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란 신앙인에게 무엇인가?

2006. 11. 10. 오후 7: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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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란 신앙인에게 무엇인가?

 

<경향잡지> (1990년 10월호)

 

요즈음 여러 가지 기회에 교리교육의 중요성과 문제점에 대한 말을 많이 듣곤 한다. 새로이 교회 공동체에 들어온 이들이 교리지식이 부족하여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가 하면, 유아세례 받은 이들도 어른이 되어서도 필이 알아야 하는 교리도 모르는 일이 많다. 그리하여 오래된 신자들뿐 아니라, 갓 영세한 이들이 곧 얼마 안되어 냉담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런 현상이 물론 오늘에만 있어온 일은 아니지만, 특히 요즈음에 와서 그러한 일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원인이 새 영세자들의 교리지식을 넓히려는 노력의 부족 탓도 있겠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것이며, 교리교수를 담당한 이들과 또한 교회가 새 영세자들에 대한 관심과 교육의 지속적인 기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마련해 주었는지의 여부도 큰 요인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우리나라 교회에서 매년 새 영세자가 얼마나 증가하는지 살펴본다. 서울 교구의 경우 각 본당에서 예비자 교리를 실시하고 있고, 매년 상당수의 새 신자들이 나오게 된다. 천주교 중앙 협의회에서 발표한 작년의 교세 통계 (1989년 12월 31일 기준)를 살펴보면, 서울 대교구의 경우 대인 영세자의 증가수는 45,198명이었고 자녀 영세자의 수는 10,184명이어서 총 55,382명이 증가 되었다. 이 수치는 1988년도 서울 교구 신자 총수인 857,966명으로 계산할 때, 6.45% 증가한 셈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전체 교구의 경우 대인 영세자는 117,857명이 증가하였고, 자녀 영세자는 41,334명이 증가 되어서 총 159,191명이 증가되었는데, 이는 작년 전체 신자수인 2,468,082명에 비해 또한 6.44% 증가되었다는 수치가 나온다. 그리고 대인 영세자의 수는 도시 교구와 지방 교구와 간에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데, 서울 교구의 대인 영세는 자녀 영세보다 4.5배나 되는데, 타교구를 합친 전체 교구의 평균 대비는 3배가 채 못되고 있는 것이다.  이점은 또한 지방 교구에 비해 서울 교구에 성인 예비자들이 많이 몰려 있는 것을 나타내 준다. 이런 통계수치는, 국민 대다수가 신자이어서 보통 자녀 영세가 대부분인 유럽교회와는 다른 양상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대인 영세자수가 월등히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천주교가 신선한 종교로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며, 또한  그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유교, 불교, 등의 종교가 공존하고 있고, 아직 아무런 종교도 선택하지 않은 이들이 함께 한 사회를 이루어 다원화된 전교지방에 속해 있는 현실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교구 내 인구 중 신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볼 때, 서울 교구의 경우 전체 인구 11,511,038명중 신자는 914,299명이어서 그 비율은 7.94%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남한 인구 전체 중에 가톨릭 신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남한 인구수 43,685,511명에 대한 신자수 2,613,267명 이므로 5.98%에 해당한다. 이렇게 날로 통계 수치의 신자들은  증가하는데 또한 냉담자도 그에 못지 않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서울 대교구의 경우 냉담자의 수는 59,131명이며 거주 불명자수는 136,588명이다. 이것은 교구내 신자 중 냉담자의 비율이 6.46% 이며, 거주 불명자의 비율은 14.93%이고, 냉담자와 거주 불명자의 비율은 21.40%에 해당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전체 교구를 대상으로 비교해 볼때, 냉담자 수는 262,515명, 거주 불명자는 336,467명인데, 냉담자 비율은 10.04%이며, 거주 불명자 비율은 22.92%에 해당한다. 이러한 수치중 물론 거주 불명자라고 해서 신앙 생활을 전혀 안한다고 볼 수는 없으나, 전입이나 전출시 신자로서의 상식을 지니고 있고 또 그 의무를 잘 이행했다면 자신의 교적이 올바로 기입되어 거주 불명자로 처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냉담자의 비율도 새로 세례를 받는 비율 만큼이나 높은데, 이들 중에는 물론 고정적으로 수년에 걸쳐 냉담 상태에 있는 이들도 있고, 또 영세한지 얼마 안되어 냉담자 대열에 끼어든 이들도 있을 것이다. 냉담의 원인으로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한 회의나 교회 소속감의 결여, 혹은 현교회 정책에 대한 불만족, 성직자 수도자와의 갈등등 그 요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자생활은 하느님과 자신, 그리고 이웃과의 친교를 위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에 대한 교리 지식의 결여가 큰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교리 전달과 습득, 신앙생활의 의미를 한번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기 위해 교회에 찾아오는 예비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 형성의 가장 중요한 초기 과정을 교리교사에게서 영향을 받게 된다. 교리는 교회에 관심있는 예비자들을 받아들여 새로운 그리스도인으로 형성시키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고 효율적인 매개체라 할 수 있다. 교리를 지도하는 교리교사는 이들에게 먼저 인간적인 친근감과 관심을 보여 주며 한 믿음 안에서의 공동체에 속하게 됨을 일깨워 주며, 점차적으로 그리스도 신비 교육에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리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하느님 메시지의 기쁜 소식을 그 시대의 언어로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은 급속도로 변해가는 變化의 시기 이므로, 현대인은 그 빠른 변화의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위기의식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절대자를 찾으려는 마음을 일으켜 주고 그 안에 안정을 찾으려 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그리고 현대인은 과거와는 다른 종교적 감정, 태도를 갖고 있다. 과거에는 개인의 사회 생활과 종교적 신앙의 범위가 어떤 면에서 일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지리상의 발견, 계몽주의등의 역사적 대변화를 겪으며 그리스도교 신앙도 서구에서 보듯이 세속화, 탈신화화, 혹은 비교 종교학적인 경향으로 상대화되는 위기 속에 있으며, 그와 함께 물질주의적 사고의 팽배와 인간 경시 현상등의 사조와 반비례하여 정신적 빈곤은 상대적으로 더해가고 있다.  이러한 현대세계에서 기존의 구태의연한 신앙 교육은 오히려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福音의 生命力을 감소시키고, 그들의 교회에 대한 관심마저 멀어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福音은 그 時代의 言語로 再解析 (Réinterprétation de l'Evangile selon langage du temps) 되어 살아 있고 體驗的인 생명의 말씀으로 전달되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점들은 이미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와 교황 바오로 6세의 「현대의 복음선포」, 요한 바오로 2세의 「현대의 교리교육」등에서 강조된 바 있다.

