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역사적 의의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20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 그리고 앞으로 몇 년 후면 맞이하게 될 2,000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지도하기 위한 교리서이다. 이 교리서는 교리서의 편성과 구조면에서 1566년에 나온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리서」 일명 「로마 교리서」(Catechismus Romanus)2)와 유사하게 이루어져 있다.
「로마 교리서」는 크게 신경, 성사, 계명, 기도 이렇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다루어지고 있는데, 「가톨릭교회 교리서」도 제 1부 : 믿음의 내용 - 신앙고백으로서의 신경, 제 2부 : 은총의 성사 - 그리스도교 신비의 기념, 제 3부 : 지킬 계명 -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 제 4부 : 기도 생활 - 주의 기도라는 제목을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의 신앙의 유산은 신경의 열 두 조항, 칠성사, 십계명, 주의 기도라고 볼 수 있다. 그중 신경과 주의 기도는 중세 전반에 걸쳐 교리교육의 중요한 과목이 되었는데, 어린이들은 이것을 암송해야 되었으며, 대부 대모들은 그 의미를 어린이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루터의 종교개혁에 영향을 받아 가톨릭교회의 신앙생활을 쇄신하기 위해 열렸는데, 이 공의회의 결실로서 나온 「로마 교리서」가 이처럼, 신경, 성사, 계명, 기도를 교리교육의 주요 과목으로 체계를 잡았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러한 네 과목으로 체계화되기까지엔 이미 토마스 아퀴나스의 영향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리교육과 신학의 방법을 구분하여 가르쳤는데, 신학은 조직적이며 분석적으로 다루어짐에 비해, 교리교육은 구체적이고 소박한 언어로 대중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는 교리교육의 과목을 크게 믿을 교리(신경), 희망(주의 기도), 지킬 계명(계명),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은총(성사)으로 나누어 교리를 가르쳤다.3) 트리엔트 공의회의 의도대로 나온 로마 교리서의 구성 과목은 이 네 가지로 요약하여 다루게 된 것이다.
「로마 교리서」는 이렇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다루면서 각부의 제목들을 신앙정식(Formula fidei)의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취하여 다루고 있다. 가령 제 1부 사도신경편에 있어서 '나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의 경우, '나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분', '천주', '성부' 등 각 신앙정식의 말마디들이 교리 제목들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제목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특이하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로마 교리서의 네 체계와 구조를 그대로 따라 하면서도 신앙고백문의 말마디들을 제목으로 취하지는 않고, 내용면으로 압축하거나 의미적으로 종합하여 제목을 정하여 교리를 다루고 있다. 가령, 칠성사를 다룰 때 순서적으로 각 성사를 제목으로 다루지 않고, 세례, 견진, 성체 성사들을 '그리스도교의 입문 성사들'이라는 큰 제목을 설정하고 다루고 있다. 그리고 '치유의 성사들'이라는 제목 하에 고해성사와 병자 성사를 다룬다. 이런 면에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교의와 신앙정식을 좀더 내용적으로 종합하여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로마 교리서를 참조로 하여 교리의 네 부분 신경, 성사, 계명, 기도를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체계는 가톨릭교회 교리서들의 전형적인 교리 과목이 된다.
한편 교리서가 책의 형태로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구텐베르그의 활자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영향을 받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1529년 뮨헨 근처의 아욱스부르그라는 곳에서 '교리서'를 발간한 것이 최초의 인쇄된 교리서의 등장이 된다. 루터는 발도파교도들(Waldensians)과 보헤미아 신도들의 방법에 영향을 받아 1529년 어린이들을 위해 「작은 교리서」(Kleiner Katechismus)를 펴내고, 성인들을 위해서는 그 다음해 1530년에 「큰 교리서」(Grosser Katechismus)를 펴냈다.
이 교리서들은 문답 형식으로 된 교리서인데, 8세기경 알퀴노(Alcuinus 735-804)에 의해 시작된 문답식 교리를 재도입한 것이었다. 루터의 이 교리서들은 가톨릭측보다 앞서 책으로 인쇄되어 널리 유포되기 시작하자 가톨릭측에서는 개신교의 유포를 저지할 목적으로 여러 교리서들을 집필하게 된다. 그리하여 가톨릭측에서도 1530년 아욱스브르그에서 인쇄된 교리서를 처음으로 발간하게 된다. 그러나 그 체제나 구성, 내용 면에서 상당히 빈약했다.
