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교육과 전례
신학박사 최윤환(암브로시오)회갑기념논문집:
<전례와 선포>에 기고된 글
(1995년 12월 3일)
김 웅태 신부)
서 언 : 교리교육과 전례의 밀접한 관계
교리교육과 전례는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교리교육은 그리스도교에로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교의 기초적인 진리를 전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교리교육은 또한 이미 신자가 된 이들에게 신앙의 성숙을 위해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직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주일학교 교육이 있고, 또 성인이 된 이들에게는 계층별, 연령별로 그들에게 알맞는 교육을 실시하게 되는 신자 재교육의 차원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신자 재교육에는 오늘날 다양해진 평신도들의 직무와 활동을 위해 그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리교육의 결실과 목적은 전례 안에서 종합되고 표현되는 것이다. 신자들이 교리교육을 통해 배운 바를 한갖 지식의 차원에서만 머문다면 그것은 참다운 신앙생활이 될 수 없다. 교리교육의 목적은 신자들을 가르쳐 참다운 그리스도교인으로 성숙시키는데 있다. 성숙된 그리스도교인은 생활 속에 신자로서의 정체성(Identity)이 드러나야 한다. 이 정체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일상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타나는 행동방식과 하느님의 백성의 모임인 교회공동체 안에서 신앙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전례의 중요성을 보게 된다.
전례행위는 신앙내용의 상징적 표현들과 신앙고백의 행위들로 구성된다.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몸짓, 상징적 표현들은 신앙행위를 나타낸다. 가령 머리를 숙여 절을 한다면 경배드리는 행위가 되며, 손을 모으고 기도드린다면 어떤 절대자를 향한 마음의 표현이 된다. 그리고 전례 안에서의 상징들은 신성(神性)을 표현해 준다. 성체 안에서 밀떡과 포도주는 사제의 축성기도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타내준다. 전례행위 안에서 전례에 참여하는 이들은 이것을 지식으로 알뿐 아니라 그에 대한 믿음의 반응을 나타내게 된다.
교리교육은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행위와 동작들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일깨워 주는 일을 하며 그러한 과정에서 교회 공동체의 약속과 계약을 가르쳐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전례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선 교리교육이 잘 되어져야 한다. 교리교육이 잘 되면 전례 의식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되지만 교리교육이 잘 안되면 전례의 의미와 상징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전례는 형식화되고 만다. 전례는 단지 형식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은총이 성사를 통해 내리는 장(場)이 된다.
전례는 또한 참여하는 이들의 수준에 따라 품위있게 거행되어야 한다. 어린이들에게는 어린이의 용어와 태도가 필요하고, 어른들에게는 그에 맞는 품위있는 언어의 선택과 예절이 필요하다.
제 1장, 전례에 사용되는 언어와 표현의 중요성
전례에 사용되는 언어와 표현은 참으로 중요하다. 전례는 또한 알아들을 수 있고, 공통된 체험을 기반으로 한다. 과거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라틴어로 미사를 집전하였는데, 라틴어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전례거행시 별로 큰 체험과 공감을 갖지 못하였다. 역사상 이미 8세기 이후부터는 이러한 문제를 직시하여 라틴어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적어도 '주의 기도'나 '사도신경' 만큼은 모국어로 외우도록 하는 지침이 나오기도 했다1)
그리고 미사전례의 모국어 사용 문제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개혁의 방향이기도 했다.2)
사실 전례는 예절과 행위의 경검함, 엄숙성을 통해 신성한 체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외적인 분위기에만 그친다면 피상적인 체험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례거행 중에 사용되는 언어와 그 의미를 이해하면서 참여한다면 보다 체험적인 신앙에로 이끌어 줄 것이다.3)
그러므로 전례거행에 있어서의 언어의 표현과 선택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육으로 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영적인 차원과 육적인 차원의 필요와 만족감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인간이 어떻게 체험할 수 있는가? 그에는 물질적인 것을 매개로 체험될 수밖에 없다. 물질로서 표시되는 신성(divinity)이 물론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성에 해당되는 면을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성한 것에 대한 체험은 영,육의 조건에 맞게 체험될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설명하실 때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말과 사물을 사용하시어 비유로서 표현하셨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것을 통해 추상적인 것에로의 인식이 인간의 이해조건이다.
