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8월 22일
연중 제 21 주일 성인 강론 (가해)
제 1 독서 : 이사 22,19-23
제 2 독서 : 로마 11,33-36
복 음 : 마태 16,13-20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 대한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베드로에게 커다란 사명을 주시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문제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그 순간부터 모든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였습니다. 과연 저분이 누구시길래 저토록 엄청난 기적을 행하시고, 백성의 지도자인 대사제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마저도 거침없이 비판하시고, 심지어는 하느님을 당신의 아버지로까지 부르시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습니다. 유대의 율법에 의하면 함부로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할 경우 이는 신성모독죄로 사형감이었습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심이 큰 만큼 소문도 많기 마련입니다. 요즘은 매스컴이 우리 생활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시대라 유명 연예인의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세인들의 관심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연예인과 관계되는 스캔들은 사실과는 관계없이 한없이 부풀려지기도 합니다. 예수님 역시 비슷한 상황에 계셨습니다. 신문이나 라디오, TV가 없었다 뿐이지 예수님은 당대에 가장 유명한 분중의 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 시대의 유명 연예인이 주로 젊은층의 인기를 바탕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은 그야말로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인기와 관심을 누리고 계셨습니다. 4천명이나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의 이야기만 본다해도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예수님 주위로 몰려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숫자는 성인 남자만을 계산한 것이니 실제는 훨씬 많았을 것입니다.
이렇듯 세인의 주목을 받는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그분에 대한 소문, 일종의 스캔들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돌아 다녔습니다. 특별한 전파매체가 없는 시대이니 소문을 주로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전하는 사람의 마음대로 과장되거나 축소되고 또는 왜곡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과연 누구이신지 알기가 더욱 어려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며 소문의 실상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대답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의 대답은 그 당시에 예수님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과 존경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세례자 요한이라면 당대에 가장 위대한 예언자 중의 한 분으로 유대인들의 가슴속에 깊은 인상을 심어준 분이었습니다. 또 엘리야는 구약시대부터 사람들의 지대한 존경을 받았고 하느님에 의해 기적적으로 승천했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로 다시 올 것으로 기대되는 분이었습니다. 또 예레미야를 비롯한 모든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안에서 가장 높은 명예와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제자들이 전해준 예수님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은 적어도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는 최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긍정적인 소문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다른 곳에 보면 반대로 부정적인 소문도 나옵니다. 예수님이 미친 사람이니 귀신들린 사람이니 심지어는 마귀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쓴다는 모함들도 있었음을 성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과 궁금증을 실로 적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말들이 많다보니 제자들 역시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명백히 대답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메시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큰 존경을 받는 예언자들도 메시아 앞에서는 언제나 제 2인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의 입을 통해 나온 이 고백이 2천년을 걸쳐 우리 모든 신앙인들의 고백의 내용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베드로 사도를 축복하시며 그에게 새로운 이름, 즉 바위(반석)라는 뜻을 지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시며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반석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울 계획이심을 명백히 밝혀주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고백은 바로 수레의 두 바퀴와도 같습니다. 만약에 수레의 두 바퀴 중에서 하나가 빠진다면 수레는 무거운 짐을 나르는 제 구실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처치 곤란한 짐이 되고 말 것입니다. 믿음의 고백없이 인식만을 앞세운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대한 사상가나 현명한 스승으로 평가절하할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또 올바른 인식없이 고백만이 앞설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대로 왜곡하거나 편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은행장으로, 세일즈맨으로, 무당으로 등등.
따라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고백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것임을 잘 말해줍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고백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올바른 인식을 위해 성서를 자주 대하고 신학서적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당한 고백, 바로 증거와 실천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가 우리 안에서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이어가는 제자로서 올바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