도원을 프랑스의 학문과 선교의 중심
수도원으로 육성하였다. 후일 시티우 수도원은
성 베르티누스 사후 그를 기념하여 생베르탱
(Saint-Bertin)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성 베르티누스의 문장은 배이다.

성 베르트란드는 성 아우도마루스와
성 베르티누스의 동료로서 생캉탱(Saint-Quentin)
수도원의 원장이 되기 전에는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플랑드르(Flandre) 지방의 선교사로
활약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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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발데리코(Balderic)
 
축일  10월 16일 

성 발데리쿠스(Baldericus, 또는 발데리코)와
그의 여동생 성녀 보바(Bova, 4월 24일)는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의 왕 지그베르트 1세
(Sigebert I)의 자녀들이다. 성 발데리쿠스는
몽포콩에 수도원을 설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랭스(Reims)에 수녀원을 설립하고 돌보았다.
성녀 보바는 랭스의 수녀원에서 서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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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카리오(Bercharius)

축일  10월 16일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Aquitaine) 태생의
성 베르카리우스(또는 베르카리오)는
뤽세이유(Luxeuil)에서 수도자가 되고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랭스(Reims)의
성 니바르두스(Nivardus)가 설립한 오빌리에
(Hautvilliers)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런 다음 그는 남녀 수도자를 위한 두 개의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로마(Rome)와
팔레스티나(Palestina) 순례를 다녀와서 자신이
설립한 수도원에서 지내던 그는 어느 날 밤
자신으로부터 잘못된 행실에 대해 꾸중을 듣고
징계를 받은 한 젊은 수도자의 칼에 찔려
이틀을 고생하다가 사망하였다. 그는
자신을 살해한 수사를 용서하며 선종하였다.
그래서 그는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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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트란드(Bertrand)
 
축일  10월 16일 

성 베르트란드는 오늘날의 툴루즈 교구를 맡아
50년간 지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에 그는
부친과 같이 군인이 되라는 강요를 받았으나
성직자가 되었다. 1075년경에 그는 콤멩주스
(Comminges) 즉 지금의 툴루즈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회의
규칙을 교구 사제들에게 적용시키면서 일대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아무도 받아 주는 이가
없었다.

그는 수차례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고,
또 국왕 필립 1세가 단죄된 푸아티에 시노드
(Synod of Poitiers)에 참석했다는 이유 때문에
생-오랑 수도자들의 성당에 불을 지르려고 했다.
이런 와중엘 상 파라 올시아 군대가 베르트란드의
교구를 점령했을 때, 그는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지도자들을
설득하여 마침내 침략자를 몰아냈다. 이때부터
그의 교구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 사건은
매년 5월 2일마다 기념되는데, 교황 클레멘스 5세
(Clemens V)는 주교좌성당을 순례하는 사람에게
전대사를 허용하였다고 한다. 그는 1309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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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나스타시오(Anastasius)
 
축일  10월 16일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 출신인
성 아나스타시우스(또는 아나스타시오)는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 수도원의
수도자로 출발했는데 당대의 최고 학자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성직매매 문제가 심각했으므로
그는 이런 악습을 과감히 척결하기 위하여
헌신하다가, 끝내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노르망디(Normandie)와 가까운 통블렌느로 가서
은수자가 되었다. 7년 후 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의 명을
받고 에스파냐로 파견되었다. 이때 그는
에스파냐 교회의 모자라빅 전례를 포기하도록
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후 다시 클뤼니로
귀향하여 7년을 지낸 다음에 툴루즈(Toulouse)
교외에서 은수자 생활을 하면서 인접한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도와이드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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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암브로시오(Ambrose)
 
축일  10월 16일 

프랑스 남서부 카오르의 제13대 주교였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또는 암브로시오)는
은수자로서 살기 위해 교구장직을 사임하였다.
그는 로마(Rome)를 순례한 후 프랑스 중부
베리(Berry)의 에르노트룸(Ernotrum)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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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엘리피오(Eliphius)
 
축일  10월 16일 

아일랜드 또는 스코틀랜드 태생의
성 엘리피우스(또는 엘리피오)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프랑스의 툴로 갔고, 그곳에서
400여명의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다.
그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남자
형제인 에우카리우스(Eucharius)와 두 명의
여자 형제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들이 묻힌 산은 그를 기려
엘리프 산(Mount Eliph)으로 불리며, 그들의
유해는 10세기에 독일의 쾰른(Koln)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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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제라르도 마젤라(Gerard Majella)

축일  10월 16일 

이탈리아 남부의 무로(Muro)에서 태어난
성 게라르두스 마젤라(Gerardus Majella,
또는 제라르도)는 부친이 사망하자 양복공의
도제로 들어갔다. 그러나 하느님을 더욱
열심히 섬기려는 열정으로 카푸친회에
입회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거절당한 후,
라체돈가 주교관의 일꾼이 되었다. 1745년
그 주교가 서거하자 고향으로 돌아와서
양복점을 열었다.

그 후 그는 1748년이 되어서야 뜻을 이루게
되었는데, 구속주회의 평수사로서 입회를
허가받았다. 다행히 그는 1752년에 설립자인
성 알폰수스 마리아 데 리구오리
(Alfonsus Maria de Liguori)에 의하여
서약을 발하였다. 수도원에서도 그는 양복
일을 하면서 병자들을 돌보았는데, 특히
몇 가지 초자연적 은혜가 크게 돋보였다.
예를 들면 동시에 두 장소에 나타나는 일,
예언, 탈혼, 환시 그리고 천상적인 지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수녀들의
몇몇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로도 활약하였고,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일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리하여 그의 성덕과 애덕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754년 그는 네리아 카치아노라는 어느
여성으로부터 호색한으로 고발되었으나,
후일 그녀는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고백하였다.
그 후 나폴리(Napoli)로 파견되었으나 그를
만나려는 방문객들이 너무 많이 몰려오자,
몇 달 후에 카포셀레로 가서 그곳의 문지기로
봉사하면서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다.
그는 1904년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성되었고, 아기 출산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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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플로렌시노(Florentinus)
 
축일  10월 16일 

성 플로렌티누스(또는 플로렌시노)는
성 세베리누스(Severinus, 12월 21일)를
계승하여 독일 트리어의 주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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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헤드비지스(Hedwig)혹은 헤드비가
 
축일  10월 16일 

성녀 헤드비지스(Hedwigis)는
독일 바이에른(Bayern) 안덱스의 백작
베르톨드 3세의 딸이다. 그녀는
프랑코니아(Franconia)의 키트징엔(Kitzingen)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12세 때에 18살의
폴란드 왕자이자 후에 실레지아(Silesia)의
공작이 된 하인리히(Heinrich)와 결혼하였다.
남편은 매우 열심하고 또 용기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아내의 신앙생활과 자선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그는 아내의
요청에 따라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law)
근방 트렙니츠(Trebnitz)에 시토 수녀원을
세웠다. 이 수녀원은 실레지아 지방의
첫 번째 여자 수도원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6명의 자녀가 있었다.
1238년에 남편과 사별한 헤드비지스는
자신이 세운 수녀원에서 수도생활에만 전념하여
큰 덕을 쌓았다. 그녀는 주위 사람들의 물질적,
영성적 이익을 위하여 늘 헌신하였으나,
자기 자신은 극도의 가난 속에서 하느님만을
섬겼다고 한다. 야드비가(Jadwiga)로도 불리는
성녀 헤드비지스는 실레지아 지방의
수호성녀이며, 1267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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