이러한 방법은 현대 교리교육의 주요한 방법론 중의 하나이며 교리교육에 관한 많은 문헌들에게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4)
그러므로 전례거행에는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사물을 통해 추상적인 하느님의 인식에 도달하는 방법을 활용하는데 바로 이것이 성사(Sacramentum)이다. 성사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나타내 보여 주는, 눈으로 볼 수 있고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어떤 사물(표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리교육은 신자들로 하여금 '성사'를 이해하게 하고 성사 생활에로 이끌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만일 신자들이 교육을 받지 않고 성사를 받거나 성사에 참여한다면 그 의미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사를 통해 내려주는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체험을 가질 수 없다.5)
성사에는 사효적 효과(Effectum ex opere operato) 뿐 아니라 인효적 효과(Effectum ex opera operantis)가 있기 때문이다. 사효적 효과란 '거행된 성사 자체를 통해 받는 성사의 은혜'이며, 인효적 효과란 '성사에 참여하는 이의 노력과 정성과 열심에 따라 받게 되는 하느님의 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례를 통해 거행되는 성사의 효과를 최선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교리교육을 통해 그에 합당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리교육 과정을 통해 가령 '세례성사'는 무엇이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교육이 선행된 상태에서, 세례를 받는 이들이 세례성사에 참여한다면, 세례성사가 주고자 하는 은혜를 충만히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세자들은 자신이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은혜로 원죄와 본죄의 사함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하느님의 백성이 이루는 교회의 한 지체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기뻐하며, 세례받은 신앙인으로서의 생활에로 감사하고 실천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처럼 교리교육과 전례는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것이다.
제 2장, 교리교육의 중요한 내적 관계인 선교와 전례
교리교육은 사람들을 전례에로 인도하고 참여하게 하는 준비단계라면, 전례는 교리교육의 내용과 가르침을 완성하고 종합적으로 꽃피우게 하는 것이다.
한편 교리교육은 또한 선교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교리교육은 교회의 선교에 의해 교회에 관심을 갖고 들어온 이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선교는 교리교육 이전의 복음선포이다. 선교는 복음적 핵심메시지(케뤼그마, Kerygma)를 짧막한 형태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라면, 교리교육은 복음과 교리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과정이며, 신자들은 지성으로서 교리를 이해하고 익히게 된다. 그리고 전례는 교리교육을 통해 익힌 바를 말과 제스추어, 행동으로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와 교리교육 그리고 전례는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상호 신앙형성에 그 일익을 담당한다.
이러한 관계를 중요하게 간파했던 이는 6세기 경의 그레고리오 대교황6)이었다. 그는 선교와 교리교육을 밀접히 연결하여 사목활동을 하였으며, 전례를 개혁하였다. 당시 6세기에는 게르만 민족들의 대이동에 따라 그들이 유럽의 여러 지방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중, 교회는 이들을 교화하는 큰 임무를 갖게 되었다. 이때 교회는 여러 지방들에 선교사들을 파견하였으며,7) 특히 어떤 민족의 왕이나 귀족들을 교화시켜 그 민족 전체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도록 하는 정책을 펼치었다.8)
이러한 과정에서 특히 그레고리오 1세 대교황은 선교와 교리교육 그리고 교리교육과 전례와의 밀접한 관계를 간파하고 그에 대한 사목방침을 적용한 것이다. 교회는 선교를 통해 외교인들을 교회에 불러 모으고, 불러모인 외교인들은 예비자의 신분으로 일정기간 동안 교리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교리교육을 받아 교회의 가르침과 성서와 복음, 신앙생활의 의미를 깨치고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된 이들은 이제 전례에 참여하여 자신들이 믿는 신앙의 내용을 고백하고, 믿는 바를 행동으로 전례 안에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활동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선교 → 교리교육 → 전례이다. 교회의 이러한 세가지 활동은 교회의 본질적 직무로서 초대교회 때부터 오늘날까지 지속되며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초대 교회 때에도 사도들의 선교활동이 먼저 있었고 그 다음 교회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교리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교리교육 중에 있는 이들은 이미 신자가 된 이들과 구분되어 3년동안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윤리교육을 엄격히 받게 되었다. 예비자들도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으나 다만 말씀의 전례 부분만 참여하고 성찬의 전례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9) 이들은 이 기간동안 크게 세가지 분야의 교육을 받았는데 그것은 교의, 윤리, 성사교육으로 대별된다. 교의 교육의 대표적인 것은 사도신경이었으며, 윤리교육으로는 십계명, 그리고 성사교육은 신비교육으로서 성사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한 교육이 실시되었음은 2세기의 문헌인 디다케10)에서 발견된다. 디다케는 초세기 때의 교리교육과 전례생활에 대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를 중심으로 이러한 교육이 체계적으로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교육은 적어도 4세기 초까지 어떤 체계적인 형태가 지속되었음이 발견된다.
