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2일
주의 공현 대축일(나해)
제 1 독서 : 이사야서 60,1-6
제 2 독서 : 에페소서 3,2-3a. 5-6
복 음 : 마태오 2,1-12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주의 공현 대축일입니다. 베들레헴의 한 허름한 마굿간에서, 또 지극히 평범한 한 젊은 부부에게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께서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할 구세주로 드러나신 사건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의 오랜 역사를 통해 오직 자신들만이 하느님에 의해 선택되고 구원된 민족이라는 강한 선민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의식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제 1 독서의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처럼, 예루살렘은 암흑속에서 빛나는 빛과 같은 도시입니다. 그래서 뭇 민족들이 그 빛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몰려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기대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이 성취되었습니다. 멀고 먼 동방에서부터, 그것도 가느다란 별빛 하나만을 의지한 채, 세상을 구원할 왕을 찾아나선 용감한 세 현자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동방박사의 경배 이야기를 통해 마침내 하느님 구원역사의 오묘한 신비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에 의해 선택된 민족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모든 민족이 하느님의 구세사에 참여할 때 선택의 참된 의미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하느님의 심오한 구원계획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심오한 계획이란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면서 유다인들과 함께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한 몸의 지체가 되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함께 받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편협하고 그릇된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바로 자신들 코앞에서 탄생하신 구세주를 맞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말에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는데 바로 그런 경우가 되었습니다. 구원은 결코 극장의 좌석표처럼 표만사면 확보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4주간의 대림시기를 희생과 기도를 통해 지내며 구세주의 오심을 준비한 끝에 성탄절을 맞이했듯이, 늘 깨어서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만이 구원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선민의식에 따른 교만한 생각 때문에 그토록 구세주를 고대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소외되는 불행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 복음 말씀에 등장하는 동방박사와 헤로데를 통해 더 분명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동방박사들은 비록 이방민족이었지만,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께서 오시기를 늘 깨어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밤낮으로 하늘의 별을 관찰한 덕에, 마침내 만왕의 왕이신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 별빛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별빛을 따라 길고도 먼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길을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직 별빛의 인도를 믿고 떠났습니다. 모진 고생 속에 별빛을 인도로 예루살렘에 도착한 동방박사들은 헤로데의 왕궁을 찾아갔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유다인의 왕이라면 당연히 헤로데의 왕궁에서 태어났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헤로데의 왕궁에서는 구세주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당황한 헤로데의 간교한 술수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별빛을 따라갔고, 결국은 베들레헴 말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치며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동방박사들에게는 일생의 목표가 완성된 때입니다. 평생의 구도의 여정이 그 목적지에 도달한 때요, 구원의 신비에 동참된 참으로 복된 순간이었습니다.
반면 헤로데는 어떠했습니까? 헤로데 역시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구세주의 오심을 알고 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실된 마음으로 구세주를 기다리거나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헤로데는 구세주가 오셔서 세상이 조금이라도 뒤바뀌는 것을, 기존의 체제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현재 로마 권력의 그늘에서 속국의 왕으로나마 권력을 누리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방박사의 질문에 당황하며 자신의 권력과 기득권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헤로데는 직접 구세주를 경배하러 떠나지 않고 동방박사들을 이용해 하느님의 계획을 뒤엎을 간교한 술책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결국 헤로데는 현실의 편안함과 권력을 누리기 위해 하느님께마저 도전장을 던진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헤로데와 동방박사, 두 부류의 사람들의 삶의 자세를 통해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을 반성해 볼 수 있습니다. 헤로데는 불의한 현실에 안주한 채 구세주의 오심을 거부하는 말뿐인 신앙인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신앙인은 신앙의 성숙에로 나아가길를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선택에 따른 희생과 고통을 두려워하고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쪽저쪽 모두에 다리를 걸친 채, 자기 편한대로 신앙을 이해하고 입맛에 맞는 것만을 받아들이며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동방박사들은 우리가 추구할 신앙인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앙은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요 참된 삶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선택은 단순히 어떤 것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따르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단에 따른 신앙의 여정에서 겪게 되는 온갖 고통과 희생까지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선택한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주의 공현 대축일을 맞아 헤로데와 동방박사의 신앙의 자세를 묵상해 봅시다. 우리는 두 경우 모두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헤로데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욺켜지고 살줄 알았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오늘날까지도 신앙의 선구자로서 우리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께서는 공평하신 분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주의 공현대축일을 기념하면서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고, 하느님의 오묘하신 섭리에 겸손되이 자신을 내어맡기는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먼저 자신 안에서 구세주의 오심을 알리는 별빛을 찾고, 그 빛을 따라 신앙의 길을 성실히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를 비추는 별빛이 되어야 합니다. 구세주 강생 2000년 대희년을 맞이했지만,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그리스도의 빛을 모르는 이웃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이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께 나아가 경배드릴 수 있도록 진리를 빛을 밝히 비추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해 선택되고 구원된 백성으로서, 자신의 본분에 보다 충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