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16일
연중 제 2 주일(나해)
제 1 독서 : 1사무 3,3a. 4-10. 19.
제 2 독서 : 1고린 6,13c-15a. 17-20.
복 음 : 요한 1,35-42.
형제 자매 여러분, 지난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연중 제 2주일입니다. 대림시기와 성탄시기를 지내고 이제 연중시기를 맞이해서 지난 첫 주간 동안 예수님의 세례와 공생활 초기의 행적에 대해 듣고 묵상했습니다. 지난 주간 복음을 통해 들은 것처럼 예수님께서 공생활 초기에 가장 역점을 두신 일은 바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교육하는 일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연중 제 2주일 전례의 전체적인 주제 또한 "부르심과 응답"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먼저 제 1독서에서 야훼 하느님께서 소년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태어났고, 그래서 이름 또한 "야훼께 빌어서 얻은 아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무엘은 태어나기 전부터, 바로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하느님의 종으로 봉헌된 인물입니다. 소년 사무엘은 이런 연유로 자연스럽게 성전에서 지내게 되었고, 사제 엘리의 가르침을 받으며 야훼 하느님을 섬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느님께서 소년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그러나 사무엘이 하느님의 부르심과 그분의 음성을 깨닫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사무엘로서는 아직 하느님과 대화하고, 그분께 기도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스승 엘리의 도움과 가르침을 받고 하느님께서 세번째 부르실 때에야 겸손되이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의 이같은 태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 그분의 초대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적절한 준비와 몸에 밴 기도생활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러한 준비가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두 눈 부릅뜨고 깨어있다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뿐입니다. 즉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신앙의 귀머거리 장님밖에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 역시 첫 번째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에 대해 전해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첫 번째 제자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을 보시고 즉시 "내 뒤를 따르시오. 당신들을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소"하고 직접적이고 명령적인 말씀을 통해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로 안드레아와 또다른 제자 한 명이 세례자 요한의 인도를 받아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습니다. 또한 첫 제자들은 "와서 보시오" 하시는 예수님의 초대에 응해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예수님과 함께 삶을 나눈 후 예수님의 정체를 깨닫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전개를 통해 자신의 독특한 영성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올바로 듣고 이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충실한 영성적 기다림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러한 기다림과 준비에는 인도자의 역할 또한 적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첫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을 통해 이러한 영성적 기다림과 준비를 충실히 했기 때문에 그토록 갈망해 오던 메시아의 도래를 알아보고 그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는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1독서에 등장하는 사제 엘리 또한 어린 사무엘을 하느님의 부르심에로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오늘 복음에서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과 함께 머문 다음 곧바로 안드레아가 취한 행동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안드레아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로 나오고 다른 제자 한 명과 함께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곳에 가서 보고 또 느꼈습니다. 안드레아는 자신이 발견한 메시아의 현존에 대한 기쁨을 자신 안에만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드레아는 즉시 자기 형 시몬에게 가서 그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시몬을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눈여겨보시고 그에게 게파, 즉 베드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시몬은 동생의 인도로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베드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고 전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요한 복음의 이러한 흐름을 통해 하느님의 부르심과 그에 응답하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를 향해 말씀을 건네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함께 충실히 준비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또한 소년 사무엘이 성전에 머물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던 것처럼, 첫 번째 제자들이 예수님의 초대에 응해 함께 머뭄으로써 예수님의 정체를 깨달았던 것처럼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시간이 꼭 있어야 합니다. 준비하며 머무는 삶,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분과의 만남을 가능케 해주는 길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은 또한 한 자리에서 정체되는 활력없는 생활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밖으로 퍼져나가는 활기있는 생활입니다. 아직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한 이들에게, 이미 응답했지만 충실히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다가가서 구원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생활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 한 개인의 삶안에 정체되고 나누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존재의 신비와 존엄성에도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제2독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값을 치르고 여러분의 몸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 몸은 더 이상 우리 몸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소유이고 그분께서 머무시는 성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의 몸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소년 사무엘을 부르시는 하느님, 제자들을 부르시고 함께 삶을 나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이제는 구체적으로 나를 부르시는 하느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을 건네시고 사랑을 주시며 함께 머물자고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느끼도록 노력합시다. 하루 이틀의 기도와 노력으로 하느님께 응답할 수 있다고 성급하게 행동하지도 맙시다. 우리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보다 충실하도록 노력합시다. 비록 나약하고 부족한 신앙이지만, 그래서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손짓하시고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조금이라도 더 충실히 준비하고 일상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응답하고자 노력하면 됩니다. 또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면서, 서로 이끌어 주면서 나눌 때 충분히 응답하는 생활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