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내 성가정 성지순례

이정은

2013. 5. 20. 오후 10:18:12



   *성당과 순례의길 올라가는 길



   * 우리 가족 모두 참가희망,  꼭 갈 수 있기를..







   * 늦어서 우리는 파란 리본을 따라..






   * 검은 바위는 재산을 모두 뺏기고 마을에서 쫓겨난 정 바오로 순교자의 가족들이 
     숨어 생활하던 곳.
     어느 날 아이들만 검은 바위에 남겨놓고 마을에 식량을 구하러 갔다 돌아와 보니
     굴 앞에 호랑이가 앉아 있고 아이들은 굴 안에서 편하게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굶주림과 추위와 두려움에 시달리며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신앙을 충실히 지켰던 분들..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하루를 수고하시고 집으로 가시는 햇님이
     너무 곱고 고와 찰칵...



                                    ● 단내 성가정 성지 ●

순교자 정은 바오로의 묘와 다섯 분의 성인을 기념하는 성 가정 성지.
단내 성지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교우촌 중의 하나이고, 김대건 신부의 사목 활동지며,
정은 바오로와 정 베드로 순교자의 고향이자 묘소가 있는 성지이다.
단내 성지 기념 순교자들은 대부분이 가족 순교자들이고, 가족 사랑을 보여준 분들이라
이곳 성지를 성 가정 성지로 관리하고 있다
단천리(단내)는 이천 동산밑(호법면 동산리)이 고향인 이문우(李文祐, 경천, 1809~1840, 요한) 성인,
이호영(1803~1838, 베드로) 성인, 이호영의 누나 이 아가타(1784~1839) 성녀,
조증이(趙增伊, 1782~1839, 바르바라) 성녀와 조증이 성녀의 남편으로 이천에서 체포되어 순교하신
남이관(南履灌, 1780~1839, 세바스티아노) 성인 등 다섯 명의 순교 성인을 기념하는 성지다.
다블뤼 주교의 비망기에는 이천 단내에서 체포된 순교자 ‘조숙’의 얘기가 나온다.
1804년 조동섬 유스티노의 친척인 조숙은 이천 단내에서 잡혀 양근으로 이송 되었는데,
그만 배교하고 신태보 베드로의 사촌인 이여진을 밀고하였다.
다행히 신태보가 힘을 써서 이여진 요한을 풀려나게 했는데,
풀려날 때 이여진은 조숙을 용서하면서 회개하도록 권유하였다.
결국 조숙은 죄를 뉘우치고 양근에서 참수되었다고 한다.
정은(鄭溵, 바오로, 1804~1866)은 어려서 입교한 것은 아니었으나
교리를 배운 뒤에는 이를 열심히 실천하였으며,
1846년 성 김대건(金大建, 보명 芝植, 1821~1846, 안드레아) 신부가 귀국하여
용인의 은이 공소에 거처를 두고 있을 때 그로부터 성사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1866년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남한산성으로 압송되었는데,
이때 그의 재종손이던 정 베드로( ?~1866)가 자수하여 함께 옥에 갇혔다.
이들은 갖은 형벌을 받으며 신앙을 지키다가 1866년 말에 백지사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순교 후 그의 가족들은 정은의 시신을 가까스로 찾아내 단내에 안장하였으나,
정 베드로의 시신만은 찾지 못하였다.
단천리는 최초의 방인 신부인 성 김대건 신부가 머물렀던 은이 마을과는 12km 남짓 떨어진 곳이기도 하다.
김 신부는 1846년 귀국한 이후 동산 밑 마을을 들러 이곳을 방문,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준 후
바로 묘소 앞 오방이 산모퉁이를 지나 배마실 공소를 거쳐 새벽 어스름에 은이 공소로 돌아갔다고 한다.
단내 성지는 바로 앞에 단천이 가로질러 흐르고, 뒤에는 숲이 울창한 와룡산이 감싸고 있어서
아름다운 자연 경관 속에 자리하고 있는 성지다.
또한 단내 성지에는 숲이 울창하면서도 인적이 없는 와룡산의 계곡과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총연장 5.2km의 순례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이 순례 코스는 전망이 좋은 와룡산 정상에 위치해서 이문우 성인의 고향 동산리와
김대건 신부님의 사목 활동 경로를 조망할 수 있는 예수 성심상과 병인박해를 전후해서 박해받는 신자들의
은신처였던 검은 바위와 굴바위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의 사목 활동로를 따라 조성되었다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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