제 3장, 교리교육제도의 쇠퇴와 전례예절의 교리교육적 역할
한편 그리스도교의 공인(313년) 이후 교회는 로마제국의 강력한 후원하에 점차적으로 제도화 됨에 따라 계속적인 성인입교가 지속되었었다. 그러나 얼마 후 5세기 경부터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에 따라 그들을 교화하는 문제가 시급히 요청되고 또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각 민족의 수장이나 왕들이 세례를 받음에 따라 민족전체가 집단적으로 개종하게 되는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교리교육을 제대로 실시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 체 집단적인 세례가 이루어 진다.
따라서 초대교회 때에는 3년동안 지속된 교리교육 제도를 제대로 실시 할 수 없게 되자, 지역에 따라선 1년 혹은 6개월 혹은 40일간의 준비기간을 두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11) 결국에는 교리교육을 실시하지 않고 먼저 세례를 주고 나중에 교육을 하는 '선세례 후교육'(先洗禮 後敎育)의 형태가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찬 가정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에 대한 유아세례와 어린이 교육이 중요한 교리교육의 과제가 된다. 이러한 형태가 6세기 경부터 거의 1천년간 지속되었으며, 중세 전반에 걸쳐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은 주로 '주의 기도'와 '신경'에 대한 교육이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하기 위해 부모와 대부모들의 임무를 강화하는 율령들이 반포된다. 즉 부모와 대부모들은 '주의 기도'와 '사도신경'을 이해하고 외워야 할 뿐 아니라 자기 자녀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교리교육제도에 의한 교육보다는 주로 가정에서 부모나 대부모에 의해 교리교육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12) 한편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들의 전례생활이 오히려 교리교육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중세에 발전된 신심행사, 성지순례, 유해공경, 성인축제, 각종 종교적 축제들은 그 전례적 거행과 행사를 통해 신자들을 종교적으로 일치시키고 교육시키는 효과를 가져 왔다.
중세에는 전례생활이 오히려 교리교육의 역할을 보완해 준 셈이다. 그리고 전례생활을 도와주는 교회당의 고딕식 첨탑, 대성당에 장식된 스테인드 글래스, 조각 등은 교리교육의 시청각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중세시기에는 전례와 종교적 분위기가 교리교육의 역할을 보완하게 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13)
제 4장, 인쇄된 교리서들의 출현과 「로마 교리서」의 의의와 그 영향
한편 교리교육의 체계적인 형태는 어떤 의미에서 마르틴 루터(Matin Luther, 1483-1546)의 교리서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루터는 1529년에 역사상 처음으로 아욱스브르그(Augsburg)에서 인쇄된 교리서를 발간하게 되었다. 그는 교리교사들을 위한 '대교리서'(Der Großer Katechismus)와 어린이들을 위한 '소교리서'(Der Kleiner Katechismus)를 펴내게 되었는데, 이것은 개신교의 유포와 확장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에 자극을 받아 가톨릭 측에서도 바로 그 다음해(1530)에 아욱스브르그에서 인쇄된 가톨릭 교리서를 펴내게 된다.
