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

2013. 3. 24. 오전 12:28:56

글자
3월 24일 (일) (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루카 22,14-23,56]

오늘 주님 수난 성지주일 전례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사건을 재현합니다.
성당 입구나 밖에서는 예수님이 열렬히 환영받는 내용을 묵상하고,
성당 안에 들어와서는 예수님이 철저히 고난 받는 내용을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 지방에서 수도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백성들이 열렬히 환영합니다.
겉옷을 벗어 예수님 오시는 길에 깔고 나뭇가지를 흔들며 예수님 만세를 외칩니다.
유명 연예인이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보다 더 환영을 받고
나라를 해방시킨 위대한 정치가보다 더 큰 지지를 받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그런 환영을 받을만합니다.
태생적으로 눈먼 사람을 보게 만드는 등 불치병자를 고쳐주셨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이 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바른 소리를 함으로써 그들을 속 시원하게 해 주었고,
병들고 가난하고 못 배워 사람대접 못 받던 약자들을 사랑하고 존중함으로써 희망과 용기를 주셨고
마침내 죽은 자를 살리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대단했던 예수님이 이제는 형편없어 보입니다.
전에는 분명히 대단한 능력을 발휘했는데 지금은 영 무기력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신을 따르면 왕이 된 후에 오른쪽 왼쪽, 즉 우의정 좌의정 같은 큰 벼슬을 줄 것처럼 말하기에 따라다녔는데
우의정 좌의정은 고사하고, 국회의원 장관은커녕 면장, 이장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가 왜 이런 무능한 사람을 따랐던가? 계속해서 이 분을 따르다가는 망할게 틀림없어.
더 이상 손해를 보기 전에, 이제라도 이 사람한테 걸었던 기대와 미련을 버리고 떠나자.
이참에 아예 죽여 버리자"하고 생각했는지 예수님에게 등을 돌리고 안면을 싹 바꿉니다.
세상에 이런 변절, 변심, 배반, 배신이 또 있습니까?
바로 조금 전까지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고 따른다더니
하루아침에 이렇게 안면을 싹 바꾸고 변절해도 되는 것입니까?
마침내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려라'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 때는 예수님을 환영하고 따랐지만,
예수님이 힘없이 체포되는 걸 보더니 자신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는지
일말의 망설임이나 고민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마음을 바꿉니다.
그토록 열렬히 환영하던 사람들이 배신자로 돌변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립니다.

생살을 대못으로 뚫고 십자가 위에 매달아 놓았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그런데 사실 십자가 고통보다 예수님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믿었던 자들의 배신에서 비롯된 정신적 고통일 것입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의 배척은 참을만했지만,
예수님을 좋아하고 따랐던 사람들 배신이나 예수님께 은혜를 갚겠다던 이들의 배신은 참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예수님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예수님이 가장 믿고 사랑했던 사도들의 배신이었습니다.
3년간이나 동고동락하며 한솥밥을 먹던 제자 유다가 단 돈 몇 푼에 스승을 팔아먹는 배신은
예수님 마음을 처절하게 아프게 했을 것이고,
주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지옥까지라도 따라가겠다고 맹세하며 충성을 약속했던 제자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딱 잡아떼며 배신했을 때
예수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갈라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정신적 고통을 신부들도 체험합니다.
성모회장 등 신부가 신임하고 사랑해준 신자들이 신부를 반대하며 힘들게 할 때
예수님이 당하신 배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힐 때 더 아프게 느껴지듯이 예수님이 그토록 믿고 사랑하는 우리가 예수님을 배신하면
예수님 마음은 더 크게 찢어질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스라엘 사람들만 배신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도 배신자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우리가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삶을 살 때
우리도 그들과 똑같은 배신자요 변절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죽게 한 책임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한테도 있음을,
우리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음을 오늘 주님 수난 성지주일 전례를 통해 가슴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 박용식 신부 (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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