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가해)
1999년 3월 28일
제 1독서 : 이사 50, 4 - 7
제 2독서 : 필립 2, 6 - 11
복 음 : 마태 26,14-27,66(27,11-54)
(이상훈 신부님 강론입니다. 왜 잘 오다가 안오는 것이여? 다음엔 직접 올려주시길)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이번 한 주간은 겨울과 봄이 오락가락한 주간이었습니다. 아무리 꽃샘추위라고 하지만 겨울 날씨가 되더니 또 어느새 봄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아마 막 꽃망울을 피운 나무들도 정신이 없었던 한 주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아름다운 과일나무가 가득한 과수원 주인의 나무 가꾸는 솜씨는 아주 멀리까지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의 동생이 과수원에 놀러왔습니다. 훌륭하게 자란 나무들을 보고 감탄하는 동생에게 그는 나무 한 그루를 선물로 주며 ’이 사과나무는 우리 정원에서 가장 좋은 것이니 잘 가꾸도록 하렴’ 하고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그 나무를 어디에 심을지 고민했습니다. ’언덕 위에 심으면 바람이 불어 열매가 익기도 전에 떨어질 테고, 대문 옆에 심으면 지나는 사람들이 몰래 따먹을 테지.’ 고민 끝에 그는 아무도 나무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뒤꼍에다 사과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 이듬해가 되어도 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았고, 단 한 개의 열매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동생은 몹시 화가 나서 형을 찾아갔습니다. ’형이 준 나무는 3년이 다 되도록 잎사귀 외에는 아무 것도 나지 않아. 혹시 내게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준 거 아냐?’하고 화를 내며 말하였습니다. 나무를 살피러 간 형은 뒤꼍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보고 ’너는 햇살과 바람이 전혀 들지 않는 곳에 나무를 심고 어떻게 꽃과 열매가 맺히길 바라느냐. 또 욕심 가득한 마음으로 어떻게 풍성한 수확을 바라느냐?’하면서 동생을 꾸짖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성주간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성서에서 여러 번 이야기하신 수난과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우리 인간에 대한 사랑이 보여지는 시간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왕으로 마중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동안 행하신 여러 가지 기적들에 대해 보지 못했지만 들어왔고 많은 이들이 참 예언자요, 구세주라고 말한 소리를 들었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쌍수를 들어 환영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오늘 복음에서 들은 것처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칩니다. 상식적으로 죽어야 하는 죄도 없는데 그저 자신들의 기대에 어긋났다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한다고 예수님을 죽입니다. 언제는 환영하고 이제는 십자가에 못박으로라고 합니다. 과수원의 훌륭한 나무를 보고 가져다가 자신도 그 만큼 많은 열매가 열릴 것이라고 기대 하는 사람처럼. 나무에 대한 정성과 나무에 대한 사랑의 노력 없이 그저 떨어지는 과일을 얻으려는 사람처럼. 과수원 주인의 동생이라고 과수원 주인처럼 나무를 잘 가꾸는 것은 아닙니다. 나무를 잘 가꿀 수 있도록 노력하며 배워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변화된 삶을 살기보다는 누군가 한꺼번에 이루어 주길 바라는 마음을 가졌다가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없애 버리려고 합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어 배반했습니다. 세상은 주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우리에게 최악의 경우가 생기면 하느님을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훌륭한 과수원 주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고 나무를 사랑하듯이 말입니다.
오늘 수난복음은 우리에게 희망을 잃어버리는 어둠과 슬픔을 맛보게 합니다. 우리가 믿고 따랐던, 우리 삶의 기준이었던 예수님이 아무 힘없이 자신에 대한 변론도 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죽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삶의 방향, 삶의 의미를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둠과 슬픔을 피해 도망가도록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껴안음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는 십자가의 원리를 당신의 행적을 통해 가르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안에서 뜻밖의 고통과 어려움, 슬픔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들은 우리가 극복해 나가야 할 대상들입니다.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고통을 당하시고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온 어려움의 대표적인 것이 I.M.F입니다. 우리는 이 경제적인 국난을 우리스스로 피하지 않고 껴안고 극복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겨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제3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야훼의 종의 셋째 노래"는 고통 중에서도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다른 이를 또한 위로할 수 있는 여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신뢰하고 하느님께서 인정해주심을 확신했기에 충실한 그 종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의 안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바로 고통과 어려움과 슬픔 앞에서 여유를 갖도록 가르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온, 간직해온 신앙은 주님과의 만남이며 은혜와의 만남입니다. 축복과의 만남이며 진리와 생명과의 만남입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주며 우리를 젊게 만듭니다.
이제 성주간을 지내면서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향해 변화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