그러나 초기에 나온 가톨릭 측의 교리서는 루터의 교리서보다 질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빈약했다. 그후 가톨릭에서는 까니시우스 (Petrus Canisius, 1521-1597), 로버트 벨라르민 (Robertus Bellarminus, 1542-1621) 가를로 보로메오 (Carlos Bormeus, 1538-1584) 등의 신학자들이 교리교사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교리서들을 펴내게 되는데, 질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특히 개신교의 출현으로 인한 가톨릭측의 종교쇄신을 위해 열렸던 트리덴틴 공의회에서는 가톨릭 교리에 대한 전반적 이해와 입장을 기술한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리서, 일명 「로마 교리서」(Catechismus Romanus)14)를 1566년 반포하게 된다. 이 「로마 교리서」는 가톨릭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리에 대해 전반적이고 총괄적으로 다룬 것으로서, 그후 400여년 동안 가톨릭 교리와 신자생활을 지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 「로마 교리서」는 '대 교리서'(Catechismus Major)의 성격을 띠는데 즉 '대 교리서'란 교리교육을 담당하는 이들 주교, 사제, 교리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에 반해 '소교리서'(Catechismus Minor)란 교리교육을 받는 이들을 위해 쓰여진 것을 말한다. 「로마 교리서」의 집필목적은 교리교육을 주로 담당하는 본당사목자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것으로서, 크게 신경, 성사, 계명, 기도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이러한 네 구분의 원천적 토대를 마련한 이는 13세기경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에게서 발견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과 교리교육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고 신학의 방법은 체계적이며 이론적이어야 하나, 교리교육의 방법은 구체적이고 교육받는 대상자의 상태를 고려하도록 배려하고 있다.15) 하여튼 「로마 교리서」의 출간은 이제까지의 교리교육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으며, 그후의 모든 교리서는 「로마 교리서」의 지침과 내용을 각 지역, 지방에 따라 적용하는 형태의 교리서들이 나오게 된다. 실로 유럽에서는 17-18세기에 교리서들의 대량 산출시기를 맞이하게 된다.16) 이태리, 불란서, 스페인, 포르투갈 등을 위시하여 남미에까지 「로마교리서」를 적용하여 요약한 교리서 혹은 그 일부를 부각하여 만든 교리서 등이 나타나며, 형식은 문답식으로 대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문답식의 교리서들은 중국에 온 외국선교사들에 의해 한역 교리서로 변환된 후 우리나라에까지 지난 17세기 이후 200여년간 유입되어 활용하게 된 것이다.
「로마 교리서」는 이처럼 16세기 이래 400여년간 교회의 교리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흐르고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표현방법, 그리고 교회의 제도상의 변화와 일상생활의 변화에 따라 「로마 교리서」는 모든 요구조건을 다 만족시켜 줄 수는 없었다.
제 5장, 근대 교리교육 쇄신의 세 가지 중심축
19세기 말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교육학, 심리학, 사회학의 발전은 교리교육 분야에 큰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리교육은 더이상 문답식 암기위주의 교육이 되어서는 안되며 또 지나친 수계중심적이며 신 중심의 면을 띠어서는 사람들에게 좋은 효과를 낼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베르나르 오버베르그 (Bernard Overberg), 아우구스틴 구르버 (Augustinus Gruber, +1835), 죠셉 데하르베 (Joseph Deharbe, +1871), 요한 세자 히르셔 (J. B. Hirscher) 등의 학자들은 교리교육이란 구원의 기쁜소식을 전달해 주고 생활가운데 성숙에 이르는데 목적을 두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그리하여 1905년 뮨헨 교리교수법 대회를 계기로 한 여러 차례의 교리교육 국제 대회들에서는 교리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개선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전례와 생활면에 쇄신을 가져오도록 국제 상황과 교회상황을 진단하여 그 개선을 꾀하였다.17) 그리하여 교리교육은 크게 세가지 중심축으로 개선되어야 하는데, 이는 초대교회의 교리교육적 상황에로 회귀하는 면을 띠고 있다. 즉 첫째는 성서 역사적인 교육(Biblico-historical education), 둘째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교육(Christo-centric education), 셋째는 성사전례적인 교육(Sacramento-liturgical education)이다.
제 1절, 성서 역사적인 교육
성서 역사적인 교육이란 교리교육의 내용이 성서와 성전에서 그 원천을 취하고 성서의 구세사적인 면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느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서에서 교리교육의 본질적 요소들을 찾으며, 또한 성전을 통하여 전승된 교회의 전통적 교육방법을 시대에 맞게 적응시켜야 함을 말한다.
