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괴 성모 순례지

이정은

2013. 6. 5. 오전 12:35:56





     * 입구 매괴 중. 고등학교 ▲











     * 교황청 내사원에서 감곡성당의 청원을 받아들여 전대사의 은혜를 수여한다는 내용의 문서
     * 성모마리아님께 첫 봉헌된 성전인 리베리오 교황 성모대성전과 유대 성당으로 지정한다는 인증서
     * 교황청에서 전대사를 수여한다는 교황의 공식 교령문
     * 교황청에서 보내온 교령 전달 공식 문서




     * 사랑하라 이르셨거늘... 그 사랑이 왜 그리 어려운가요....





     * 성모의 밤을 알리는 에드벌룬




     * 너무 아름다운 성전



     *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시는 성모님 뒤에 십자가 고통속에 계신 예수님.. 萬感....
       


     * 많은 분들이 편지를 쓰셔서 우리 성모님 읽으시려면 힘드시겠어요.



     * 촬영금지라 눈으로만 찰칵!







     * 묵주의 기도 시작...



     * 어리석게도 매일 비우고, 비우고... 돌아보면 가득 차 있고...







     * 성모님 광장





     * 십자가의 길 시작...





     * 예쁘고 작은 새들도 같이 십자가의 길을 하네요.



     * 주님의 고통스러우신 십자가 길이지만
       숲이 주는 향기와 새소리, 순간 순간이 행복함을 느끼는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 매괴 쉼터에서 맛있는 커피마시고..



     * 처음 이 조각상을 보고 멍하니...
       이렇게 사랑스럽고 예쁜 조각상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대로 들어다 우리집에 모셔오고픈 마음...^^  넘넘 아름다운 조각상(성가정 상)














              1914년부터 성체 거동을 시작한 110년 역사의 본당

감곡 매괴 성모 성당은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된 곳이다.
또한 성모 신심과 성체 신심을 바탕으로 신앙의 못자리가 된 곳이며,
150여 명의 성직자와 수도자를 배출한 성소의 못자리이기도 하다.
장호원 지역은 본래 부엉골 본당 관할 지역에 들어 있었다.
부엉골에 1885년 예수성심신학교가 설립되면서 교우촌이 조성되었고,
1887년 신학교가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 뒤에도 얼마 동안 본당으로 남아 있었다.
1894년 봄 부엉골 본당 신부로 부임한 부이용(가밀로) 신부는 본당 위치가 적당치 않음을 깨닫고
1896년 5월 장호원의 매산 언덕에 자리 잡고 있던 한옥을 매입하여 본당 이전을 결행하였다.
이로써 부엉골 본당은 폐지되었다. 1903년 성당 신축을 시작하여 다음 해 9월에 이를 완공하였다.
감곡 성당에서만 51년간 사목하다 세상을 떠난 부이용 신부는 감곡 공동체의 주춧돌로 남아 있다.
그의 노력과 업적은 2002년 10월 개관한 유물관에 풍부하게 담겨 있다.
1914년 국내 첫 성체 거동 때부터 사용했던 성광과 금색 제의, 영대, 구두,
그리고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순교자가 지은 《쥬교요지》등 문서류,
본당사를 개괄한 각종 사진 등 50여 점은 100여 년간의 신앙 발자취를 그대로 담고 있다.
1830년대 이후 조선에 입국한 앵베르, 페레올, 다블뤼 등 역대 조선대목구장을 비롯한
프랑스 선교사들의 열심한 성모 신심과,
1869년 성모 발현지 루르드에서 불과 20㎞ 밖에 떨어지지 않은 프랑스 비에유 아되르에서 태어난
부이용 신부의 루르드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감곡에서 기도의 응답으로 꽃을 피우게 된다.
그 대표적 사례가 매산 중턱의 신사(神社) 건립 사건이다.
1943년 일본인들이 매산 중턱에 신사를 지으려 하자 
부이용 신부는 성당 뒤쪽 매산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무염 시태) 기적의 패’를 묻어 두고
성모님께 “이 공사를 중단하게 해 주신다면 이곳을 성모님께 봉헌하겠다.”고 기도했다.
그러자 일인들이 공사를 진행하려 하면 여러 가지 기상 이변이 일어나고 큰 짐승이 출현하는 바람에
번번이 공사가 중단됐으며, 결국 2년 뒤 해방이 되면서 공사는 완전히 중단됐다고 전해진다.
그 뒤 1955년 8월 15일 매산 중턱은 성모 광장으로 봉헌됐고,
이후 성모 광장은 감곡 성당이 1914년부터 해마다 거행해 온 성체 거동 행사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는 2006년 10월 7일 매괴 성모 순례지로 승인했다.
성모 순례지 지정은 1991년 10월 1일 성모께 봉헌된 수원교구 남양 성모 성지에 이어 한국 교회에서 두 번째다.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는  감곡본당 주보인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을 맞아 교서를 발표, 
감곡성당을 매괴성모 순례지로 승인했다.
장 주교는 성모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은총의 표징들로
△성당 옆 매괴성모 광장이 일제 강점기 중 신사 참배 터로 지정돼 공사를 계획했으나
    천둥과 소나기, 벼락으로 일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고
△1950년 한국전쟁 중에는 공산당원들이 성당 제대 중앙에 모셔진 매괴성모상에 총을 쏘았으나
     7군데 탄흔이 남는 가운데서도 파괴되지 않아 지금까지 성모칠고를 묵상케 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초대 주임 임 가밀로신부를 하느님께서 사제로 선택하고 감곡 성당에 파견,
    감곡 본당 공동체에 성모께 대한 신심과 사랑이 전해져 150여명 성직자와 수도자를 통해
    성모 신심이 오늘에까지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점도 꼽았다 (퍼옴)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