루터의 교리서는 당시 가톨릭측의 지나친 신심 행사와 공로생활에 시달린 신자들에게 새로운 호응을 얻어 널리 유포하게 된다. 그러나 루터의 교리서는 교리 과목의 배열 순서로 볼 때 계명, 신경, 기도, 성사의 순으로 되었다. 이것은 가톨릭 측의 입장과는 다른 신학적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루터는 오직 '성서만으로'(Sola Scriptura), '신앙만으로'(Sola fide) 구원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가톨릭 교회에서 중요시하는 성사, 교계 제도, 선행, 공로의 가치를 무화시키고자 하였는데, 이러한 사상이 교리 배열 순서에 반영되고 있다. 즉 계명을 먼저 다룬 것은 인간은 계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므로 인간이 다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믿음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여하튼 루터의 교리서는 가톨릭 측의 입장과 다른 면이 있으나 그 시대엔 널리 유포되고 확장되었음은 사실이다.4)
한편 가톨릭 측에서도 루터의 교리서에 자극을 받고 교리서들을 펴내게 된다. 그중 베드로 카니시우스(Petrus Canisius, 1521-1597)는 1555년에 「그리스도교 교리의 요약」(Summa Doctrinae Christinae Per quectionses tradita)을 출간하였는데, 그 내용은 신덕과 사도신경, 망덕과 기도, 애덕과 계명, 성사, 그리스도교적 정의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카니시우스는 그 다음해 설교자와 교사들을 위해 「최소의 교리서」(Catechismus Minimus, 1556)를 내었다. 이 책은 신앙과 신경, 희망과 주의 기도, 애덕과 십계명, 성사들, 죄의 허망함, 선행들, 이렇게 6개 과목을 다루고 있다. 그후 카니시우스는 14세 가량의 젊은이들을 위해 「가톨릭 교인들의 작은 교리서」(Parvus Catechismus Catholicorum, 1558)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독일에서 그후 200여년 동안 전형적인 교리 교과서로서의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로마 교리서」가 나오기 전에 카니시우스의 교리가 사용되었고, 로마 교리서가 나온 후에는 그 교리서를 중심으로 보편적으로 활용되게 된다.
「로마 교리서」는 라틴어로 작성되었는데 1566년 교황 비오 5세의 명에 의해 즉시 이태리어로 번역되었고 그후 3년 이내에 독일어, 불어, 폴란드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각 지방 교회 회의에서는 이 「로마 교리서」를 각 지방에 적용하여 활용하도록 지침을 주게 된다5) 그리고 1905년 교황 비오 15세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가르침」(Acerbo Nimis, 1905, 4 15)이라는 회칙을 통하여 로마 교리서를 성인용으로 사용하라고 지시하였다. 1971년 로마에서는 세계 교리교육자 대회가 열렸는데, 이 대회에서 라이트 추기경은 이 「로마 교리서」를 기준으로 하여 새 방향으로 교리교육이 이끌어져야 한다고 말했으며, 미국에서 나온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이 노선에 의해 나온 교리서이다. 「로마 교리서」는 그뿐 아니라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의해 나온 새로운 보편 교리서인 「가톨릭교회 교리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구조와 편성 면에서 신경, 성사, 계명, 기도의 교리 과목 배열 순서가 동일하게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회 쇄신 작업의 결실로서 나온 「로마 교리서」가 그후 400여년 동안 교회의 믿음을 정립하고 신앙을 쇄신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였으며,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모체가 되었듯이,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시시각각으로 변화되는 현대 상황 속에서 새로이 대두된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전개될 교회의 미래 역사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늘날은 과거와는 다른 신앙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이성주의, 과학주의, 무신론, 뉴에이즈, 종교 무용론, 종교 다원주의, 환경오염 등의 상황 속에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교회의 신앙 유산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의 신앙 위기 상황을 극복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교리서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교회 신앙의 정통성을 천명하는 입장에서 우선 교리를 가르칠 직무가 있는 이들, 주교, 사제, 사목자, 교리교사, 교리서의 편집자 등을 대상으로 집필된 대교리서(Catechismus Major)의 성격을 띠고 있다. '대교리서'는 교리 내용의 원칙적인 것을 기술한 것이므로 교리를 가르칠 때엔 교리서가 각 시대와 연령층, 상황에 맞게 적용되어 사용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