교리교수란 신앙의 이론과 실천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교의 전 내용에 대해 가르침으로써 기초적인 신앙지식을 얻는 일이며, 그 뿐 아니라, 그 배운 신앙 지식을 그리스도교적 생활에로 인도하는 과정도 포함하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敎理'라는 말의 서양 용어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라틴말의 Catechismus (교리, 교리요항), Catechesis (교리강화, 교리연구),  Catechumenus (-na) (세례 예비자)등이 있다.  이 말들의 어원은 그리스말에서 온 것으로서 이미 성서 안에서 '宗敎的 敎示를 행한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즉 『하느님의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 과 모든 좋은 것을 같이 나누어야 합니다』 (갈라 6,6) 라는 귀절에서 보듯이, 모든 좋은 것을 나눈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 밝혀진 하느님의 신비와, 인간을 구원하려는 기쁜 소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또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 안에 구원 받은 자녀들의 가장 고귀한 가치를 향유하도록 일깨워 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예수님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좋은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했던 훌륭한 교리 선포자이셨으며, 사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초대 교회에 있어서 교리란 하느님의 법에 대한 가르침과 교육, 그리고 주님의 윤리적인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의미가 강조되어 나타난다. 사도행전 18장 25절에 보면, 『그는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으나, 이미 주님의 가르침을 배워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열성을 다하여 전도하며, 예수에 관한 일들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런 문맥에서 보듯이, 敎理라는 말은 내용적으로는 주님의 가르침이며, 행위면으로 보면, 그것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행동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교리는 좀더 특별한 교육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 왕국에 대한 선포」를 나타내는 케리그마 (kerygma) 와는 구별되며, 또한  세례받은 사람을 위한 설교로서의 교리적인 가르침을 의미하는 말인 디다스칼리아 (Didascalia)라는 말과도 구분된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교리라는 말을 하느님의 법을 읽히고, 그 법을 통해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능력을 얻는 일로 말하고 있다 : 『여러분은 벌써 오래 전부터 남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되었어야 할텐데, 하느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를 남에게서 다시 배워야 할 처지입니다.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아직도 젖을 먹어야 하는 형편입니다. 젖을 먹어야 할 사람은 아직 어린 아이이니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숙해지면 단단한 음식을 먹게 됩니다. 성숙한 사람은 훈련을 받아서 좋고 나쁜 것을 분간하는 세련된 지각을 갖고 있습니다.』 (히브 5, 12-14).  이러한 말씀에서 보듯이 우리가 교리를 열심히 배우고 연구하면 우리는 성숙한 사람으로서 좋고 나쁜 것을 하느님의 법에 따라 분간하는 능력을 갖게 되고 하느님의 신비를 깨닫고 인간적으로 기쁘고 의미있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연령과 신분과 수준에 알맞는 교리 지식을 항구히 습득하려는 노력이 게을이 된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하느님의 말씀의 초보적인 지식 상태에 머물게 되어, 신앙의 참 기쁜 생활을 모르게 되어 유아적인 사고에 젖게 된다.  신앙인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교리를 올바로 탐구할 의무가 있다. 많은 신자들이 예비자 기간 동안에 배운 교리 지식만을 가지고 생활하는데, 그 기간 동안에 배운 교육의 질도 문제이거니와, 세례 이후의 지속적인 교리 연구에도 여러가지 사정상 핑계를 대고 등한히 하기 쉽다. 교리지식은 신앙 생활의 바탕이며 근본이 된다. 우리가 만일 신앙 대상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지 않고 다른 지식으로 신앙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바로 우상 숭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과거와는 달리 교구나 단체, 본당에서 여러가지 신앙강좌도 많이 열리고 많은 신자들이 교리를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높아가고 있다. 그중 가톨릭 교리 신학원의 경우, 2년 과정의 소정의 학업을 이수한 이들에게 선교사 자격증 (Missio canonica)을 수여하고 있는데, 교리교육과는 그 역사가 30년이 되며, 야간에 공부하는 종교교양과는 20년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동안 많은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이 이 학교를 졸업하여 교회 각 부분에서 활약하고 있고, 특히 5년 전 부터는 '平信徒 宣敎師'의 자격으로 성직자, 수도자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그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 가령 광주 대교구의 진도 본당 하의도 공소에서는 이 학교 졸업생 세명이 파견되어 거의 폐허화되었던 공소를 일으켜 활성화시키고 있다. 그 외에 해남, 안성, 안좌도에도 평신도 선교사들이 파견되어 일하고 있고, 서울에서는 도봉동과 신월동에서 '아기방'을 운영하며 도시 빈민 선교도 돕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자원하여 그러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교리신학원에서 실시하는 '신학 통신 교육'도 2년 과정으로 신학 입문을 이수하는데, 전국적으로 등록하여 배우는 학생이 1200여명에 이른다. 또한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일일 피정으로 지도하는 '평신도 교육 연수'는 년 1200여명이 참여하여 신자 재교육의 일환으로 교리를 익히고 있다.

