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로댕 갤러리 전시 - 나의 아름다운 하루 展

2008. 1. 11. 오후 9: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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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하루 展 (로댕갤러리 : 2007년 12월 14일 ~ 2008년 2월 24일)
 
 
 
어느날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창 밖으로 풍경을 보고 있는데, 무언가가 꼬물거리고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유심히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그것은 작은 개미 한 마리였다.
 
나는 개미에게 연민을 느끼며 내가 만약 이 개미라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 개미는 인간과 아주 유사한 사회적인 동물이다. 다른 개미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행동이 구체화되는데, 이 개미는 자신의 둥지에서 수 킬로 미터 떨어진 곳으로 정처없이 가고 있는 것이다.
 
 
시작은 그 개미도 아주 작은 일탈이었는지 모른다. 잠시 개미의 행렬에서 벗어나 새로운 먹이를 찾아서 다른 길로 왔다. 그 이후 돌아보니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또한 무엇을 하는지도 감도 잡히지 않는다.
 
나는 개미를 측은하게 여겨서 될 수 있으면 버스가 정지했을 때 다시 땅에 착지하도록 응원했지만, 개미는 바람에 실려 콘크리트 바닥에 추락했다.
 
 
 
개미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동 또한 집단에 의해 조직화 된다. 
 
 
 이렇게 조직화된 세계의 일과를 우리는 보통 일상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다. 
 
 
 
로댕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는 "나의 아름다운 하루"전은 이 일상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다루고 있다. 또한 흥미롭게도 이 전시는 한,중,일의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다루고 있는데, 30~40년 사이에 약간의 시차를 두고 산업화, 자본화로 조직화된 각 나라의 사회의 풍경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그 방향은 똑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먼저 "함진"작가의 작은 세계를 들여다 보자.
 
 
 
 
 
함진은 아주 작은 작품을 만들어 세계를 표현한다.  흔히 그의 작품은 너무 작아서 전시장에 있는 작은 먼지 조각으로 착각하기로 하는데, 이번에도 그의 장기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그는  미사일에 작은 인간과 사회의 군상들을 붙여서 우리가 살고 있는 불안한 일상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또한  전시장 벽의 바닥 부분에 아주 작은 세계를 구축해 놓았다. (실제로 가지 않으면 내가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실제로 가보면 무릎을 탁치고 감탄할 것이다.) 그곳을 손전등으로 바라 보면 개미 같이 작은 인간들이 일상을 살고 있다.
 
 
 
 
 
첸 샤오숑의 작품은 우리가 어떤 하부구조에 있는지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정풍경>이라는 이 작품은 광저우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평범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입체적으로 꼴라주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 건너편 아파트 거실을 통해  보았던 낯선 이웃의 일상이 생각난다. 한국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중국의 아파트 모습을 보면, 결국 아시아에서 자본의 증식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자연스럽게 진화되었고 모든 가치를 평준화 시켰다는 역사를 새삼 환기 시킨다.
 
 
 
 
정연두 작가의 <내 사랑 지니>는 일상과 무의식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는 일상적인 한 사람의 사진을 찍고, 그가 꿈꾸는 욕망을 연출하여 사진으로 보여준다. 환등기를 통해서 디졸브되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우리의 현실이 마치 신기루 같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작품을 소개한다.
 
 
 
중국의 챠오 페이 작가의 <누구의 유토피아인가>>는 중국 광둥성에 위치한 다국적 기업 오스람 조명 공장의 노동자들과 협업으로 만든 영상 작품이다.
 
 
 
노동자들의 고된 일상적인 노동의 과정과, 정확하게 움직이는 기계의 움직임,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각 인물들의 욕망들. 이런 모습은 바로 현대 사회의 본질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100여 년 즈음, 두 명의 사상가는 현대에 대한 분석의 틀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이론을 만들었다.
경제적 구조가 문화를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과 무의식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현대 사회에서도 신빙성이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이상 하부구조의 변경으로 혁명을 꾀하자는 순진한 시도는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우리의 세계는 자기구조화 되면서 점점 더 복잡한 미궁으로 변해가고 있다. 더 이상 빠져 나올 수 없고, 입구와 출구가 명백히 구분 되지 않는 미궁이다.
 
 
이 세계에 대해서 더 냉정히 분석하고 싶다면 나는 인간을 더 이상 개체로 보지 말고 군체로 바라보기를 권유한다. 한 마리의 개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일상 속에서 산다. 그러나 수만 마리의 개미는 결과적으로 개미집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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