제 2절, 그리스도 중심적인 교육
그리스도 중심적인 교육이란 그리스도는 구원역사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모든 교리교육의 방법과 내용이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 안에서 성부께로 가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중개자이시며, 성부 성자 성령으로 이루시는 삼위일체의 핵심이 되신다.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와 성령을 알게 되었으며, 성부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구원사업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교리내용의 제시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항상 중심에 위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 3절, 성사 전례적인 교육
성사전례적인 교육이란 교리교육이 성사와 항상 연결되고 전례 안에서 종합되고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리교육이 교의나 가르침의 암기 수준에만 머물고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 안에 적용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교는 단지 지식의 종교에 머물고 만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신자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하느님 백성의 모임인 전례 안에서 표현되어야만 참으로 살아있는 신앙이 될 것이다.
이상 교리교육의 세가지 중심축은 현대의 교리교육을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 제시된다. 이것은 또한 「교리교육에 관한 일반 지침서」(1971), 「현대의 교리교육」(1979) 등의 주요한 문헌에서도 강조된다.18) 또한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에 교황령으로 서두를 장식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신앙의 유산」(Fidei depositum, 1992, 10, 11)에서도 이 세 가지 방향의 기본 정신이 반영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교황은 1985년 1월 25일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20주년을 즈음하여 소집된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 임시 총회에서 새롭게 집필될 보편 교리서의 기본정신과 방향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 "신앙과 도덕에 관한 모든 가톨릭 교리를 망라하는 교리서나 그 개요서가 편찬되어야 합니다. 이는 여러 지방에서 작성될 교리서나 개요서의 준거로 삼을 규범서가 될 것입니다. 교리의 설명은 성서적이고 전례적이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의 실생활에 적합하면서도 동시에 건실한 교리를 제시하여야 합니다."19)
제 6장, 현대세계의 변화된 종교적 상황
교리교육에 관계된 많은 문헌들에서는 특히 과거와는 판이하게 변화된 현대세계의 상황과 교회의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현대세계의 변화된 상황으로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과학기술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무신론, 종교적 냉담주의, 인간주의, 이성주의 등의 사조 속에 현대인들은 신을 찾지도 아니하고 신의 존재를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종교적 계율보다는 물질이 주는 안락함과 편의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서 속에 표현된 하느님에 대한 묘사나 계시적 표현마저도 인간이 투사한 것으로 간주하며, 탈신화화 내지 비신화화 작업에 지성적인 갈채를 보내기로 한다.
교회 내의 변화된 상황도 심각하다. 신자들도 주일날에 종교적 계율을 지키기 보다는 휴가나 일, 모임 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과거에 신성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더이상 '거룩한 것'의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세속화 현상이 교인들의 정신세계 속에 깊숙히 침투되어 있다. 그리고 교리나 전례행위에 있어서도 시대적 감각에 맞는 것을 요구하는 추세이다.
제 7장, 교리교육과 전례의 토착화
제 1절, 토착화의 의미
이러한 상황들의 변화에 있어서 그러므로 가장 시급한 것은 토착화(inculturation)20)의 문제이다. 토착화란 어떤 새로운 문화가 시대나 지역적으로 다른 문화권에 들어갈 때 만나게 되는 문화적 간격과 충돌과 갈등을 극복하고 그 문화권 속에 뿌리내리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토착화는 인류의 역사가 있은 이래로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성서 안에서도 토착화의 과정이 있었다. 토착화의 근본적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Incarnation)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즉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할 때 인간의 조건을 감안하여 구원의 방법을 사용하셨다. 하느님의 아들이셨던 성자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시어 인간의 말로 하늘나라의 신비를 가르쳐 주시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비유나 비교, 가르침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도 토착화의 방법을 사용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말씀을 토착화하는데 전형적인 모범을 보여 주셨다.
신비에 쌓인 '하늘나라'를 인간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비유로서 하늘나라의 신비를 깨닫게 되었다. 하늘나라의 신비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 인간세상에 알려지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고, 사람들의 마음은 하늘나라의 은총과 진리로 채워져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의 신비가 인간들의 마음에 토착화된 것이다. 토착화란 바로 그 시대사람, 그 장소에 사는 사람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과정이다.
