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1월 8일 연중 제 32주일 성인 강론 (다해)
제 1 독서 : 2마카 7,1-2. 9-14.
제 2 독서 : 2데살 2,16-3,5
복 음 : 루가 20,27-38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연중 제 32주일입니다. 어느덧 늦가을이라기보다는 초겨울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쌀쌀한 계절이 되었습니다. 초겨울의 문턱에서, 또 전례적으로는 위령성월을 보내면서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모든 인간은 삶과 죽음의 문제 그리고 죽은 후의 일, 바로 영생에 대해 상당한 관심과 호기심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고, 위대한 성현이나 철학자들도 적지않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별히 죽음과 죽음 이후의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신비로운 영역으로 느껴지고 있습니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이 이러한 문제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라는 현실을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두가이파 사람 역시 죽음과 죽음 이후의 부활 문제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사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부활에 대해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정치적, 종교적 귀족 계급으로 대표적인 보수파였습니다. 그들은 현실의 질서에 더없이 만족하고 있었고, 내세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현실에서 그들이 누리는 특혜와 특권은 커다란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은 진지하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트집을 잡으려는 불순한 의도가 밑에 깔려 있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부활신앙을 갖고 있었고, 특별히 부활 후에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현세의 삶과 비슷한 삶을 계속 누리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 칠형제와 맏이의 아내에 관한 것은 오히려 유대인 서민들이 더 궁금해 하는 사항이었고,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시느냐에 따라 백성들로부터 환호 또는 반대를 받을 수 있는 일종의 함정과도 같은 것입니다. 결국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죽음과 부활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자신들에게 도전해 오는 예수라는 인물을 난처하게 만드는데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분명한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우선적으로 죽음 이후의 부활에 대해서는 이미 전제에 두심으로써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생각에 전혀 동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일반 서민들의 부활신앙 역시 왜곡되어 있음을 알고 그에 대한 분명한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결혼 문제로 제기됐던 현세와 내세의 연결고리는 더 이상 내세에서는 결혼이 필요없다는 주장으로 인해 끊어지고 맙니다. 예수님의 주장은 이런 것입니다. 죽은 이후에 모든 사람은 육신과 함께 부활하게 되고, 부활한 후의 삶은 현세의 삶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부활한 의인들은 더 이상 죽는 일도 없고 천사와 같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이런 뜻에서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은 새로운 생명으로 넘어가는 관문이며, 죽은 후에 우리는 변화하여 영혼과 육체가 모두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삶과 죽음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인간의 삶은 이 현세의 삶만으로 한정지울 수 없습니다. 사실 이 현세의 삶은 우리가 누리게 될 영원한 삶과 비교한다면 어쩌면 너무나 짧은 시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세의 삶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죽음 이후 우리가 누리게 될 부활과 영생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죽음을 잘 준비하는 삶입니다. 누구나 시작은 같지만 끝은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처럼 삶의 마지막은 준비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병인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던 한 고위 성직자가 죽음을 앞두고 몰래 비서를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자필로 쓴 한 장의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그 카드에는 이렇게 씌여져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 행복한 성탄을 맞이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이번 성탄은 내게 각별하다는 느낌입니다. 이 땅에서 맞는 마지막 성탄일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이 슬프기도 하지만 다가올 세상에서 주님과 더욱 친밀히 일치될 것을 생각하면 기쁘고 기대되기도 합니다. … 내가 본향에로 마지막 여행을 시작할 때 여러분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우정과 친절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
그는 비서에게 자신이 죽고 난 다음에 이 카드를 자신과 친분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부칠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1996년 11월 14일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조셉 버나딘(미국 시카고 대교구장) 추기경이었습니다. 성탄 카드는 그가 선종한 후 수시간이 지나 우체국으로 보내졌고, 세계 각처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카드를 받았습니다.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도 그 성탄 카드를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버나딘 추기경의 비서겸 운전기사인 벨로 몬시뇰에 따르면, 고인은 이미 지난 9월에 자신의 장례식 준비를 마쳤을 정도였습니다. 버나딘 추기경은 당시 로마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항공기 안에서 벨로 몬시뇰에게 장례식 계획표를 보여주었고, 몬시뇰은 그 계획표에 자신이 강론자로 배정되어 있는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자 이렇게 위로했다고 합니다. "괜찮다네, 나 자신도 울었으니까."
그래서 위령성월은 우리보다 앞서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우리의 죽음을 준비하는 때입니다. 세상의 마지막이자 모든 것의 종말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 전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새로운 세계로 하느님과 함께 나아가는 희망의 때입니다. 그런 점에서 희망을 미리 사는 이는 자신의 죽음을 가장 현명하게 준비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 부족한 강론이지만 우리 94서품 동창회방이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렸습니다.
다른 신부님들도 빨리 가입해 주시고, 그래서 좀더 자주 만나는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동창회장 주호식 바드리시오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