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10,06) -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2004. 10. 6. 오후 12: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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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6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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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갈라디아 2,1-2.7-14
형제 여러분, 십사 년 뒤에 나는 디도를 데리고 바르나바와 함께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올라갔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는 소위 지도자라를 사람들과 따로 만나 내가 이방인들에게 전하고 있는 복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지금까지 해 놓은 일이 허사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마치베드로가 할례 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일을 위임받았듯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할례 받은 사람들을 위한 사도직을 베드로에게 주신 것같이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직을 나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둥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던 야고보와 게파와 요한도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은총을 인정하고,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친교의 악수를 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방인들에게 전도하고 그들은 할례 받은 사람들에게 전도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한 가지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전부터 열심해 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게파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책망받을 일을 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면박을 주었습니다.
그의 책망받을 일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게파가 이방인 교우들과 한자리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야보고가 보낸 사람들이 들어오자 그는 할례를 주장하는 그 사람들이 두려워서 슬그머니 그 자리에서 물러 나갔습니다.
나머지 유다인들도 안 벅은 체하며 게파와 함께 물러 나갔고 심지어 바라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휩쓸려서 가식적인 행동을 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의 행동이 복음의 진리에 맞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게파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유다인이면서 유다인같이 살지 않고 이방인같이 사는 당신이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 루가 11,1-4
예수께서 하루는 어떤 곳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기도를 마치셨을 때 제자 하나가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같이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어느 본당 신부님의 푸념>>

신부란 이래저래 욕을 먹어가며 살아야 하는가 보다.

강론을 길게 하면 성인군자 같다하여 야단이고, 짧게 하면 준비하지 않았다 야단이다.

목소리를 높이면 강론 시간에 야단친다 불평이고, 은근한 목소리로 하면 못 알아듣겠다 불평이다.

화를 내고 야단을 치면 무슨 신부가 저 따위냐 쑥덕거리고, 화를 내지 않으면 얕보고 그의 말을 듣지도 않는다.

늘 집에 있으면 가정방문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가정방문 하느라 사제관을 비우면 집에 붙어 있지 않는다 비난한다.

희사금을 내라하면 신부가 돈만 밝힌다 야단이고, 그래서 아무소리도 하지 않으면 도대체 일을 하지 않는다 야단이다.

고해성사 때 친절하게 지도하면 너무 길게 훈계한다 짜증내고, 간단하게 짧게 하면 성사 주길 싫어하는 신부라고 못 박는다.

차를 굴리면 세속적인 인물이 되어간다 비난하고, 그렇지 않으면 융통성 없는 신부라고 비난한다.

성당이나 사제관을 수리하기 시작하면 돈 낭비한다 야단이고, 그냥 두면 망가져 가는 성당을 그냥 내 버려둔다고 야단이다.

신부가 젊으면 경험이 없다하여 훈계하려 들고, 늙었으면 어서 빨리 은퇴하라 야단이다.

어느 여성신자와 이야기하고 웃으면 그 여자만 좋아한다고 야단이고, 무뚝뚝하게 그냥 이야기하면 재미없는 신부라고 평한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모두가 아는 척하고 인사하지만, 죽으면 아무도 그를 위해 울어주지 않는다.

이것이 사제의 외로운 인생인가 보다.

어떤 웹 사이트에서 보게 된 글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보면서 공감이 가는 것입니다. 물론 신부만 이런 일을 당할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제가 신부이기에 이 글의 내용에 더 깊은 공감을 하게 되네요. 그런데 전에 어떤 신부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모든 교우들을 100% 만족시키겠다고? 착각하지 마. 51%만 만족해도 성공한 거야.”

하긴 우리가 믿고 따른다는 예수님을 떠올려보세요.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에 50%의 지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는 일을 체험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만약 단 51%의 지지자만 있어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의 죽음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51%가 예수님을 지켜주었을테니까요.

이렇게 인간들에게 50%의 지지도 받지 못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사랑을 베푸는데 있어서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시지요.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그 사랑은 계속됩니다. 바로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들을 위해서 ‘주님의 기도’를 직접 가르쳐주시지요.

사실 우리들은 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것도 주지 않으려 합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해로움을 줄 수 있을까를 궁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반대로 더 큰 선물을 주셨지요.

예수님을 따른다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은 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에게 무엇을 전해야 할까요?


내가 미워하는 사람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전해 봅시다. 없으면 말구여.



격려의 위대함

오래 전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공장에 위대한 성악가를 꿈꾸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중에 겨우 첫 레슨을 받았을 때 교사는 그에게 "너는 성악가로서의 자질이 없어. 네 목소리는 덧문에서 나는 바람소리 같다." 라고 혹평했습니다.

그때 소년의 어머니는 실망하는 아들을 꼬옥 껴안으며 말했답니다.

"아들아, 너는 할 수 있어. 실망하지 말아라. 네가 성악공부를 할 수 있도록 엄마는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겠다."

소년은 어머니의 격려를 받으면서 열심히 노래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성악가인 아리코 카루소였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사랑의 격려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말로 대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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