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어머님이 저에게 마지막까지 안타까워하시면 남기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그만 하고 나와라.” 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시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사는 모습이
마음에 걸리셨기에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제게 남기신 그 마지막 말은 여전히 저를 여러 모로 생각하게 합니다.
신앙이 그리 깊지 않았던 어머님이셨기에
당신 아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길을 살아가길 원하셨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수도원에 들어와 사는 제 자신이 어머님께 확실한 신뢰,
다시 말해 수도원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잘못도 있을 것입니다.
행복한 삶, 축복 받은 삶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성모신심 미사를 드리며
이스라엘의 신앙의 첫 성조 아브라함이 선택받는 첫 장면과
복음서의 첫 부분 즉 족보에 관한 이야기를 읽습니다.
이 두 이야기의 근본 배경에는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있었다는 강한 믿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 축복의 이야기를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정든 땅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축복을 내리시겠다고 짐을 정리해서 떠나라고 아브라함을 초대할 때가
이미 반백이 되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때에
그것도 일가친척 하나도 없는 낯선 땅으로 떠나는 것이었고,
그렇다고 자식들이 벌떼처럼 많아서 땅을 차지하기에 힘이 센 것도 아닌
달랑 아내와 그나마 가까운 조카 하나만을 데리고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느님 축복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족보에 나열된 하느님의 축복은 이보다 조금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윗 왕이라든지 솔로몬 왕이라던 지,
조상들 중에 왕가(王家)를 형성한 화려함이 남아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러한 화려함 이면에 여전히 담긴 슬픈 역사도 있습니다.
다윗은 부정하게 우리야의 아내를 얻었고,
솔로몬에게 왕위가 건네지기까지 부모자식 간에 골육상잔이 있었습니다.
또한 솔로몬 이후 나라가 갈라져 형제들이 서로 전쟁을 하던 시간도 있었고,
결국엔 앗시리아 제국과 바빌론 제국에 차례로 나라가 망해
기나긴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 축복의 역사였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축복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녀를 낳아 기르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답과 소와 양과 하인들을 거느리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평범하게, 작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미며
부모자식 간에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웃음을 지닌 가정을 꾸민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람들은 하느님의 축복 혹은 우리들의 행복한 삶이란
지금 이 순간 많은 선물을 받고 기쁘고 행복하며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다들 “하느님께 축복 받은 거여!”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행복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매달립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행복이 그런 것도, 당신의 축복이 그런 것도 아니라고
오늘 복음에서 뿐만 아니라 당신의 구원 역사를 통해 누누이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행복과 하느님의 축복은 “희망을 잃지 않는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75살 다 늙은 나이에도 주님께서 펼쳐 놓은 곳을 향해 떠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삶의 온갖 우여곡절이 들어와 우리를 괴롭힌다 해도,
하느님이 함께 하시며 우리의 손을 잡아 이끌어주실 것이라는
“희망”이 있을 때 행복은 시작되고 더욱 커진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행복이나 하느님의 축복은
지금 이 순간 결론이 나야할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을 희망하며 지금 그분을 따라나설 때
그것 자체가 행복의 시작이고 하느님 축복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저 멀리, 축복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 주님을 희망하며 그분과 함께 웃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이 다 행복할 것입니다.
“어머니, 어떻게 그런 일이 저에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당신 뜻이라면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축복-성모신심미사 - 이회진 신부님
2006. 12. 2. 오후 12: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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