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심장에 숨겨진 씨앗

2005. 9. 6. 오후 6:00:32

글자
윤석인 보나수녀/향기마을

우주의 심장에 숨겨진 씨앗

거룩한 역사가 시작되는 수평선에 이미 한 여인의 모습이 있었다. 그녀는 뚜렷이 신적 아름다움을 지닌 위로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느님께서는 영원으로부터 그녀를 응시하셨다. 그녀는 하느님의 생각에서 항상 구원 계획과 연계되어 있었다. 그녀가 받은 소명은 하느님의 독생 성자를 세상에 들어오시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으로 주님의 어머니 안에서 은총과,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유일무이한 거룩함을 깨닫고 관상하였다. 사실 마리아야말로 강생하시어 인류와 함께 머물기로 하신 지혜의 좌, 거룩한 거처가 아니겠는가?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녀를 통해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려고 당신 자신을 내어주셨다. 그러므로 영원한 아버지 안에 계시고 강생하신 '말씀' 에 관한 성서 말씀은 어떤 의미에서 그분을 위해 준비된 피조물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그 피조물은 그분과 함께 새 창조에 관여한다.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 작업의 맏물로 나를 지으셨다. 나는 한 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 심연이 생기기 전에, 물 많은 샘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신들이 자리잡기 전에, 언덕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그분께서 땅과 들을, 누리의 첫 흙을 만드시기 전이다. 그분께서 하늘을 세우실 때, 심연 위에 테두리를 정하실 때 나 거기 있었다. 그분께서 구름 위의 구름을 굳히시고 심연의 샘들을 솟구치게 하실 때 물이 그분의 명을 어기지 않도록 바다에 경계를 두실 때 그분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 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나는 그분께서 지으신 땅 위에서 뛰놀며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잠언 8, 22 - 31). 태초부터 존재했던 지혜는 인류 역사의 구체적 시간에 있을 사건을 준비한다. 지혜는 싹이 트고 꽃봉오리를 틔울 인류의 봄을 기다리며 우주의 심장 안에 감추어진 씨앗이다. 우리가 말씀을 이새의 뿌리에서 돋아날 햇순에 비교한다면(이사 11, 1.10 참조), 강생하신 지혜 자체를 가리키는 가장 아름다운 표상들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영광스러운 백성 안에 뿌리를 내리고 나의 상속을 주님의 몫 안에서 차지하게 되었노라"(집회 24, 12). 사실 나자렛의 마리아는 가장 순수한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마리아는 참된 이스라엘, 온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리는 도구가 되도록 선택 받고 봉헌되었다. 마리아는 거룩하게 된 백성을 대표한다. 이 '이스라엘의 딸' 인 마리아는 온전히 하느님께만 속하기 때문에, 선택된 민족과 약속된 땅의 모든 영적 아름다움이 마리아에게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마리아 역시 우리가 머물러야 할 지혜와 하나되어 노래할 수 있다. 나는 레바논의 향백나무 처럼, 헤르몬 산에 서 있는 삼나무처럼 자랐노라. 나는 엔게디의 종려나무처럼 예리고의 장미처럼 평원의 싱싱한 올리브나무처럼 플라타너스처럼 자랐노라. 나는 향기로운 계피와 낙타가시나무처럼 값진 몰약처럼 풍자향과 오닉스향과 유향처럼 장막 안에서 피어오르는 향연처럼 사방에 향내를 풍겼노라. 나는 테레빈나무처럼 가지를 사방에 뻗으니 그 가지가 찬란하고 우아하도다. 나는 친절을 포도순처럼 틔우니 나의 꽃은 영광스럽고 풍성한 열매가 되는도다 … 나에게 오너라. 나를 원하는 이들아. 와서 내 열매를 배불리 먹어라(집회 24, 13-19). 이스라엘 백성은 마리아를 통해 오셔야 할 분을 받아들이도록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미가 5, 1-3 참조),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게 주어진 예언은 마리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가운데 계신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축제의 날인 양 그렇게 하시리라(스바 3,14. 17-18:참조:즈가 2, 14-17) 그렇다! 마리아는 주님의 구원을 충만히 체험한 사람이 느끼는 기쁨과 감사로 환성을 울리며 응답할 수 있다. 교회는 마리아 축일들을 지내면서 구약성서 예언서에 나오는 '마니피깟'도 주저없이 전례에 도입한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 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정의의 겉옷을 둘러주셨기 때문이다(이사 61,10;참조: 2,1이하) 하느님께서 겸손한 이 피조물에게 행하신 놀라운 일들은 당신 아들의 피와 성령으로 모든 인간을 새로 태어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동정 마리아는 구원 역사의 뿌리와 정상에 서 계신다. 하느님께서 태초부터 계획하신 바에 따라 마리아는 죄의 그림자에도 물들지 않고 태어났다. 마리아는 모든 형태의 부패에서 완전히 벗어나 깨끗하게 보존되었다. 어떤 악의 그림자도 마리아에게 힘을 행사할 수 없었다. 마리아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잉태되었으므로 태어나기 전에 이미 특별한 사명을 띠고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되었다. 그러나 마리아의 자유로운 뜻은 강요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리아는 절대적으로 순수하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이다. 마리아는 자유로운 몸으로 하느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며 하느님의 구속 사업에 협력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파견받은 천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자렛의 처녀를 찾아가 말씀의 강생을 예고하며, 마리아 편에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큰 일에 철저히 협력하기로 동의할 때까지 기다린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자유로운 동의를 기다리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구원 역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온 백성과 온 인류를 대신하여 하느님의 계획에 동의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에서 - 성서와 교회의 마리아 안나 마리아 카노피 지음 / 박요한 영식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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