교리교육의 쇄신 운동은 이미 서구에서 지난 1920년대 부터 일어나, 교육학, 사회학, 심리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대상에 맞게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가 있어 왔다. 그리하여 교리교수는 신학, 철학, 성서, 전례, 교의 신학등, 인접학문과의 다각적, 종합적 방법으로 모색하게 되었는데 그 목표는 지식 전달만이 아니라 신앙이 실재적 삶의 변화를 주고, 훌륭한 신자가 되기 위한 생명의 메시지를 사목적인 관심하에 전달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 속에 그리스도교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시켜 주고, 마침내는 성화에로 이끌어 그리스도를 체험하며 하느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데 있다. 그 핵심은 교회의 원천과 살아 있는 전통에로의 회기 즉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 생기있는 믿음과 나눔의 공동체를 이루려는 것이다.  현대의 교리교육은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성사적이고 성서 역사적인 성격을 띤 방법론을 적용하여 교리내용의 개선과 함께 선교적 교리 교육의 단계적 방법의 고려와, 지역에 맞는 교리 연구 기관을 통해 연구물의 출판, 제도의 설립, 문화에 적응 시키는 일, 토착화등을 모색하고 있는데, 긍극적으로는 교리 교육이 기쁜 소식인 메시지로 인식되고 종합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리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삶을 살도록 일깨워 주며, 소명을 받은 인간이 또한 그리스도안에서 성장하며, 상호 사랑으로 하느님께 응답하는 삶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神秘와 각 個人을 연결해주는 것이 교리교육인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리교육을 우리 시대의 불안과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도록 다각적 방법 (Méthode pluridiscplinaire)으로 그리스도의 신비가 肉化되도록 傳達하고, 信仰人들은 이러한 교육의 기회를 잘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교리를 연구하고 생활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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