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하느님과 함께'라는 사막 생활에 관한 책을 쓴
에피엔 슈느비에르 수도자는
'황량한 사막으로 들어가십시오.
하느님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그대와 단둘이 있기 위해서
사막에 부르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사막으로 들어가십시오.'
...
세례자 요한도
광야로 나갔습니다.
예수님도 광야로 나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로 나갔습니다.
광야로 나간 것은 어떤 목적이 있습니다.
광야로 나간 것은 하느님 나라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광야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한
필수적이 전 단계입니다.
이 광야는
물리적, 환경적, 육체적, 정신적 여유와 누림
편리와 조건을
내려놓아야 하는 장소입니다.
추위와 더위를
삭막함과 황량함을
배고픔과 갈증을
두려움과 무서움을
직면해야 할 장소입니다.
그동안의
만남과
이야기와
일과
선호하던 모든 일을
단절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동안
향유하고
즐겨하고
수고하고
얻었던 모든 것들
소득과 결실마저도
포기해야 하는
그런 장소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인간의 즐기고 향유하는 것을
멈추게 함에서
영성적인 장소입니다.
이 영성적인 장소에서
빈곤과 없음과 두려움을 갖게 되면서
고요한 하느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물리적인 일과 만남과 사건에 익숙한 우리는
세상의 말과 만남과 홍수속에서
그분의 음성을 잃어버리지만
사막이라는 환경을 통해서
그분의 고요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가
물리적인 사막의 장소에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성적인 사막의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의, 지금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벗어놓고,
다시말하면
물리적인 환경의 만남과 접촉과 일을 중단하고
그분과 함께 머무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세상사의 잡다한 생각과 만남과 환경을 내려놓는 작업이
사막으로 나아가는 길로 떠나가는 것입니다.
성찰시간은
영성적인 사막으로 떠나가는 길입니다.
성찰하는 동안,
잡다한 생각과 만남과 일을 내려놓고 나서
그 일들이 내안에서
아무런 부담과 문제가 없게 되고
오히려 그 마음이 정리가 되고 평화를 선언하는 순간
우리는 영성적인 사막 한 가운데 나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적인 성찰시간을 통해서
더 깊은 성찰의 시간에서
평화를 얻는 순간을 위해서
영성적인 사막의 길로 떠날 수 있고,
사막의 깊은 중심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 사막의 길을 떠나고
그 중심에 들어갈 수 있도록
고요한 장소에서 성찰의 시간을 만들어 가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