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3주일(가해)

1999. 5. 11. 오후 8: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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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 3주일(가해)

1999년 4월 18일

 

 

                                    제 1독서 : 사도 2, 14. 22b - 33

                                    제 2독서 : 1베드 1, 17 - 21

                                    복    음 : 루가 24, 13 - 35

 

(이상훈 신부님 강론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정말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비가 내린 후의 맑은 하늘과 여기 저기 조화를 이루며 피어난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등 정말 아름답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꽃들과 함께 지내 보셨습니까?  여의도의 연중로나 남산 그리고 꽃이 많이 피어 있는 산이나 들에 가보셨습니까?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정말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며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쌩 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라는 책에서 여우가 왕자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올바른 것은 마음으로 봐야지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마 아름다움도 마음으로 느낄 때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은 다 떨어져 버린 목련의 모습과 같이 서글퍼 보이거나 질려 버리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제가 부제가 되어서 성당에서 방학을 보내게 되었는데 저의 숙소는 성당 안에 아주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당밖에 사제관과 수녀원이 있어서 그 커다란 성당에 혼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자매님이 딸에게 "부제님은 커다란 성당에서 혼자 지내니 정말 무서울 것이야"하고 말했더니 그 아이가 "엄마 무엇이 무서워요 더 좋지요.  부제님은 예수님이 계시는 밑에서 함께 계시는데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모습과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 떨어진 목련의 서글픔보다 아름다움이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있듯이 다르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아름다운 계절을 가지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에서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던 베드로가 성령을 충만히 받고 다락방에서 뛰쳐나와 이제는 용기를 갖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 자신이 새롭게 변했을 뿐 아니라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도 그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강론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수락하든지 거부하던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결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되살리셨다"라는 말로 베드로 사도는 하느님의 섭리는 확실히 인간의 계획을 뛰어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뜻대로 무엇인가를 행하고 이루고 있지만 그러나 하느님의 판단과 계획은 엄청나게 다를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았듯이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두 제자는 예수님께 큰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만 무참하게 죽임을 당한 것을 보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실망과 좌절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바로 이 실망과 실의의 순간에 예수님께서 지극히 다정한 동반자로 제자들에게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어떠한 존재인지를 성서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설명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이는 고통과 영광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며 선언입니다.  저녁 무렵 식탁에 앉아서 빵을 떼어먹는 순간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빵의 나눔, 그것은 바로 영성체, 곧 미사성제를 의미합니다.  이웃과 빵을 나누고 감사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체험한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  빵을 나누는 우리, 그리스도의 성체를 모시는 우리에게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기쁨을 지니며 생활하는 그 자체가 바로 부활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우리가 어려울 때 붙잡고 매달릴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다면, 힘든 세상을 어렵게 걸어가는 우리들인데 우리 곁에 동행해 주시는 주님을 뵙지 못한다면 도대체 신앙의 은혜 부활의 은혜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주님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하는 중대한 이유는 어떤 고정 관념이나 편견, 또는 고집이나 완고함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못 보며 오로지 자기만 바라봅니다.  

새롭게 주어지는 한 주간의 시간 속에서 우리 자신은 베드로 사도의 말씀처럼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눔의 삶으로써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며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변화하려는 마음 진정으로 올바름이 무엇인지 찾아 생활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지내는 한 주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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