제 2절, 시간과 장소의 토착화
그러므로 토착화는 시간의 토착화와 장소의 토착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성서의 말씀은 영원한 것이지만 현대인들이 성서를 읽고 받아들이기에는 시간과 장소의 간격이 있다. 이 시간과 장소의 간격을 통시적(diachronique)으로 극복하는 것이 토착화인 것이다. 토착화의 분야는 실로 다양하다. 성서자체의 가르침이 우리가 사는 시대와 장소에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표현으로 재해석(réinterprétation)되어야 하며, 또한 서구에 정착하고 꽃피워진 그리스도교 문화가 동양이나 남미 등 이질적인 문화전통 속에 들어오기 위해서도 토착화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토착화는 시간과 장소의 두 분야에 공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메시지의 형성배경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고 그 동일한 의미가 그 시대 그 장소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리교육의 토착화와 전례의 토착화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중요한 과제가 된다.
교리교육의 토착화란 바로 성서와 성전에서 표현된 계시진리와 교회의 가르침이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이해되고 또 성서의 원 의도대로 적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례의 토착화란 교리교육을 통해 이해되고 표현된 언어양식이 인간의 감각적인 표징이나 상징 그리고 몸동작, 의식절차, 종교적 분위기로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
제 3절,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인 토착화
이 표현방식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옛날의 어떤 표현은 유치하거나 무의미하여 버려질 수도 있고, 또 어떤 표현은 계속 사용될 수도 있다. 또 같은 동일한 신앙내용을 전례적으로 표현한다 해도 동양의 방법과 서양의 방법이 다를 수 있고, 또 남미나 호주에서는 이상하게 보여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토착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성(多樣性)이라 해서 상이성(相異性)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대로 '쇄신을 통한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말하는 것이다. 교리교육과 전례는 끊임없이 시대의 흐름과 장소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쇄신을 통한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도모해야 할 공통과제를 갖고 있다. 시대 감각에 맞도록 그리고 그 문화권(장소)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교리내용의 이해가 이루어지고 전례의식의 적절한 표현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그리스도교가 매력을 끌지 못하고 있다면 바로 교리교육과 전례 분야에 토착화가 이루어져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리교육의 토착화를 통한 신앙이해 그리고 전례의 토착화를 통한 적절한 신앙표현이 이행된다면 현대인들이 종교적 믿음에 회의를 품지 않을 것이며, 또한 종교적 신앙표현에 어색하거나 거부감을 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토착화는 어느 한 시대나 어느 한 장소에 고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시대는 계속 흘러가고, 문화권도 늘 다른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 변화되듯이, 토착화의 과제는 계속 변화되는 시대와 변화되는 문화권에 적응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리교육과 전례는 끊임없이 변화되는 시대성과 문화형성의 추이에 시선을 두고 적응해 가야할 과제가 항상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토착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교회의 토착화를 위한 공의회를 개최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21)
결어 : 교리교육과 전례 분야의 항구적인 토착화 과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크게 두 가지 정신을 가지고 교회를 현대화(Aggiornamento)하고자 했다. 즉 "쇄신과 적응",(Rénovation et Adaptation) 그리고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Union dans la diversité).
그리하여 전례헌장에서는 각 성사들과 전례의식의 개정을 과감히 명했으며, 사목헌장에서는 '다양한 문화들'의 인정과 그러한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해야 할 교회의 사명을 일깨웠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권고대로 세례성사 예식서를 비롯하여 칠성사, 그리고 교계제도, 각종 예식서 등이 현대에 맞도록 개정되었으며 지금도 계속 개정작업이 진행 중인 것도 있다. 그리고 문화들의 다양성의 인정에 따라 각 지역과 문화권들에서는 신앙정식들(Formulae Fidei)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은 최근에 나온 보편 교리서인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 (1992, 6, 25 반포)에 반영되어 가톨릭 교회가 간직하고 보유해온 신앙유산 (Fidei depositum)의 '쇄신과 적응', 그리고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보편교리서는 트리덴틴 공의회의 결정에 의해 나왔던 「로마 교리서」(1566)를 우리 시대에 맞게 쇄신시키고 적응시킨 교리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의 주요 골격은 「로마 교리서」에서 따온 것으로서 크게 신경, 성사, 계명 기도 편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런데 이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는 대교리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교리교육을 해야 할 직무를 가진 이들인 주교, 사제, 교리교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교회 신앙의 비망록 (Memorendum fidei)의 성격을 갖는다. 성서와 성전, 교부들의 가르침, 역대 공의회의 선언과 가르침을 토대로 가톨릭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수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교리서가 각 지역과 문화권에서 활용되기 위해선 계속해서 이 교리서의 토착화의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의 원칙적인 교리내용들은 각 문화권과 시대성에 맞도록 적응되어야 할 교리교육적 과제가 있다. 그것은 마치 쇄신공의회였던 트리덴틴 공의회의 결정에 의해 나온 「로마 교리서」가 그후 400여년간 유럽, 남미, 중국 등지에서 그 문화권에 적용된 교리서로 수백가지 형태로 나와 교회신앙을 이끌어 왔듯이, 우리 시대의 교리서인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도 그러한 과제를 지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리교육과 전례는 상호적으로 토착화해 가는 과업을 항구적으로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교리교육의 토착화는 신앙내용이해의 현대화이며, 전례의 토착화는 신앙내용 표현의 현대화이자 적응이기 때문이다.
