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신론자의 이야기/ 이어령

2004. 9. 6. 오후 12:25:46

글자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빈 연구소에서 밤 늦게 돌아오다 보니 하우스에는 불이 모두 꺼져 있다. 모두 자는 시간이다. 빈 방에 들어와 전기 스탠드의 스위치를 누른다. 책상에 원광 같은 불빛이 어리면서 제단이 된다. 정적의 어둠 밖에서 보면 내 방에만 불빛이 흘러 나오고 있을 것이다. 주말이 되면 연구소 전체와 하우스가 텅 빈다. 인기척이 없어진 곳에 이틀 동안이나 혼자 방 안에 앉아 있으면 인사도 변변히 하는 일 없이 지내던 인기척이 그리워진다. 정말 절해고도의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혼잣말을 하는 일이 잦아진다.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크게 켜 놓은 채 책을 읽는 이상한 버릇도 생긴다. 아버지의 헛기침소리, 다시는 들을 수 없는 그 기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늘 빈 방에 앉아 혼자 텔레비전만 바라보며 사시던 아버지는 아나운서와 “안녕하슈”라고 인사하신단다. 그리고 자리를 비었다 다시 텔레비전 앞에 앉으시면 “미안하우”라고 다시 인사하신다는 아버지, 그래서 사람들은 노망이 드셨나 보다 하고 수근거렸다. 그러나 바보들아, 그것은 노망이 아니다. 이제서야 나는 혼자 있는 아버지의 지루한 그 시간들과 외로움과 같이한다. 얼마나 심심하시고 답답하셨으면 텔레비전의 아나운서와 인사하고 말을 나누시는가. 그것을 모른 척한 나의 불효를 오늘에서야 사죄드린다. 내 고독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고독을 위하여, 말할 사람이 없어 혼자 말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밤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창문을 위해 나는 천한 노예처럼 책상 앞에 무릎꿇는다. 그리고 이 무신론자가 처음으로 하느님을 부르며 경건한 기도를 드린다. 하느님 나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사람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별사탕이나 혹은 풍선 같은 것을 만들지만 어둠 속에서는 금세 사라지고 맙니다. 바람개비를 만들 수는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보셨는지요 하느님. 바람개비를 든 채 잠들어버린 유원지의 아이들 말입니다. 하느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실 때 당신의 손으로 만드신 저 은빛 날개를 펴고 새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를 때 하느님의 마음이 어떠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 작은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발톱처럼 무디어진 가슴을 찢어야 하고 코피처럼 진한 후회와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데 아! 하느님은 어떻게 그 많은 별들을 축복으로 만드실 수 있었는지요. 하느님 당신의 제단에 지금 이렇게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지도 다 헬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세요 하느님. 원컨대 아주 작고 작은 모래알만한 별 하나만이라도 만들 수 있는 그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감히 어떻게 하늘의 별을 만들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저 이 가슴 속 깜깜한 하늘에 반딧불만한 작은 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신다면 내 가난한 말들을 모두 당신의 제단에 바치겠나이다. 향기로운 초원에서 기른 순수한 새끼양 같은 나의 기도를 바치겠나이다. 좀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하느님 .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 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 손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에서도 풍금소리를 울리게 하는 한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이어령의 교토일기 중에서 - 월간중앙 2004년 4월호 - 그림 / 이미경 - 음악 / Bred Dina Vida Vingar (당신의 넓은 날개를 펼치소서)

댓글 1

  • 2004년 9월 6일 오후 8:21

    이분 이미 아주 신심이 깊은 신자네요.

사랑의 샘 자유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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