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체가 너무나 고픕니다”
정만영 꼴베신부
침샘암이라는 혹독한 고통 속에서 투병했던 작가. 최인호 베드로 형제가 계십니다.
그는 암세포가 온몸을 갉아 먹는 절망적인 고통을 ‘혹독한 할례 의식’이자 ‘고통의 축제’라 불렀습니다.
육신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도 그는 매주 미사에 참여했고, 감실 앞을 지켰습니다. 어느 날 오후, 본당 신부가 성당 감실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던 그를 보았습니다.
기도가 끝난 그에게 본당 신부가 인사를 건네자, 베드로 형제는 울먹이듯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신부님, 성체가 너무나 고픕니다.” 암 환자로서 육신의 고통 속에서, 그가 진정으로 굶주렸던 것은 바로 영혼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요한 6, 51ㄱ) 오늘 제1독서인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시절을 상기시킵니다.
광야는 죽음의 굶주림이 지배하는 곳이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내려 그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는 육신의 허기를 잠시 채울 뿐, 그것을 먹은 이들은 결국 죽었습니다.
이 광야의 만나를 넘어, 우리 영혼의 진정한 허기를 채우기 위해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요한복음에서 주님은 선언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ㄱ)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은 주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무르게 하는 생명의 신비입니다.
최인호 베드로 형제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오는 순간에 바로 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내 육신은 비록 부서져 가더라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을 모셔야만 내 영혼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그 절대적인 갈망이 “성체가 너무 고픕니다”라는 절규로 터져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간절한 갈망 앞에서, 오늘 우리가 노래한 송가의 한 구절이 우리의 가슴 깊이 박힙니다.
중세 교회는 성체의 고귀함을 “천사의 빵 길손 음식 자녀들의 참된 음식 개에게는 주지마라.” 라며 아주 강한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개’는 타인이 아니라, 바로 성체의 고귀함을 깨닫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제대를 향해 걸어 나오는 우리 내면의 부끄러운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성체는 우리가 완벽해서 받는 상이 아니라, 나약한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따라서 ‘내가 행여 모령성체의 죄를 짓고 있지는 않은가’를 한 번쯤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죄에 대한 통회없이, 성체에 대한 아무런 굶주림도 없이 무덤덤하게 합당하지 못한 마음으로 받아 모시고 있지는 않나요?
부디 여러분도 “성체가 너무 고픕니다”라고 외쳤던 베드로 형제의 그 간절한 고백으로 더 합당하게 성체를 모시길 초대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미사 때마다 우리는 성체를 모시기 직전, 늘 다음과 같이 암송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이 문장과 단어가 습관적인 되풀이 소리가 아니라 신앙고백이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성체를 향한 거룩한 굶주림이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제2독서 코린토1서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동참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제 ‘한 몸’이며 ‘한 빵’을 나눈 우리는 성당을 떠나 세상이라는 광야로 나아 갑시다.
그곳은 사랑과 위로, 불의와 전쟁, 소외와 차별 속에서 영적,육체적 굶주림에 ‘배가 고픕니다’라며 절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생명의 빵을 주신 주님처럼 우리도 기꺼이 으깨지고 부서지는 빵이 됩시다.
우리 삶 전체가 주님을 증언하는 거룩한 성체성사,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26/06/07 제주교구주보에서 옮겨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