각주 및 참고문헌
1) 성 베데(St, Bede 672-735)는 욕(York)의 대주교인 에그버트(Egbert)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이미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다 : "비록 라틴어는 그것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유익한 일이긴 하지만 사제들을 포함하여, 자기들의 언어만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신경과 주의 기도를 자기들이 이해하는 언어로 가르쳐야 한다"(PL, 94, 659).
전례에 있어서 라틴어 사용과 지방말의 새로운 적용문제는 실제로 9세기경 알프레드(Alfred)대왕이 성 시릴로와 성 메토디우스를 슬라브 민족에게 파견하여 장려한 일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글라골리틱(Glagolitic)이라는 알파벳을 창안하여 전례거행에 그 지방말인 슬라브어로 채택하여 실시했으며, 성서와 문학도 슬라브어로 번역하여 전례발전을 도모했던 실례를 볼 수 있다 [M.E Jegen, Catechesis II : Medieval and Modern, in New catholic Encyclopedia (이하 NCE 로 인용함] vol, 3, p. 210
2) 「전례헌장」, 36항.
3) 「전례헌장」, 35항.
4) 「교리교육에 관한 일반지침서」, 25항 ; 「현대의 교리교육」, 23항.
5) 「현대의 교리교육」, 23항.
6) 그레고리오 대교황(540-604) : 64대 교황으로서 교회의 박사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 그는 교리교육이 선교와 전례와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사목적으로 인식하였다. 그는 영국에 켄터베리의 아오스딩을 선교사로 파견하여 영국을 복음화시켰으며, 전례를 개혁하고 간소화하여 그레고리오 성사(Sacramentaire grégorien)를 마련하여 로마예식서의 기초를 이루게 하였다.
7) 유럽의 복음화 과정중에 활약했던 주요 선교사들과 지방은 다음과 같다 : 프랑크 민족의 사도이며 렝스(Rheims)의 주교인 레미(Rémy, 450년경), 오스트리아와 바바리아 지역의 선교사 세베리누스(Severinus, 482), 훈족들에 대한 비잔틴의 선교(6세기경), 스콧틀랜드의 골롬바(Columba, 6세기), 영국 앵글로족에 선교한 켄터베리의 아오스딩(6세기말), 아일랜드의 패트릭(Patrick), 벨기에의 아만드(Amand), 고올 지방의 마르틴(Martin), 독일지방의 보니파시오(Boniface, 8세기, 9세기 중엽), 서부 슬라브 지방에 파견된 시릴로(Cyril)와 메토디우스(Methodius), 프리시아 지방의 윌리브로드(Willibrod),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복음화(12세기) 등.
8) Joseph Masson, 'Church and Mission', in Sacramentum Mundi, (New York, 1969), vol, 4, pp, 56-57. 김웅태 엮음, 「선교의 역사와 개념」, (가톨 대학교출판부, 1993), 41-44쪽.
9) J. A. Jungmann, Catechumenate, in NCE, vol, 3. p. 238.
10) 디다케에 대한 문헌은 다음의 책을 참고 할 수 있다 : The Didache or Teaching of the Twelve Apostles, in The Fathers of the Church, vol. 1. (washington, 1947), pp. 167-189 ; '열 두 사도의 교훈' 「신약성서 외경」, (대음당, 1970), 72-81, 152-154 쪽 ; Jean Paul Audet, La Didachè : Instructions des Apôtres (Paris, 1958), 박후버 해설, 본문번역 : 범선배, 「신학전망」 33 (1976, 여름), 167-178쪽.
