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작은 아이가 몹시 추운 날 두 손을 모아 무슨 기도를 할까요
*토마스의 신앙고백
*명례방* 신부님이 맛있는 커피를 주셨습니다(전시, 만남의 방)
원예치료사이신 선녀님(신부님말씀)의 솜씨인 예쁜 꽃들도 많았습니다.
거룩한 부르심의 땅 마재성지는 최초로 조선땅에서 나주정씨 집안 형제(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들이 ''''''''천주실의''''''''를 읽고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이자 못자리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정약종 형제의 믿음은 우리나라 천주교에 길이 남길 발자취를 남겼다.
정약현의 부인은 성조의 누이, 이벽은 약현의 처남, 사위가 황사영 알렉시오(백서사건의 장본인)
정씨 형제의 누이가 우리나라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의 부인
외사촌 윤지충은 진산사건으로 효수됨.
정약전은 신지도로 유배(신유박해), 황사영사건 후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 돌아오지 못하였다.
딸(정난주 마리아/ 유배)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은 124위 시복시성 대상자중 한사람이며
정철상(큰아들), 둘째 아들 정하상(성인 바오로), 딸 정정혜(엘리사벳)도 마재에서 태어남.
정씨 부자가 한국천주교에 남긴 업적은 실로 위대하다
1777년 주어사 강학회에 참여,
초기 교회 창설에 큰 역할을 한 정약종은 한문을 모르는 신자들을 위해 한글 교리서(主敎要旨:주교요지)
를 펴냈고 명도회(평신도 단체)의 초대 회장으로 많은 활동을 하였으며, 1801년 옥사하였다.
정약용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심서'''''''' 등을 남겼고
잠시 천주교를 떠났다가 신유박해때 배교로 죽음을 면하지만
황사영사건이 터지고 유배를 떠나 유배 생활(18년)동안
5백여권의 저서를 집필,
다산 정약용의 유적지가 성지 옆에 묘소와 함께
생가와 사당, 기념관, 문학관, 실학 박물관이 보존되어 있다.
다산 정약요의 유적지가 성지 가까이에 마련되어
묘소와 생가, 사당, 기념관, 문학관과 실학 박물관이 보존되어 있다.
정약전과 그의 딸 정난주(마리아), 정약종(세례자 요한)은 유배,
큰 형 사위인 황사영(알렉시오)와 정약종(아우구스티노), 그의 부인 성녀 유조이(체칠리아),
큰 아들 정철상(가를로), 둘째 성 정하상(바오로), 딸 성녀 정정혜(엘리사벳)은 순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