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죽림동 성당 성지순례

이정은

2013. 4. 18. 오후 10:05:24

올해 94주년이 되는 죽림동 성당












 












 춘천지방은 천주교가 늦게 전파되어 다른 지방처럼 피로 얼룩진 박해의 교난이 없었다.
그러나 6·25때는 공산당에 의해 성직자와 신자들을 잃는 불운을 겪어야 하였다.
6·25 전란이 터지자 춘천시에서는 그 이튿날인 6월 26일 아침부터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남침이 시작된 바로 다음 주일인 7월 2일 구 토마스 교구장이 본당 미사를 드리는데
인민군이 들이닥쳐 성당 안에서 공포를 쏜 후 20여 명의 교우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카바난 신부와 함께 체포 연행했다.
소위 이 죽음의 행진으로 교황사절 방 주교를 비롯한 외국인 사제, 수녀, 개신교 목사 등 수백 명이 끌려가
평안북도 어느 험한 산비탈에 강제 수용되었는데,
카나반 신부도 방 주교처럼 그곳에서 모진 고생과 추위를 못 이겨 선종하였다.
그래도 1953년 4월까지 34개월간의 포로 생활에서 기적같이 살아 돌아온 분 중에는
구 토마스 신부와 조 필립보 신부도 있었다.

순교한 성직자들은 라 바드리시오 신부, 고 안당 신부, 진 야고보 신부 등으로 모두 아일랜드 출신이었던
세분 성직자는 1950년 남한에서 피살되었다.
그리고 당시 교구장이었던 구 토마스 신부는 1950년 북한으로 납치당하였다가
4년 후 민간 포로 석방 때 무사히 생환하였다.

구 토마스 교구장은 1896년 아일랜드 출생으로 1920년 사제 서품을 받고 오랫동안 희망하던
선교사의 꿈을 실현, 1933년부터는 중국에서 전교하였다.
한국에는 1939년에 입국하였는데 6·25가 터지자 납북되었다가 생환되는 불행을 겪기도 하였다.
수용소에서 살아온 구 신부는 순교하신 방 주교의 뒤를 이어
한 동안(1953~1957)교황사절 서리를 겸하고 있었는데,
1955년 9월 20일 춘천이 지목구에서 대목구로 승격되자
11월 23일에 초대 춘천 대목구장으로 부임하면서 주교로 서품되었다.
한국의 교우들을 위하여 동분서주 전교하다가 1970년 영면하였다.

외국인 성직자들은 낯선 땅 타국의 전쟁 포화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하다가
끝내는 공산군에 의해 끌려가 피살, 주검이 되어 사목을 받던 교우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들의 전교활동은 오늘날 춘천 지방을 신앙의 요람지로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현재 위 성직자들의 묘는 죽림동성당 내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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