11) J. A. Jungmann, Catechumenate, in NCE, vol, 3. p. 240.
12) M. E. Jepen, Catechesis II : Medieval and Modern, in NCE, vol, 3. pp. 209-215. J. A. Catechumenate, in NCE, vol, 3 p. 240.
13) G. S. Sloyan, Catechisme, in NCE, vol, III, pp, 226-227.
14) 「로마 교리서」라고 불리워진 이 트리덴틴 공의회의 교리서는 공의회 초기인 1546년에 기획되었으나, 공의회 이후인 1564년에 비로소 완성되었으며, 1566년에 라틴어로 발행되었다. 이 교리서의 전체적인 제목은 「비오 5세 교황의 명에 의해 발간된 본당신부들을 위한 트리덴틴 공의회의 교리서」(Catechismus ex decretis concilii Tridentini ad Parochos)라는 긴 제목이 붙어있다. 이 교리서의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교리서는 신자들을 위한 교리교과서가 아니라 사제들의 교리교육 직무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 이 교리서의 서문에는 그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가르침의 직무를 갖고 있는 사목자들과 그밖의 사람들이 확고한 교리를 모색하고, 다음엔 신자들을 그 교리로 양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에서 거룩한 공의회의 권위에 의해 발간된 책이다".
15) G. S. Sloyan, Catechisme, in NCE, vol 3, p. 227.
16) 17-18세기에 교리교육의 발전에 공헌한 이들로는 프랑스와 드 살 (François de Sales, 1567-1622), 아드리앙 부르돠즈 (Adrien Bourdoise), 벵상 드 뽈 (Vincent de Paul, 1581-1660), 쟝 자크 올리에 (Jean Jacques Olier, 1608-16657)의 슐피스 교육, 요한 세자 드 라 살 (Jean Baptiste de la Salle, 1651-1719), 쟈크 보수에 (Jacques Bossuet, 1627-1704), 샤를르 튀에 (Charles Thuet), 클로드 플레리 (Claude Fleury, 1653-1743) 등이 있다.
17) 선교와 교리교육 그리고 전례문제와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개최된 주요회의는 다음과 같다 : 뮨헨 교리교수법 대회(1905), 비엔나 교리교육 대회(1차 : 1912, 2차 1928), 룩셈부르크 회의(1935), 로마에서의 제 1차 교리교육자 국제 대회(1950), 네델란드의 니메그회의 (1959), 독일의 아이티슈테트회의(1960), 태국의 방콕회의(1963), 아프리카 우간다의 카티콘도회의 (1964), 필리핀의 마닐라 회의 (1967), 콜롬비아의 메델린 회의(1968), 로마에서의 제 2차 교리교육자 국제 대회 (1970), 로마에서의 제 4차 주교시노드 (1977), 로마 주교 시노드(1985) 등.
18) 「지침서」, 40항 ; 「현대의 교리교육」, 22-25항.
19)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 임시 총회 보고서(1985년 12월 7일), II, B, a, 4항 : Enchiridion Vaticanum, 제 9권, 1758면, 1797항 ;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제 1편)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 1994, 4-7 쪽.
20) 토착화(Inculturation)라는 말이 교회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제 4차 주교 시노드 (로마 1977)에서 당시 예수 총장이었던 아루페 신부(P, Arrupe)에 의해서 제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교리교육과 문화'라는 문맥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 : 'Catéchèse et culture',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는 메시지 (Message au peuple de Dieu) (1977 10, 28), (La complexité de l'activite catechétique - la diversité des cultures : 교리교육 활동의 복합성 - 문화들의 다양성), Documentation Catholique(이하 DC로 인용) No 1731(1977, 12, 4) p. 1018, Cf, DC. No. 1729(1977, 11, 6), pp. 927-928.
21)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주요한 문헌인 「사목헌장」에서는 '문화발전의 촉진'이라는 주제하에 인간의 문화활동, 신앙과 문화 등의 조화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다루고 있다. 「사목헌장」, 53-62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